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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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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담임목사 허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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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는 때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또 깨닫게 되지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창조주 존재의 창조가 아니라 가치의 창조, 의미의 창조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삶이란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펠리시타스 베츠의 기도입니다.

모든 사람의 눈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주님, 당신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빛 안에서,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안에서,
우리가 마시는 물 안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 안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찬양하고 찬미합니다.

우리가 보는 빛,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먹는 물,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들.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하고 찬미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묵상한 창세기 46장의 후반부와 47장의 전반부는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요셉과 만나는 장면
그리고 바로를 만나 축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22년 만에 만나 눈물로 상봉합니다.
그리고는 요셉과 함께 바로를 만나러 갑니다.
바로를 만난 야곱은그를 축복했습니다.
바로를 만나면서 축복하고(7절), 물러나면서 축복했습니다(10절).
노년의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는 장면은 세상적인 기준과 조건으로 보면 좀 어색합니다.
야곱은 본토를 떠나 이집트에 몸 붙이기 위해 찾아온 노인이었고,
바로는 당대 최고의 강대국 이집트를 통치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가 야곱을 축복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그러나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축복하는 자로 서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대로 자신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에서도 축복하는 자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주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그 사람이 세상의 기준으로 존귀하든 그렇지 않든, 돈과 지위가 높든 그렇지 않든,
그를 축복하며 영적 자존감을 지켜가시길 바랍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17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남산도서관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맞은 편에서 오시는 분이 담배를 피우며 걸어오셔서 담배 냄새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새벽 공원을 걷는 분들이 계신데,
그 공원에서 걸어가며 담배를 피는 행동은 이해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덕분에 걸으며 자유를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변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시는 <당신 혼자는 아니리> (작자 미상)입니다.

폭풍우 속을 걸어갈 때
고개를 들어요
그리고 어둠을 겁내지 말아요.

폭풍우를 지나면 찬란한 하늘
그리고 싱그러운 종달새 노랫소리 들리리니

바람 속을 걸어요
빗속을 걸어요
비록 당신의 꿈이 깨어지더라도

걸어요
가슴 속에 꿈을 안고
당신 혼자는 아니리니
결코 당신 혼자는 아니리니

시인이 폭풍 속에서도, 바람 속에서도, 빗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고 노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주님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구요.
주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

오늘 새벽에 묵상한 내용이 그렇습니다.
창세기 46장에는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브론에 거주하던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기 여정에 브엘세바를 지나게 됩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의 남단이고, 그곳을 지나면 블레셋과 이집트로 이어집니다.
브엘세바에서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주님께 제사를 드렸고,
주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내가 반드시 너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겠다.”(3-4절)
주님은 이집트로 내려가는 야곱에게 당신이 이집트에 함께 내려가서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도 야곱과 그 가족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너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 가시고, 또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직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사십시오.

계좌이체 헌금자 명단(9월 10일 – 15일)

귀한 예물 감사합니다. 누락되거나 항목이 잘못 기재된 분들은 사무실로 연락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십일조
김의진(신윤섭) 김효경 나건(이순영) 백상흠(서정선) 사부성(사혜령) 유성필(나카가와애리) 이영수(하동옥) 조성업(송세화) 최옥영

■ 주정헌금
구본조(윤경) 김기봉(이복기) 김의진(신윤섭) 김정남(송요천) 김종현(이미진) 김형기 나건(이순영) 박승희 배재만(홍점금) 이선희(노원) 이선희(마포) 이영수 이준희(양우원) 장연순 정경자 최옥영 하동옥 하재은(임이희)

■ 주일헌금 김재신

■ 감사헌금 김수현 김순겸(이선희) 방희성 배재만(홍점금) 조영민(김은진) 최규엽 기독교중독연구소

■ 목적선교헌금 김혜숙(산본) 정경자 하동옥

■ 장학헌금 조영민(김은진)

■ 남신도주일헌금 유성필(나카가와애리)

아침 묵상 나눔(9월 16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사관 옥상에 올라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옥상 청소도 하고 산책도 했습니다.
옥상을 걷다 보니 보라색 작은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가 심은 것이 아닌데 꽃씨가 옥상까지 날라와 작고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작고 예쁜 꽃이 주는 뜻밖의 기쁨을 느끼다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기쁨을 주는 존재인지’ 생각했습니다.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변의 사람에게 작은 기쁨이 되는 존재로
더욱 성숙해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시가 있습니다.
리보의 엘레드(1110~1167)가 남긴 기도입니다.

