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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동성교회친구 62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교회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교회 이웃과 함께 하나되는 교회 송탄동성교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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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탄동성교회 홍보미디어팀

새 생명 초청주일(2018.04.08)

우리 주위에 많은 잃은 양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방황하는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 보는건
어떨까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초대장이 필요하신 분은 교역자실에서 받아가시면 됩니다.

[사순절 제24일] 서로 화목하라 (막 9:38~50)

사순절 묵상 - 서로 화목하라
본문 말씀 : 마가복음 9장 38-50절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신앙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깊은 묵상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42절). 예수님은 매우 냉정하게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복지와 영성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50절에서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예로부터 소금은 금처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약속은 소금을 가지고 했습니다.(레 2:13)
서로 화목하라는 것은 이처럼 변할 수 없는 소금언약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신앙과 생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가 폭력에 물들어 타락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뭐든지 함께 나눌 수 있으며 평화와 따스함이 가득한 곳, 굳이 나 자신을 방어할 필요도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약점까지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곳,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편견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공동체, 이것은 교회에 대한 나의 비전이기도 합니다”(크리스토퍼 스미스·존 패티슨 저, 김윤희 역, ⌜슬로처치⌟<새물결플러스, 2015>, 289쪽). 서로 화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누는 삶이야말로 교회공동체가 지녀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배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입니다.

길 위의 기도
교회가 말보다 믿음의 실천이 앞섬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본이 되게 인도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하나님, 우리의 지경을 줄이시고, 우리의 삶의 반경을 좁히셔서 우리가 진정 모든 이에게 복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생각해 봅시다.

[사순절 제20일] 무엇이 더러운가? (막 7:1~23)

사순절 묵상 - 무엇이 더러운가?
본문 말씀 : 마가복음 7장 1-23절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보다 밖에 보이는 더러운 것을 탓하지 않았나요?”

깊은 묵상
하루에 손을 몇 번 씻는지 세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화장실에 갔을 때나 식사할 때는 물론, 그 외에도 여러 번 손을 씻으며 삽니다.
당시 장로들의 전통을 중요시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느냐?”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사람의 전통과 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은 저버리고 있는 그들의 위선에 대하여 지적하셨습니다. 막상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씻어 본 적이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무디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해를 등지고 걷고 있던 무디는 자기 앞에 놓인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요~ 그림자! 내가 잡고 말 테야.” 하면서 그 그림자를 따라잡으려고 갖은 애를 써 보았지만, 여전히 그림자는 자신보다 앞질러 가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를 향하여 돌아섰을 때, 그 그림자가 자신의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햇빛을 바라보고 걸으면, 그림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주님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죄 된 습성을 따라갑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생각과 탐욕이 더욱 긴 그림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우리의 죄 된 습성을 버리고 빛 되신 주님을 따르고 바라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길 위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밑에 나를 내려놓고 빛 되신 주님을 향하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손과 발을 씻을 때마다 나의 죄 된 속성들을 씻어 주시길 바라며 성결한 삶을 실천해 봅시다.

[사순절 제19일]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막 6:30~44)

사순절 묵상 -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본문 말씀 : 마가복음 6장 30-44절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주님 앞에서 작은 것과 큰 것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깊은 묵상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인생은 B-C-D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태어남(Birth-B)과 죽음(Death-D) 사이에 살면서 끊임없는 선택(Choice-C)을 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선택하는 길에는 하나님의 선택과 다른 것들로 가득합니다.
이른바 사람이 즐겨 선택하는 것에는 큰 것, 많은 것, 돈이 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뭄이 깊어 갈 때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머물게 하셨던 안식처는 다름 아닌, 마지막 남은 식량을 먹고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동네의 한 가난한 과부의 집이었습니다(왕상 17:1-16). 거기서 마르지 않는 은혜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여기 해가 저문 저녁, 빈들에서 제자들의 귀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무리들에게 사서 먹일 양식을 위한 비용을 계산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7절). 곧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제자들이 찾아낸 것은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지극히 작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눈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에는 작은 것이 작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보지 못한 길,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닌 길을 우리에게 열어 보이셨습니다.

길 위의 기도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림으로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케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나의 계산적인 사고를 내려놓고 믿음과 감사로 주님께 드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순절 제18일]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삶 (막 6:14~29)

사순절 묵상 -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삶
본문 말씀 : 마가복음 6장 14-29절

“주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 걷고 있나요?”

