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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생의 비밀 속에 담긴 6·25사변의 참상

나의 친어머니는 충청도 미단이라는 곳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해방 이후 지아비를 여의고 난 후 당신께서는 혼자서 남겨진 어린 네 남매를 데리고 살길이 너무도 막막하여 발길이 닫는 곳으로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까지 오게 되었지만 무일푼의 다섯 식구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곤궁한 생활상을 본 이웃 어르신 한 분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안의면 강부자 집에 자손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으니 혹여 그 집에 가서 자식만 한 명 낳아 주면 다섯 식구 의식주는 해결 될 터이니 한번 선이라도 가서 봐보라는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강부자 집인 나의 부친과 생활을 같이 하신 후  부친 나이 오십에 나를 가지셨다고 한다.
그때 6·25사변이 일어나 음력 7월쯤   그 유명한 안의 거창전투가 치열할 때 산달이 되어 인민군이 함양, 거창을 점령할 즈음 그 전쟁 중에 내가 태어났다고 한다.

나의 친어머니는 내가 네 살쯤 되는 해에 전 남편에게서 얻은 자식인 사 남매를 데리고 나의 고향을 떠나셨고 아버지의 본부인이신 오늘날 나의 청장년 시절까지 나를 키우신 큰어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혹여 내가 성장하고 자라면서 겪을 정신적 혼란을 염려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을 형님 누나들과 함께 떠나가셨다고 한다.

그 후 내 나이 19세 때 어떻게 연통이 되어 친어머니를 뵐 수 있는 계기가 있어 나의 출생의 비밀을 대충 알게 되었고 외동인 나에게 성씨가 다른 두 형님과 두 누님이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마전 처음으로 지난 세월이 작게는 나와 그리고 비록 아버지는 다르지만 내 형제에게, 크게는 우리 민족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다시 되돌아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내 나이 고희가 되어 형님, 누님과 나의 안태 고향인 안의면에 있는 농월정에서 만나 나의 출생의 비밀을 가감 없이 들려주셨다.

큰누님이 90세, 큰형님이 84세, 작은 누님이 82세, 작은형님이 80세가 되어 70년 만에 만난 나의 출생지는 이제 여행객의 숙소가 된 여관이 들어서 있었다. 이 여관터에서 내가 태어나고 기거한 장소였다는 누님과 형님들의 생생한 진술에 가슴이 아련하게 아려왔다.
내가 태어난 그곳에서  지난 얘기를 나누기에는 비록 짧은 몇 시간이었지만 70년 전의 기억을 생생히 전해 들은 나에게는 가슴 아픈 충격이자 슬픈 감동의 역사였다.

내가 비록 전쟁 동이로 태어났지만 아픈 전쟁의 참상을 생동감 있게 모르고 있고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이번의 이 번 우리 다섯 남매들의 만남을 통해 생생한 공산단과 인민군이 개입한 전쟁의 참상과 만행을 전해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6·25사변의 참상이 기록물이나 역사책으로 접한 간접적인 경험이라 그 당시 얼마나 비참하고 잔인한 했던 전쟁의 참상인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이번에 나의 두 분의 누님과 두 분의 형님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쟁의 참화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비록 우리 형제 자매들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행하고 가슴 아픈 추억이지만 동족상잔의  비참한 전쟁의 비극을 생각하면 동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국가가 존재함이 얼마나 소중하며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나는 이제 짧은 여생이나마 나를 살아 남게 해 준 하늘에 감사하며 그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사명을 되새기며 후학들을 위하여 더 이상 이러한 비극적 역사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나의 소임을 찾고 나아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나와 같은 이 불행한 역사를 맞이하지 않도록 심명(心命)을 바쳐 봉사하고 앞날의 인재 양성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을 다짐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바보클럽 아침명상편지
해수(海水) 강민수