좋으신 예수님,
당신께 마음을 여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당신이 거기 머무실 테니까요.

당신은 문제를 안고
허둥대는 사람 가슴에 한낮의 하늘빛을 비추시고,

소용들이 치는 감정들을
신성한 빛살로 쓰다듬어 가라앉히십니다.

당신은 향기로운 천상의 꽃들로
사람 영혼 안에 침상을 만드시고
거기 몸을 누이시어,

그 영혼으로 하여금
당신을 아는 지식과
당신한테서 오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 영혼이 주님을 아는 지식과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쁨을 내면에 간직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임재를 통해 내면에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새벽 창세기 45장의 후반부를 묵상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가 기뻐했습니다.
요셉을 불러 아버지를 이집트로 초청할 것과
아버지가 내려오면 이집트의 가정 좋은 땅을 마련하여 주라고 지시합니다.
그 일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하게 공급하도록 했습니다.
그에 따라 요셉의 형제들은 많은 것을 얻어 야곱에게로 올라갑니다.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과 이집트의 총리가 된 사실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집트로 초대하였노라고 전합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믿지 못했던 야곱은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쁨으로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본문을 읽다보면, 성경의 기자가 강조하는 하나의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좋다, 선하다’는 의미를 가진 ‘토브’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네 번(16절, 18절, 20절, 23절)에 등장합니다. 특히 바로가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오면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드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두 번 등장합니다.
결국 성경의 기자는 야곱과 그 아들들이 '좋은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지요.
그들이 좋은 것을 받은 이유는 전적으로 요셉 때문입니다.
요셉으로 인해 좋은 것을 받아 풍성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복의 통로’로 삼아 야곱과 그 가정에게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녀인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하고, 주신 것을 만족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채워지지 않는 탐욕을 따라 만족함 없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15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금요일 저희 교회의 원로목사이신 배태덕 목사님께서 소천하셔서 장례의 절차를 마치고 양평에 모셨습니다. 장례과정에 협력해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 전, 서울성남교회의 전임과 후임으로 만나, 그 동안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만 입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도 목사님의 사랑을 입었노라고 회상하며 고백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결국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남기고 갈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 사랑하라(정일근)는 작품입니다.

사랑할 때 사랑하라
아홉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팔 하나를 내어 주어도
남은 손가락, 남은 손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이
두 눈알을 다 가져가 버려도
사랑이 몸뚱이만 남겨 놓아도
사랑이 남아있다면 사랑하라
지구별에 다시 빙하기가 오고
지구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검독수리가 죽고
향유고래가 죽고
흰 민들레가 죽고
오직 외발 하나 딛고 설 땅이 있다면
그 땅에 한 발 딛고 서서
나머지 한 발은 들고라도 서 있을 수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보다 거룩한 용서
기도보다 절실한 기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마지막까지 사랑하라는 시인의 외침을 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오늘 새벽 묵상한 말씀은 창세기 45장입니다.
요셉이 드디어 형제들에게 자신이 요셉이라고 밝히고,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자신을 죽이려했고, 자신의 애원을 외면했으며,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의 입맞춤을 하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가 용서하고 화해를 이룰 수 있던 비결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인생을 바라보고 이해하면, 세상에 무의미한 사건은 없습니다. 모든 사건 속에서 주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숙해 가고, 그 성숙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성숙한 신앙인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11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불안과 염려 그리고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스스로 말하기가 쑥스럽습니다만,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그래서 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새벽 산책하는 시간에 제 생의 여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제가 고백할 수 있던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생을 디자인하셨고 인도하셨다는 것이지요.
주님은 때로 제가 가고자 했던 길을 막으셨고,
제 생각을 꺾으셨지만,
주님께서 인도하신 길이 언제나 옳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고집하거나 주장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묵상한 창세기 43장에서 만나는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집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는 일찍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경험을 통해, 하나님 앞에 자신이 깨어져야 할 존재임을 알았지만, 그러나 생의 말년까지 자신의 고집과 집착을 내려놓을 줄 모르는 인물이었습니다. 편애하는 아들 요셉과 베냐민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집트에 첩자의 누명을 쓰고 갇힌 시므온을 돌보지 않았구요.
야곱의 고집 때문에 그 가족 모두가 먹을 것이 바닥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위기의 상황에서 야곱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자녀들에게 돌리고, 아들들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더 심해지자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고,
그제야 야곱은 베냐민에 대한 애착과 고집을 포기합니다(14절).
‘자식을 잃으면 잃겠다’는 마음으로 베냐민을 형제들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보내지요.

