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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노인전문요양원 어르신 가족수기 <보건복지부 장관상 대상 수상>

타국에서 “그리운 어머니, 내 어머니”

공부한다고 타국에 왔다가 결혼하고 정착해 살면서 엄마와 한국을 그리워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엄마는 매년 계절이 반대에 있는 우리 가족을 찾아와 주셨다. 딸과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영어가 안 되지만 용감하게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셨다. 11시간 비행기 여행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여쭈면 그때마다 전혀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고 하셨다. 왜 힘들지 않으셨을까. 밤 비행기에서 잠을 설치고 낮 비행기에서 잠을 청해야만 하는데. 내가 아들 둘을 낳았을 때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그 때마다 3개월씩 계시면서 돌봐 주셨다. 그 아들 둘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고 남편과 나도 40대 후반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혼자서는 찾아오지 못하는 엄마를 그리고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먼 길을 오셔서 딸에게 집안일을 간섭하시고 한국말이 서툰 사위에게 손짓발짓으로 이일저일 시키실 때면 그걸 우린 ‘잔소리’로 여겼고 의견 충돌로 부딪히기도 했다. ​이제 와서 엄마의 잔소리가 그립다면 거짓이다. 단지 그런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엄마가 그리운 것이다.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조카가 직장과 외부활동으로 바빴던 오빠에게 “아빠, 할머니가 이상해.”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오빠가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고 후회하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웃음이 많고 사교성이 좋아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셨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셨다. 드라마는 시시하다고 보지 않으셨지만 가요무대는 늘 기다리셨다. 주무시기 전에 모두를 위한 기도를 하시고 졸음을 참으면서 성경책을 매일 밤 읽으셨다.

그런 엄마가 말수가 줄어들고, 잘 웃지 않으시고, 화를 잘 내시고, 무료함에 텔레비젼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시고 자주 잠에 빠져 드셨다고 한다. 모두들 엄마가 연세가 드시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본인조차 모르게 앓고 계시다가 텔레비전과 잠 속으로 숨어버리고 결국 알츠하이머 속으로 숨어버리셨다.

정부의 여러 가지 치매노인을 위한 혜택을 받은 엄마를 보며 노인복지가 호주보다 더 잘 되어있고 돌봐주시는 분들도 내 어머니처럼 생각해 주시는 게 보였다. 너무 심하지 않으실 때는 요양보호사가 정기적으로 오셔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셨고 이후엔 주간보호센터에 매일 가셔서 종일 시간을 보내시면서 돌봄을 받으셨다. 그리고 지금은 영락노인전문요양원에서 보호를 받고 계신다. 그곳에서 다시 활기를 찾으신 엄마를 작년에 뵙고 오고 거의 매일 밴드에 올라오는 노래하시는 사진, 춤추는 사진, 다른 분들과 소통하시는 사진,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 감격스러워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알츠하이머는 멈춰있다. 자식들과 손주들을 알아보신다. 여전히 매일 밤 아들이 데리러온다고 기다리시다 아들이 오면 깨워준다는 요양보호사님의 말을 듣고 편하게 주무시고 다음날을 맞으신다는 엄마. 밤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용변을 묻히셔도 불평하지 않으시고 옷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시는 요양보호사분들을 보며, 자식인 나도 못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시고 감당해나가시는 것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엄마도 보통 사람처럼 아기로 태어났다가 다시 아기가 되신 거라 여긴다. 육체적으로 도움을 받던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던 모든 노인들이 그런 것처럼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엄마에게 지금은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고 기본적인 것에 울고 웃고 하신다. 그 모습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오늘 맛난 걸 드시고, 좋은 곳에 다녀와도 내일이 되면 기억 못하신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이 즐겁고 행복하신 거다.

​엄마가 계신 그 세계를 알고 싶다. ​그래서 엄마가 정말 원하시는 걸 해드리고 싶다.
끝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영락노인전문요양원 관계자분들께 감사와 축복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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