사람의 능력

인간의 능력을 평가할 때 학력이나 지능지수 등과 같은 수치로 따진다면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하지만 사람의 능력의 평가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평가 척도를 달리하는 현상 및 준비된 자의 지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의 능력을 재어 보는 것은 신분의 차별을 두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소임과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할 인물을 찾아서 그 능력에 맞는 사람을 천거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정치학박사가 정치를 잘한다고 할 수 없고, 법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모두 판사나 검사가 아니듯이 경제학이나 경영학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사업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물론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능력이란 것이 반드시 이 학력이나 지능지수에 맞춰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사가 사업을 하게 되면 사업하는 기업이나 단체가 성적 순서대로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학교 교육을 통해서 나타난 출신학교와 최종학교 중심의 간판문화에서  모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가 능력의 평가 척도 변인도 변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상도 종래와는 많이 달라 그 순위가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
성자 예수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에 된 자가 먼저 된다.’ 는 것이 이와 같다.
사람의 능력은 하루 아침에 쌓는 것도 아니고 만 가지의 경우의 수와 다양한 경험 및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이것이 인생사와 함께 병립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 철학, 학식 등이 필요한 것이다.

항상 순위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단시간의 비교는 학력이나 경제력으로 할 수 있겠지만 장시간의 인생 여정 속에는 첫째 건강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마인드 컨트롤이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인도의 경전 한 구절 인용으로 이 명상편지를 맺을까 한다.

“남과 싸워 이긴 자는 강한 자이다.
모두를 싸워 이긴 자는 더욱 강한 자이다.
나와 싸워 이긴 자는 더욱 더 강한 자이다.
하늘에 엎드려 감사한 자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이다.”

바보클럽 아침 명상편지
해수(海水) 강민수

돈과 사랑과 영혼

만약 우리에게 돈과 사랑, 영혼 중,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대는 무엇을 택하겠는가?
또한 어떤 하나를 이 중에서 반드시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리겠는가?
어떻든 이 세 가지 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없어서는 안 될 꼭 있어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말들 중, 순위를 매긴다면 가장 먼저 새겨 둬야 할 가장 비중을 두고싶은 낱말은 무엇이며 어떻게 순서를 새겨 둬야 하겠는가?

이렇게 선문답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은 바로 맑은 영혼 안에 사랑이 담기게 되어있고 그 사랑 안에서 돈과 명예도 싹이 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과 명예만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사랑과 영혼도 함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이자 착각이다.
이런 생각을 만약 가지고 산다면 언젠가는 인생 여정의 먼 길에서 후회막심한 삶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또 뒤늦게 깨달아서 이를 되돌리려고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어떤 대상이나 상징적 매개체도 사랑과 영혼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해 왔더라도 이런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맑은 생각과 영혼으로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그 사랑 속에서 봉사의 정신도, 생활 속에서 덕성(德性)도 싹이 트고 몸과 마음 및 건강이 이루어지며 인간관계가 잘 맺어져 돈도 명예도 뒤 따라 오게 되는 것이다.
바보론자적 가치관과 봉사정신을 토대로 하여 나 자신의 의식 수준을 개선시키고 합리적 변화를 유도할 때 돈도 사랑도 영혼까지도 모두 가질 수 있는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바보클럽 아침명상편지
해수(海水) 강민수

돈과 명예, 사랑조차도 정신 안에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혼(魂)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 낸 정신의 힘이다.
만약 정신이 고장이 나면 돈도 벼슬도 사랑도 모두 다 사라지는 이슬과 같은 것이다.
만약 세상을 다 가지고도 정신의 안식(安息)이 되어있지 않으면 혼란의 연속으로 인해 고뇌(苦惱)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숙명(宿命)인지도 모른다.

오직 욕심만으로 달려온 지난 세월의 관성(慣性)적인 삶에서 벗어나려고 고뇌한다든지 이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서 세상을 바삐 살다 보니 이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고뇌 속에서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 대단한 것이라 여겨 나의 존재까지도 곧 사라진다는 것은 잊고 사는  것이다.
너의 존재도 나의 존재도 그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존재 자체조차도 의식에 담아두지 않고 산다는 말들을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 많이 듣고 살지만, 존재라는 의미 자체를 뼛속 깊이 자각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별 의미 없이 사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교의 반야심경에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무의식계(無意識界) 무노사(無老死)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란 말이 나온다.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모든 감각이 나이가 들면 없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관념과 집착도 결국 없어진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우리 삶의 모든 현상(現像)은  정신계 안에 들어 있는 것이지 모두 다 사라진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을 얘기한 것이다.