하지만 야곱의 포기가 자포자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냐민과 자식들을 이집트로 보내며 그렇게 기도합니다.
“너희들이 그 사람 앞에 설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감동시켜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게 해주시길 빈다.”(14절)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베냐민과 자식들을 이집트로 내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을 통해 야곱의 가정은 구원을 경험하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야곱의 내려놓음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롭고 풍성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다룬 책이지요.
오늘 여전히 그 진리는 유효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믿는다면, 그분 앞에 우리의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손에 움켜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손을 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롭고 풍성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시고,
그분은 우리를 향한 계획과 디자인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며,
그 선하신 계획에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10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만남이 조심스러워지고, 대면 모임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보면,
요즘은 선배그룹에 속하든지 혹은 가장 선배인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조재도)이라는 시가 있지요.
나는 어른이 되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함께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결점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는 사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사람

그런 어른은 큰 나무 같을 거야
한여름 뙤약볕에 지친 생명을
보듬어 편안히 쉬게 해 주는 

‘뙤약볕에 지진 생명을 보듬어 편안히 쉬게 해주는 큰 나무 같은 어른’
‘결점까지도 그대로 받아주어서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사람’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런 어른이 되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오늘 새벽에는 창세기 42장의 후반부를 묵상했습니다.
요셉은 첩자라는 죄명으로 형들을 감옥에 가두었다가 사흘 만에 그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정직함을 증명할 기회를 줍니다.
형제 중에 한 사람만 이집트에 남겨두고 올라가서 베냐민을 데리고 오면 그들의 말을 믿어주겠다고, 그것이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시합니다.
요셉의 명령을 그들은 거역할 수 없었고, 그래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형제 중 하나를 이집트에 버려둔 채 가나안으로 올라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형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에,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 주지 않을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괴로움을 당하는구나!”(창42:21)
낯선 나라에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갇혀 언제 처형될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형제 중 하나를 버려둔 채, 그들만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할 상황입니다.
형제를 사지에 두고 올라가야 하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그 괴로운 상황에서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했던 잘못을 떠올렸습니다.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웅덩이에 던져넣었을 때, 그들의 형제 요셉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고 무정하게 팔아넘겼던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기억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이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면초가의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못된 과거와 직면했습니다.

어려움과 고난을 만날 때, 우리도 자신의 못된 과거와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와 타인에 대한 폭력과 무자비함을 떠올라며 뉘우쳐야 합니다.
용기를 내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도 새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용기가 오늘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계좌이체 헌금자 명단(9월 1일 – 8일)

귀한 예물 감사합니다. 누락되거나 항목이 잘못 기재된 분들은 사무실로 연락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십일조
김광훈 김기찬 이주희(백상현) 이하은 이한(이희선)

■ 주정헌금
권우경 김기찬 김대성(황경랑) 김동욱(임재영) 김영일(서남희) 김종현(이미진) 김형기
김희중(김혜전) 리효성(곽정옥) 박승희 윤희화 이선희(마포) 이승민 이영은 이정혜 이준희(양우원)
장연순 하재은(임이희) 황귀림