깊은 묵상
예수님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로 가셨습니다.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이 아니면 생명을 구해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 길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가시는 이 길을 준비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보다 앞서서 목 베임을 당한 광야의 소리입니다.
그는 주 예수께서 오시는 길을 위해 앞서 준비된 자였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0, 14)

아무도 가지 않는 길, 희생의 길에 세례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할 일을 다 이루었을 때, 죽음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예표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은 결국 부활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부활의 영광뿐 아니라 처절한 고난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길 위의 기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음을 용서 하시고, 역경과 고난이 닥칠지라도 예수님이 가신 길을 걷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주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들을 종이에 다섯 가지 적어봅시다.

[사순절 제17일] 고향에서 냉대를 받으시고 (막 6:1~6)

사순절 묵상 - 고향에서 냉대를 받으시고
본문 말씀 : 마가복음 6장 1-6절

고향에서 냉대를 받으시고
“내 지식이나 내 판단에 갇혀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나요?”

깊은 묵상
고향으로 돌아간 예수님이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움도 잠시, 곧 쉽게 바뀌지 않는 자신의 지식과 판단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에 있지 아니하냐”(막 6:3) 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에 갇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온전히 아는 데 큰 장애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함정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내 생각과 지식과 경험의 장벽을 뛰어넘게 하는 믿음은 예수님이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곧 십자가의 길로 가시면서 주신 은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자신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이 주님을 믿는 데 방해가 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또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길 위의 기도
나의 경험으로 인한 편견 때문에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멀리하지 않도록 인도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고정관념에 갇혀 고집하고 있는 신념 중 수정해야 할 것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사순절 제16일] 부정을 정결하게 하시고 (막 5:25~34)

사순절 묵상 - 부정을 정결하게 하시고
본문 말씀 : 마가복음 5장 25-34절

“깨끗함이란 무엇일까요?”

깊은 묵상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지났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당시 교회의 부정을 비판하며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반박문을 붙인 후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죄부 판매로 인해 모든 기독교 세계의 돈이 이 밑빠진 교회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가꿔야 할 것은 지역 교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교황은 모든 교회에 면죄를 허락하는 것보다 한 교회라도 선한 목자를 임명해야 옳습니다. 교황의 면죄로는 죄책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면죄로 하나님과 화해된다고 말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를 받지 않아도 죄책과 처벌을 완전히 감면받습니다. 교황이 제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땅에서 부과해 놓은 처벌뿐입니다.”

복음은 구약의 정결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법입니다. 혈루병을 앓던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통하여 병(부정)으로부터 벗어나 건강(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으로부터 5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날마다 믿음의 개혁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개혁이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으로부터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그러한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부정)에서 놓여 건강(정결)할지어다.”

길 위의 기도
내 속에 부정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놓사오니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부정적인 생각이나 습관이 있다면 리스트를 작성해 보고 기도하며 새롭게 결단해 봅시다.

[사순절 제15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막 5:1~20)

사순절 묵상 -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본문 말씀 : 마가복음 5장 1-20절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깊은 묵상
‘집’이라는 건축물은 철저히 이성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만약 오차가 있다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집’은 따뜻한 정서적 공간입니다. ‘가정으로서 집’이 없다면 살아 있다는 가슴 따뜻한 의미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집’은 우리의 현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루의 삶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집은 인간 존재의 희로애락의 근원지입니다.
사람은 집을 통해 안정을 찾고, 힘을 얻고, 회복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결국 ‘집’이란 한 사람의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그 자신의 실존에 큰 영향을 주는 곳입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통하여 삶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 속에 예수님을 따르려는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뜻대로 사는 모습을 제자들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들의 집이 변화된 것입니다. 신앙의 모습은 교회에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현장, 즉 집에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 집이 예수님으로 인해 안정을 찾고, 힘을 얻고, 회복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믿음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길 위의 기도
나의 반석이신 주님 안에서 믿음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믿음의 집이 안전하고 견고한 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순절 제14일] 잠잠하라 고요하라 (막 4:35~41)

사순절 묵상 - 잠잠하라 고요하라
본문 말씀 : 마가복음 4장 35-41절

“주께서 새 힘을 주실 때는 언제인가요?”