이것은 허무(虛無)에 빠지란 말이 아니라 정신세계 안에 모든 것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얘기들이다.
그래서 나의 정신세계를 잘 관리해야 모든 것을 필요로 할 때,  시기와 장소에 맞게 적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의식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정신에 안식이 없는 소유는 예수가 말한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 가기보다 힘들다. ”는 말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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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海水) 강민수

낙천(樂天)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다.
아무리 낙천적으로 살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성격적으로 낙천적으로 산다는 말도 잘들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낙천이란 하늘의 존재를 알고 그 곳에 나의 목숨까지 믿고 맡겨야 하는 철학이 요구되는 깊고 높은 영적 수준이 있어야 가능한 마음 자세이다.
그냥 될 때로 되어라 하는 식은 낙천이 아니다.
이것은 인생을 가볍게 여기고 철학이 없는 존재가치보다 편하기만 하면 된다는 인생 낙오자들의 생활방식이다.

진정한 낙천자들은 하늘의 명령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도래한 상황을 처리할 때 현명함에 부족함이 없고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때를 맞추어 나의 운명을 개척할 줄 알며 나의 역량에 넘치는 일은 하늘의 뜻에 따라 무리하지 않는 덕(德)자들을 말한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代天命)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난 뒤는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삼국지에서 유래한 한자 성어 중 하나로 원래는 제갈량이 말한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낙천이란 목숨까지 하늘에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말함이다.
그래서 무리(無理)수를 두지 않는 자를 일러 낙천자라 하는 것이다.
이 뜻이 가슴에 와 있는 순간부터는 건강은 물론이고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잘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남이 보기에도 바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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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海水) 강민수

공부란 착각을 벗는 작업

공부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착각의 그늘을 벗고는 작업이라 말한 것이 20년 전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에서 이다.
요즘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써 보는 서예(書藝)나, 운동과 친교로 하는 골프도 꼭 이와 같다.
50년 전 쓰던 서필에 그 때를 생각을 떠올려서 써 보지만 좀처럼 지난 세월의 착각을 벗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착각의 숲을 해쳐 나오기 위해서 새로이 더 나은 선생님을 모셔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또한 30년을 넘겨온 긴 시간의 골프운동도 초보생들의 스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멀리 가 있는 나의 스윙 폼을 다시 점검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 노력이 다 공부라는 것에 마음을 두니 새삼 배워 놓은 공부가 다가 아니라 하던 일을 하면서도 또 어딘가 착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험증(驗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인생사 모든 일이 한번 배운 것이 다가 아니라, 지난 생(生)을 뒤돌아 보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 또 
새롭게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다지고 다지는 일을 반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은 학생이란 마음으로 나의 착각은 내가 먼저 발견하는 자세가 인생을 프로로 사는 삶이라 생각한다.
한 번 배운 지식으로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영원히 아마추어를 면하지 못하고 만다.
골프의  경우도 프로들의 운동 모습을 남이 보면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그렇게 정확히 칠 수가 없게 보이지만 매일 천 개 이상의 공을 치며 샷을 점검한다고 한다.

우리 바클 회원들도 다시 태어나는 자세로 봉사도 봉사이거니와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여서 더 나은 자신의 성장뿐만 아니라,  삶의 보람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나아갈 길을 자기 연찬을 통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착각의 늪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배움의 길에 정진해 주기 바란다.

바보클럽 아침명상편지
해수(海水) 강민수

목표가 없는 향해는 뜬 구름과 같다.

일생이 아무리 짧다고 하지만 나의 역할이 있기에 생명의 주체로 태어나 만 사람에게 울음으로 고(告)하고 지금에 온 것이다.

생각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하나의 실에 꿰이고 또 꿰어져서 사상과 이념이 만들어 지고 그 생각의 다발을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가는 과정이 나의 역할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든 또 누구의 생각이든 하늘의 뜻이라면 받들어 행하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고 산 자들의 보람과 행복으로 닿아 오는 것이다.

만약 역할이 없다면 삶이란 뜬구름과 같은 삶이다.
그 것이 누구를 위한 사랑이라도 좋고 애국이나 인류애라도 좋다.
이와 같이 역할이 있어야 나의 정신에 질서가 잡히고 망상이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혼자라는 외로움에 시달리지도 않는 것이다.