■ 주일헌금
김재신

■ 감사헌금
박영란 윤희화 이승민 이한(이희선)

■ 목적선교헌금
김기찬 이영은 이한 이희선

■ 장학헌금
김기찬 김대성(황경랑) 김동은(최범락) 김영일(서남희) 김재신 김종현(이미진) 김형기 리효성(곽정옥)
문주현 박준일(김가은) 이영은 이정혜 장연순 최은희

아침 묵상 나눔(9월 9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소식들이 가득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90만이 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우리 경제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지표도 보았습니다.
사회적인 갈등에 관한 뉴스도 보았습니다.
뉴스를 읽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혼돈과 어둠으로 채워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소란스럽고 척박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평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장피에르 드 코사드(1675-1751)의 기도문 일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당신의 아이로서,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당신의 선물로 받아들여,
당신의 선하심과 지혜를 세상에 드러내며 살고 싶습니다.
결코 바닥날리 없는 당신의 두터운 사랑을 의지하여 살고 싶어요.
당신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것이 저를 먹여 기르는 빵이 되고,
저를 깨끗하게 하는 비누가 되며,
저를 순수하게 만드는 불이 됩니다.

‘당신의 아이로서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선물로 받아들이겠다’는 기도자의 마음을 우리도 품고, 바닥날리 없는 주님의 두터운 사랑과 은총 가운데 머물기를 바랍니다.

오늘 새벽에 묵상한 말씀은 창세기 42장의 전반부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왔다가 요셉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야곱의 지시를 받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온 형들이 요셉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는 그가 요셉인 줄 모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합니다.
요셉이 꾸었던 꿈(창세기 37장)이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절하는 형들을 알아보고는 ‘형들을 두고 꾼 꿈을’(9절) 기억했지요.
결국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꿈을 막기 위해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고, 팔아넘겼지만, 꿈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꿈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섭리, 곧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정을 이집트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요셉이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꿈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꿈을 자신을 이집트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이집트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자신과 함께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가족 모두를 이집트로 데려올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갚고 복수할 기회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신 안에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감정에 이끌려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보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 뜻을 이룰 때까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주께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온전히 주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8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태풍 하이앤이 많은 피해를 입히고 소멸했는데요.
태풍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어제 차를 운전하여 후암시장을 지나다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제게 큰 여운으로 남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는데요.
퇴근길의 사람들이 비를 피해 서둘러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는 복잡한 길이었는데,
그 길에서 한 아이가 빗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서
팔짝 튀어오르면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우산 밑으로 그 아이의 즐거워하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저 아이처럼 살지 못할까 생각했습니다.
빗물 웅덩이만으로도 그 아이에게는 훌륭한 놀이터가 되고,
그래서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았는데요.
우리는 작은 즐거움과 기쁨을 찾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지요.
오늘은 삶 속에 작은 즐거움을 찾고 기뻐하며 사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시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가을 날>(라이너 마리아 릴케)입니다.
가을이 속히 우리 곁에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다시 함께 감상하고 싶습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들이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영글도록 명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송이 속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가면서
잠 못이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맬 겁니다.

오늘 아침에 묵상한 말씀은 창세기 41장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지혜를 인정받고,
이집트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결혼을 하여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얻은 이야기,
그리고 총리가 된 요셉은 일곱 해의 흉년을 준비하기 위해 일곱 해의 풍년 동안 식량을 비축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런데 바로가 요셉을 중용하면서 그렇게 말하지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지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통해 세상과 이웃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늘 성령의 임재를 인정하고, 성령에 이끌려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보다 우리 자신이 앞서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에 이끌려 사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보냄 받은 사람답게 ‘아바드’ 곧 타자를 이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4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때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기온이 낮아지고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그래선지 어제저녁 남산 산책로에서 마주친 사람 중에는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보다는 긴바지 차림의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도 결국 때가 되면 사라지고 변화될 것이며,
새로운 질서가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
오늘도 새로운 질서를 이루시는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좋은 친구>(김시천)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가까이 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대가 먼 산처럼 있어도
나는 그대가 보이고
그대가 보이지 않는 날에도
그대 더욱 깊은 강물로 내 가슴을 흘러가나니