깊은 묵상
인생을 살다 보면 강풍이 몰아치는 폭풍처럼 어려움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갑작스레 밀려온 폭풍 앞에서 헤쳐 나가려고 몸부림치며 여러 방법들을 찾지만, 이내 두려움과 절망에 함몰되기도 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큰 풍랑을 만나 배에 물이 가득 들어오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셔도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죽음의 위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큰 풍랑 중에도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위기를 해결하고 풍랑의 시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크고 작은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불치병과 같은 큰 문제들도 있지만, 소화불량, 불안, 숙면 방해 등 소소한 질병들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낙망하거나 좌절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주님이 함께하심을 잊고 당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 가운데 함께하시며 역사하십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예수님이 곁에 계심을 믿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 봅시다. 우리 곁에 늘 계시는 예수님을 부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항상 있는 크고 작은 풍랑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길 위의 기도
주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나의 모든 나약함과 죄악을 맡기오니, 나를 새롭게 하시고 새 힘을 허락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불안과 염려 속에 힘겨워하는 동료에게 평강의 주님을 전해 봅시다.

[사순절 제13일] 씨앗처럼 자라는 하나님 나라 (막 4:26~32)

사순절 묵상 - 씨앗처럼 자라는 하나님 나라
본문 말씀 : 마가복음 4장 26-32절

“믿음 가운데 열매 맺었던 경험이 있나요?”

깊은 묵상
중국 항저우에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용정차를 생산하는 곳이 있습니다.
용정차는 여린 새순만을 채취해 몇 차례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만드는데, 그 맛이 구수하면서도 향기롭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 중 옛날부터 황제에게만 바치는 차를 생산하는 나무를 어차수라고 했는데, 놀라운 것은 어차수에서 생산된 용정차의 경매가가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녹차 씨앗 한 알 가격이 약 100원 정도 하는데, 어차수에서 난 용정차가 고가인 것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어차수도 작은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황제에게 바치는 차를 생산하는 나무가 되었을 때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작은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 그 씨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밭에 심겨질 때 이들에게서 엄청난 가치의 열매를 수확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물질로 다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내 안에 있는 작은 믿음과 말씀의 씨앗으로부터 자라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에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이 싹을 틔워 넓은 그늘을 가진 든든한 나무로 자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삶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길 위의 기도
주의 말씀을 마음 깊이 심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으로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소망을 가지고 뿌려야 할 씨앗이 무엇인지 기록해 봅시다.

[사순절 제11일] 복음의 길에 함께할 이들

사순절 제11일 (막 3:13~19)
복음의 길에 함께할 이들

“단순하게 하나님을 따르고 있나요?”

깊은 묵상
현대인들은 정보화 사회의 복잡다단한 구조 속에서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만을 표현했을 때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생각 아래 ‘최소한주의’, 즉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선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삶의 가치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가치를 따라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7~9에서 예수님은 여행을 위해 지팡이 외에 다른 것을 가지지 말고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고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며 경험한 것은 단지 검소한 삶이 가져다주는 유익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행복과 성공의 가치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삶을 살라고 초대받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행했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많이 가지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인가를 소유해야만 행복해진다는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오늘도 미니멀리스트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가치를 향한 복음의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길 위의 기도
주님과 동행하면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고 단순하게 따라가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삶 속에서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봅시다.

사순절 - 두번째 주일

<사순절>
주님의 고난을 묵상으로 함께하며, 자신의 신앙을 재각성하는 절제의 기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사순절 제10일]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막 2:23~28)

사순절 묵상 -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본문 말씀 : 마가복음 2장 23-28절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식을 누리며 살고 있나요?”

깊은 묵상
안식일에 예수님의 일행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며 이삭을 자르자,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따졌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었던 예를 드셨습니다. 진설병 규례가 엄격한 것이지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던 다윗과 그의 일행을 정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윗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다윗은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높임 받는 위대한 왕이지만, 단지 예수님의 모형일 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과 안식일 규정이 지향하는 참된 안식을 실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윗보다, 성전보다, 율법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주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식일(주일)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를 기념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보내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면 사람들이 그분의 안식을 얻도록 돕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기초한 복음을 분명하고도 풍성하게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길 위의 기도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참된 주님의 정신을 회복하고 변화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바꾸어 봅시다.