내가 가는 그 길이  보람과 행복으로 펼쳐질 때 비로소 삶의 목표가 보이고 그 목표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계산으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나만의 사명(使命)이 곧 행복과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 끈을 놓치게 되면 다시 잡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어쩌면 영영 평생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바보클럽 아침명상편지
해수(海水) 강민수

집중(集中)과 긴장

집중이란 많은 일중에 한 가지 일을 때에 맞추어 마음을 쏟는 것이고 긴장은 앞으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걱정을 동반한 집중이다.
집중은 명상의 과정이고 긴장은 온 정신과 몸을 움추리는 과정으로 정리하고 싶다.
집중하는 동안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상태이고 긴장이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해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흔히들 긴장을 놓치지 말고 일을 처리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상대를 더 피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대를 혹사시키는 것과 같다.
사이비종교에서 흔히 재림 예수가 오실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라고 신도들을 다그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긴장이란 잠시 집중이 어려울 때 하는 것이라야 하는 것이지 먼 인생길에 긴장이 연속되면 바로 신경쇠약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인생사에서 아무리 중요한 과제라도 긴장의 연속은 사람을 더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신경증 내지는 정신분열증으로 진행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명상의 과정을 거쳐 집중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여기에 있다.보통 일의 중요 순서를 잃고 동분서주하는 것은 긴장의 연속에서 오는 하나의 혼란 상태이다.
그 혼란은 성격(性格)으로 이어지면 평생을 허둥대다 생을 마감하는 수도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바보 이반’이 이를 잘 표현해 주는  문학작품이다.
“바쁠수록 둘러가라” 는 우리나라의 속담이 오늘 명상편지의 주제로 제격이다.
일의 우선순위와 자기 여건의 함량(含量)을 잘 살필 수 있는 명상없이는 열심히 하면 할 수록 더 인생이나 성공을 망칠 수가 있다. 아예 나태한 자가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는 데는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욕심만 가지고 살면 더 많은 일들이 긴장속에서 연속되어 성공한 모양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복한 성공, 즉 인간승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성공이란 목표의식에서 긴장이 계속되어  심신의 과부하로 쓰러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고 있다.오늘 할 일은 오늘하고 내일 할 일은 내일의 오늘이 하여야 한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집중력이 생겨 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보클럽 아침명상편지
해수(海水) 강민수

아무리 천천히 살려 해도 세월이 놓아 두지 않는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세상과 이별하고 현생을 떠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잠기면서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요즘 사람들을 볼라치면 왜 그렇게들 바쁘게 사는지? 또 욕심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
혹자는 살아있는 이 귀한 존재를 생각지도 않고 헛된 망상에 젖어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살아 있는 존재의 가치를 말하자면, 소유의 한계를 넘어 이 세상이 모두 다 자기 것이라 할 지라도 죽은 자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생존의 귀함이다.
이것을 중국 삼장법사가 석가의 말을 번역해 다듬어 놓은 금강경(金剛經)에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수보리(須菩提)에게 묻고 답하기를 수미산(인도에 있는 백두산보다도 큰 산이름)만한 칠보(七寶)라도 사구게(四句偈 : 존재도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것을 살아서 깨닫고 있어야 할 몇 마디의 말)만 못하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나의 존재는 어떤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도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결국 형상이란 것은 없어 질 것이 뻔한  것이듯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귀한 생존의 시간을 아무리 늦추려 해도 세월에 밀려 가는 모습이 일출(日出)에 비해 석양(夕陽)은 너무나 빠른 것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천금같이 쓸 수 있는 나의 마음 정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을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젊디 젊은 날도 허송세월하기에는 너무도 인생이 짧은 일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여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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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海水) 강민수