마음 비우면
번잡할 것 하나 없는
무주공산
그대가 없어도 내가 있고
내가 없어도 그대가 있으니

가까이 있지 않아서
굳이 서운할 일이 무어랴

가을은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나는 계절이지요.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혹 가까이 있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시인의 노래가 위로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가까이 있지 않아서 굳이 서운한 일이 무어랴’

오늘 새벽에는 창세기 39장을 묵상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으로 팔린 요셉의 소년기와 청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13살에 팔려와 종이 된 소년, 그것이 이집트에서 요셉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기준으로 보면, 가장 비천하고 볼 것 없는 존재였지요.
그러나 그런 요셉과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함께 계시며 그를 돌보시고, 형통하게 하셨으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 덕분에 요셉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집 주인의 집은 요셉으로 인해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경호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은혜를 입어 산 것이 아니라,
보디발이 히브리 노예 요셉으로 인해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변함없이 그와 함께 계셨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이 아침에 고백합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와 함께 계시며 복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우리와도 함께 하시며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며 돌보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요한 유혹 앞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코람데오의 신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시며 그를 돌보신 것처럼, 우리도 돌보십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돌보심과 사랑에 의지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3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바비, 마이삭 그리고 하이선.
지난주, 금주 그리고 다음 주에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이름입니다.
지난주에도 태풍을 걱정했고,
금주에도 우리는 태풍을 염려했으며,
다음 주에도 우리는 태풍의 위협 앞에 서야 합니다.
지나간 태풍과 지나가고 있는 태풍 그리고 오게 될 태풍을 경험하면서,
저는 우리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큰 비바람이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으며 또 찾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풍과 같은 일이 없는 삶을 기원하기 보다는
태풍 속에서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 평안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쇠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현존 안에 살면서,
사람 모습으로 땅위를 걸으시는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낡은 전통의 때 묻은 유리창이나,
현대의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의 눈을 통해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에 있던 그대로의 당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
앞으로 언제나 있을
그대로의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사람의 오만을 무너뜨리고,
비천한 밑바닥 인생들과 함께 걸어가는 겸손의 사람,
그러면서도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로서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그분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안경으로 그분을 이해하지요.
오늘은 그 안경을 벗고,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창세기 38장을 묵상했습니다.
유다와 그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난데 없이 유다의 이야기가 들어와 있는 구조입니다. 아마도 요셉과 유다를 대조하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내려간 무렵에 유다는 스스로 아둘람의 가나안 문화 속에 동화됩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그리고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그들 중에 에르와 오난은 주님 보시기에 악하였고, 그래서 주님께서 치셔서 죽이셨습니다. 유다의 가정이 가나안 문화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유다 가정에 비극적인 일들이 겹쳐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남은 아들 셀라가 장성한 후에도 다말에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계대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가나안 출신의 다말이 적극적으로 움직입니다.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같이하고 임신을 하지요.
그리고는 간음하여 임신했다고 자신을 끌어내 화형시키려는 유다에게, 유다가 주었던 담보물 곧 도장과 허리끈과 지팡이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유다가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아침에 묵상하며, 유다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죄에 둔감했던 유다는 자신이 다말에게 주었던 담보물을 보면서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자신보다 옳다고 인정하게 되지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참 듣기 어려운 표현이 있습니다.
“내 탓이오”
대신 우리는 늘 ‘내가 옳다’는 주장을 담은 외침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도 자신이 그를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지요.
그래서 늘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물론 진리와 거짓은 구분해야 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유다가 자신이 주었던 담보물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발견한 것처럼, 자신 속에 있는 거짓과 악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직면해 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타인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옳다’라고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변의 사람들에게 ‘네가 옳다’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침 묵상 나눔(9월 2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주간 저는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코로나의 확신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국적으로 강화되어서
금 년 휴가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걷고 쉬는 휴가를 보냈습니다.
첫 삼일은 아들과 함께 강원도와 경상도의 한적하고 걷기 좋은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어느새 다 자란 아들과 함께 걷고, 걸으며 대화하고, 한적한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다음 이틀은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니 9월입니다.
9월을 시작하며 ‘9월 마중’(윤보영)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은
일찌감치
9월 마중을 나섰습니다.