주의 성전을 깨끗히 하여 거룩한 예배를 준비하는 성도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 시편 96편 9절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 드리는 것 중 하나는 주의 성전을 깨끗히 하여 거룩한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교회 대청소 : 내일 오전 10시

주의 성전을 깨끗히 하여 거룩한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 동참하는 송탄동성교회 성도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순절 제9일] 새 길을 향한 새로운 자세 (막 2:18~22)

사순절 묵상 - 새 길을 향한 새로운 자세
본문 말씀 : 마가복음 2장 18-22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나요?”

깊은 묵상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이 정한 방식으로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죄를 슬퍼하고 회개하는 표현으로 금식을 했는데, 금식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표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들이 금식을 요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오셨으니 이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면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로마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 이스라엘에게 영광의 시대를 열어 줄 다윗과 같은 왕을 기다리는 메시야 대망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금식을 통해 이스라엘이 당한 슬픔을 표현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구원할 왕을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열심을 통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뤄진 새 시대는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고, 주님이 주신 것들을 향유하면 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태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옛 시대의 생각과 삶의 태도는 새 시대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라 기쁨 가운데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길 위의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죄를 사하셨음을 믿고, 참된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주님을 만나 새로운 습관을 갖게 된 것이 있다면 써 봅시다.

[사순절 제8일] 죄인도 함께 걷는 복음의 길

사순절 묵상 - 죄인도 함께 걷는 복음의 길
본문 말씀 : 마가복음 2장 13-17절

“이웃을 정죄하며 거리꼈던 적이 있나요?”

깊은 묵상
당시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여겨져 유대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손수 찾아가 만나 주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레위 집으로 가셔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친밀감과 종교적인 교제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은 바리새인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의도적으로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의 기준은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의 기준으로 삼으라고 하신 것은 율법입니다. 그런데 ‘의’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롬 3:10).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으며,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죄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자기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가 가는 나라입니다.

의의 길, 복음의 길에 주님이 나를 초대하셨습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면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듯이 그 누구도 주님의 손길에서 제외되는 대상은 없습니다.

길 위의 기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품으며 복음의 길을 함께 걷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용서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다면 먼저 손 내밀 기회를 만들어 봅시다.

[사순절 제7일] 네 상을 들고 가라 (막 2:1~12)

사순절 묵상 - 네 상을 들고 가라
본문 말씀 : 마가복음 2장 1-12절


“어려운 문제로 힘겨워하는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깊은 묵상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에게서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고귀한 사랑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병든 친구를 위해 책임 있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친구를 도울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말로 위로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나에게 있는 능력으로 친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넷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은 고통 중에 있는 친구를 도와 줄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좋은 만남은 또 다른 좋은 만남을 낳습니다. 중풍병자는 친구들 덕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무기력한 인생에 생명이 더해졌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고 살릴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는 육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혼의 문제까지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선행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용기를 내어 이웃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인도해야겠습니다.

길 위의 기도
어려운 문제로 힘겨워하는 친구를 주께로 인도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믿음의 친구 세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보고, 그들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내봅시다.

[사순절 제6일] 측은히 여기는 마음 (막 1:40~45)

사순절 묵상 - 측은히 여기는 마음
본문 말씀 : 마가복음 1장 40-45절

“어려운 이웃들을 바라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나요?”

깊은 묵상
한 한센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합니다. 당시 한센병은 부정한 병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이 병에 걸리면 건강한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자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계시던 예수님을 가까이 찾아와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며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그에게 직접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복음에는 죄인을 온전하게 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에서 깨끗함을 얻기 원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엎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는 사랑이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모든 약한 자와 병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맞이하셨고, 그들을 모든 올무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그날을 떠올려 봅시다.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 주셨으며,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며 기뻐했던 그 자리에 다시 서 봅시다. 그리고 그 은혜와 감격으로 주변을 돌아봅시다. 혹 우리가 정죄하고, 죄를 당연시한 것은 아닌지요?
외면한 자들, 포기한 자들이 있다면 다시 마음에 품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겠습니다.
또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며 측은히 여기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 봅시다.

길 위의 기도
내게 허락된 복음의 능력을 감사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는 길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가족과 친척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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