율법(律法)과 사랑의 대조

한국의 역사 중, 조선왕조 시대에는 도덕률에 감금된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율법을 공맹(孔孟) 사상과 결합시켜서 인간 본연의 인륜적 가치관 확산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개조하여 사농공상(士農工商)이나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틀을 만들어 상공인이나 여인들을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대인의 구약성서 같은 경우도 십계명의 율법으로 사랑의 자비(慈悲)를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신약성서를 믿지 않는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다른 나라의 민족이 더 숭배하는 사랑의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서기(西紀)를 세계인이 다 사용하는 예수 탄생일조차도 용서치 않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감성(感性)과 오성(悟性)을 생각지 않는 보수(保守)적 사고방식이 굳어진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한 나라의 도덕률이나 종교적 진리관도 세뇌(洗腦)된 의식이 관념의 틀에 갇힌 결과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도덕률이나 법, 즉 율법도 사랑을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기면서 오늘의 이 명상편지와 친해지고 있다.
사람들 모두가 지향하는 진리관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탄생시키고 행복에 미치는 사랑을 무시하는 율법은 기존 지배권자들에 세뇌(洗腦)된 하나의 틀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백년을 넘기지 못하기에 역사는 정반합(正反合)의 원리에서 그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헤겔이 말한 정반합(正反合)을 얘기코자 함이 아니라 역사는 권력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순회(巡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권력이 만들어낸 교육방식이 대중에게 세뇌(洗腦)되어 대를 이어온 결과로 생긴 대중(大衆)의 사고(思考)의 틀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권력보다 사랑을 찾는 대중이 많기에 종교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물론 사랑으로 현혹시키고 율법으로 가두어 신도들을 모아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도 성행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어떤 율법도 사랑이 없는 한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상식(常識)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 사랑이 바로 자유와 평화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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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海水) 강민수

명상(瞑想)의 효과

우리는 생활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명상들을 많이 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명상의 순간순간 엉뚱한 생각들이 끼어들게 되어 생각의 틀을 흔들어 놓거나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와서  명상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 끼어드는 엉뚱한 생각의 조각들도 모두 다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온갖 생각들이 겹쳐지게 되면 몸이 지치거나 감성의 피로감으로 뇌를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지럽혀진 방을 우리가 정갈하게 치우듯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많은 잡념들도 한 곳에 모으거나 머릿속을 깨끗이 청소하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루의 생활 리듬을 잡는 것도 무척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하루의 리듬을 놓치게 되면 마음이 번거로워서 우선 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가 곤란할 때가 많다.
물론 처리야 어떻게든 하게 되겠지만 하나의 높은 창의적 생각은 갈무리가 잘되지 않을뿐더러 조각난 생각들의 요소요소들을 합리적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낸 자들이 아니라,  생각의 한 점에 머물러 그 곳에 마음을 쏟아 붓는 명상으로 즉 각(覺)체험(體驗)을 한 자들이다.
아무도 보지는 않지만 수행자들은 자신의 하루를 잘 배분하여 규칙적 생활로 일상을 보낸다.

철학자 칸트는 걸으면서도 명상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늘 같은 정확한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칸트가 지나가는 것만 보고도 그 시간을 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일리(一理)가 만리(萬理)라는 것은 한 가지 일에 일각을 이루면 다른 만 가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하나 하나 다루어 나가야지 만 가지 생각을 한꺼번에 거머쥔 채 일상을 보낸다는 것은 잡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음은 한 점에 머물고 몸은 부지런해야 성공의 정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허둥대면 몸은 어디로 가야할 지를 가늠을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한 번이라도 심도 있는 명상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마음을 잡아야 남의 마음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고 일상을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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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海水) 강민수

수재와 천재

옛말에 성자는 알고 태어났고 학자는 배워서 안다고 했다.
수재는 좌뇌가 발달한 아이큐가 높고 당대의 기억과 이해가 빠른 능력자를 말하며, 천재는 우뇌가 발달한 인류 500만 년의 조상의 지혜와 도움을 받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선천적 혹은 덕을 닦아 맑은 지혜를 가진 자를 일컬음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글도 잘 못 읽는 천치 바보가 어느 한 분야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뇌의 힘 즉 조상의 지혜를 빌린 천재의 예이다.
그런데 수재들은 자기 머리만 믿고 계산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편협된 자기 신념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조직사회에서도 보면 수재들은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자에게는 과분한 친절을 베풀지만, 힘없는 부하들은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수재와는 다른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산다.
천재들은 천진 순수하다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미덕이자 품성이다.
뿐만 아니라 계산에 앞서 누구라도 다칠세라 주위를 살피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우리는 종종 수재를 천재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 이 글을 쓴다.
보통 수재들은 참모가 많다. 지휘관보다 참모가 더 똑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수재는 수집된 자료에 의해 판단하지만, 천재는 대개 직관으로 판단한다.
자료로 판단하는 것은 근시안적일 수 있지만, 직관은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휘관은 작은 일은 참모에게 맡기고 중요한 사안에만 관여하는 것이다.
“영리한 저 바보 참모들이 있기에 내가 대통령을 해 먹는다.”
는 미국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말이 떠오른다. 
천재는 이렇게 바보처럼 보인다. 그런데 수재는 바보 소리를 듣기도 싫어한다.
똑똑하게 보이기 위해 겉치장도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어 각성한 자를 자주 보기도 한다.
그래서 바보클럽의 역할이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 이 명상편지는 2013.03.07. 우리 바클 회원과 이미 함께한 바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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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海水) 강민수