함께 해온 8월을 데리고
9월이 오고 있는
행복의 언덕으로 가고 있습니다.

새로 맞을 9월!
넉넉한 10월만은 못할 수 있고
정열적인 8월에 뒤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9월은 중요한 달입니다.

남은 열정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웃으면서 10월에게
자리를 내어 줄 수 있게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우겠습니다.

9월을 마중 가는 오늘처럼
10월을 마중 가는 그날도
9월과 웃으며 갈 수 있게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겠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9월에도 모두를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미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만, 9월에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시인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멈추지 않는 코로나의 확신으로 인해 모두 지쳐가는 때에 가족과 교우들에게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창세기 37장을 묵상하며 나누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읽다 보면, 스토리가 형들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형들의 음모, 악한 계획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형들의 악한 생각과 계획과 음모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요셉은 상인에게 팔리고 결국 이집트 바로의 경비대장 보디발에게 팔리게 되지요. 표면적으로 보면, 악한 인간의 본성을 가진 형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실행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를 이루셨다는 사실을요.
요셉을 이집트로 가게 하시고, 그곳으로 야곱의 가족을 이끄셔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그 이야기 안에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악한 인간의 계획과 뜻이 강하게 드러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그런 현실에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고 경험하는 현실 너머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기억하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겪는 현실을 우리는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그 선하신 하나님을 뜻에 따라 사시길 바랍니다.

계좌이체 헌금자 명단(8월 26일 – 8월 31일)

귀한 예물 감사합니다. 누락되거나 항목이 잘못 기재된 분들은 사무실로 연락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십일조
강원준(배수경) 김민섭(정진용) 김순겸(이선희) 김영일(서남희) 김재신 김형순(육순연) 리효성(이한샘)
문대승 배태덕(김영옥) 유청희 이만섭(김은희) 이정우(전영숙) 이종현 이형준 장연순 허은비

■ 주정헌금
강원준(배수경) 김대성(황경랑) 김동욱(백경미) 김영일(서남희) 김정남(송요천) 김형기 김형순(육순연)
리효성(곽정옥) 박승희 박영란 방희성 유성필(나카가와애리) 이선희(노원) 이선희(마포) 이준희(양우원)
장연순 최은희 하재은(임이희) 허정강(이진숙)

■ 주일헌금
김재신

■ 감사헌금
권우경 김영일(서남희) 유청희 허정강(이진숙)

■ 목적선교헌금
리효성(곽정옥) 이정우(분당) 이한솔 최은희

■ 장학헌금
유성필(나카가와애리) 이만섭(김은희)

담임목사 9월 목회서신

9월의 첫날 성도님들께 영상으로 드리는 담임목사의 목회서신입니다.

아침 묵상 나눔(8월21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에 살지만, 주님과의 친밀함을 지켜가시길 바랍니다.

구청에서 보내주는 확진자 이동경로에 대한 안내 문자가 하루에도 몇 개씩 들어오는 걸 보면서,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를 실감합니다.
오늘도 코로나 감염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시는 <하루>(작자 미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번에 하루를 허락하십니다.
하루면 웃기에 족한 시간입니다.
그 웃음으로 우리는 웃음에 뒤따르는 어떤 눈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침묵하고 함께 춤추기에 하루면 족합니다.
어려움 중에 있는 누군가를 돕기에 하루면 족합니다.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주목하고
그것을 지으신 분을 찬양하기에 하루면 족합니다.
용서의 다리를 놓고 분노의 벽을 허물기에 하루면 족합니다.
친구를 포용하고 낯선 이들에게 미소짓고 아이들과 함께 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에 하루면 족합니다.
우리가 허락받은 이 하루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 이라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지 않는 것이 지혜이겠지요.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 오늘 하루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격려하며 찬양하는’ 기회로 삼고 사십시오.

오늘 새벽에는 이사야 30장의 후반부를 묵상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재앙과 화를 선포하셨던 주님께서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구원과 회복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신다’(18절)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은혜와 긍휼을 통해 이루시는 구원과 회복의 질서를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신다고 응답하실 것(19절)이라고,
그때 주님은 그들의 인도자와 스승이 되어주실 것(20절)이라고,
그때 주님은 그들의 땅에 곡식이 풍성하게 하신다고(23절),
그때 주님은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치유하신다고(26절) 약속하셨습니다.
반면 그때 주님은 대적자 곧 앗시리아와 주님이 친히 싸우셔서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덕분에 유다와 예루살렘은 구원을 얻고 ‘마음에 기쁨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나아가게 될 것’(29절)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만나는 주님은 구원과 회복의 주이십니다.
한결같은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 때문에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길 수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와 고난의 상황에서 더욱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담아 새기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이사야 30:18)

아침 묵상 나눔(8월20일)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어제는 교회사무실을 통해 저를 찾는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30년 전, 함께 교회 청년부를 섬겼던 선배의 전화입니다.
그 시절 매우 가깝게 지냈던 선배인데,
교회를 떠나오고 각자 살아가느라 교제가 끊겼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제가 섬겼던 그 교회의 장로가 되셨고,
교회사를 편찬하는 일을 맡았노라며,
제게 글을 청하기 위해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화로 통화하는 동안, 30년의 간격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때의 친밀했던 ‘형’이었습니다.
웃으며 통화를 마치면서 만나 식사하기도 약속했습니다.
통화를 마치며 사람 사이의 친밀함을 지켜가는 일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기대하시는 일은 ‘친밀한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관계가 깨어진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 이사야 30장을 묵상하며 그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화가 닥칠 것이다’(1절)고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화’를 선포하신 이유는 그들이 앗시리아로 인한 위기의 상황에서, 주님께 돌이키기 보다는 ‘이집트’를 의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그들의 보호를 받고자, 사신에게 선물을 들려 이집트에 보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헛된 망상’(7절)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집트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백성’(6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집트를 ‘쓸모없는 백성’(5절)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이집트를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시면서, 그들이 ‘죄에 죄를 더할 뿐’(1절)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화가 닥쳐서 ‘성벽이 무너지듯, 토기장이의 항아리가 깨어지듯’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화를 당하고 무너지게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15절)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길은 언제가 동일합니다.
주님께 회개하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잠잠할 수 있는 사람이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유다와 예루살렘은 왜 그 구원과 힘의 길을 버리고 이집트를 의지했을까요?
그들과 주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그들이 주님께 ‘묻지 않았고’(2절),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9절)입니다.
묻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러니 그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랬습니다.
주님께 물으려 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주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주님이 주시는 구원과 능력을 구하거나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멸망과 파멸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잘 지켜가시는지요?
주님께 묻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요?

인류는 지금 큰 위기와 도전을 겪고 있습니다.
이 위기의 시대에,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잘 지켜가며, 주님이 주시는 구원과 힘을 풍성하게 누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계좌이체 헌금자 명단(8월 11일 – 19일)

귀한 예물 감사합니다. 누락되거나 항목이 잘못 기재된 분들은 사무실로 연락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십일조 김의진(신윤섭) 나건(이순영) 이영수(하동옥) 이정양 이주희 이한(이희선) 차준석(김정자)

■ 주정헌금
김기봉(이복기) 김대성(황경랑) 김정남(송요천) 김영순 김형기 나건(이순영) 박승희 박영란 박주현 이세희 이영수 이영은 이정양 이준희(양우원) 이한(이희선) 장연순 차준석(김정자) 하동옥 하재은(임이희) 황귀림

■ 감사헌금
무명

■ 목적선교헌금
이영은 하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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