신념2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의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이란 오직 이루어질 것이라는 일념이기도 하다.

미국에 있는 월트 디즈니 파크 엔 리조트가 운영하는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당신이 꿈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다.(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이 글은 꿈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꿈의 성취에 대한 신념을 선언한 것이다. 
꿈을 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념을 갖는 것은 연습과 고도의 정신적 훈련이 있어야 한다.

“신념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힘은 관심만 가지고 있는 사람 아흔 아홉 명의 힘과 같다.” 고 말한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대부분 성공한 지도자들은 이 원리를 알고 실천으로 옮긴 사람들이다.

이렇듯 신념이란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자신의 혼을 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신념을 한 곳에 쏟아 부를 때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반하게도 만든다. 부탁을 하지 않아도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자는 몇 십, 몇 백 명의 응원자가 함께 일하는 것과 같다.
 
※ 이 명상편지는 2014.02.25.에 우리 바클 회원과 이미 함께한 바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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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soul)과 뇌(腦 brain)

고대에는 사람의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여 ‘heart(심장(心臟))’라는 단어가 마음이나 사랑으로 쓰여져 왔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마음을 일컬어 뇌의 정신작용이라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가슴을 사랑으로 표현되어 쓰이기도 한다.
뇌의 작용이든 가슴의 작용이든 그 작용의 중심에는 혼이 내재되어 있다. 
이 말을 다시 부연하자면 생각이 곧 주인이요, 마음의 중심이며 그 접점에 혼이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포인트의 한 접점에서 결심이나 신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신은 혼의 도구이다. 
혼의 뜻으로 정신이 활동하는 것은 자동차의 핸들을 운전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 혼을 일러 ‘나’라고 하는 것이다.
 
심령과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혼불이 몸을 떠나면 몸무게가 몇 그램 준다고 한다.
그 혼불이 내 몸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생각과 행동의 방향이 저 높은 대령(大靈)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게 없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천도 무친 상여 선인(天道無親 常與善人)」: 즉 ‘하늘은 내 편 네 편이 없고 항상 착한 사람 편’이라는 것과 같다. 
그 착함이 하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 혼도 하늘에서 왔다 하늘로 돌아가기에 태어나서 되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죽음을 돌아가셨다고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도 혼은 하늘의 끈을 놓지 않고 뜻을 가슴에 품을 때 길이 생기고 건강한 일상에서 안식이 오고 또 다른 인류애가 생겨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뇌와 혼이 다르다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이 명상편지는 2014.02.20.에 우리 바클 회원과 이미 함께한 바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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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인간은 누구나 기다림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소망하고 염원하는 희망도 기다림의 목표점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다림, 즐거움을 찾아가는 기다림, 이 두 기다림 때문에 우리는 인내(忍耐)와 즐거움(樂)이 교차 되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이자 건강 정신의학자인 단 칸스터는 ‘정신력의 기적’에서 위 두 가지만 마음대로 된다면 우리는 더 바랄 게 없다고 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문제는 무엇에 생의 목표를 두는가에 따라 현저히 달라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 역할이 분명한 자는 기다림 자체가 즐겁게 다가오고 자기 역할이 무의미할 때는 기다림 자체가 지루한 생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더 구체화하면 사랑, 성공, 건강 등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의미는 매 한 가지이다.
어떤 기다림이든지 오늘을 생애(生涯) 최고의 날로 맞이한다면 기다린다는 마음도 다 마음에 둘 필요가 없어질 만큼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삶의 활력소도 바로 자기 역할과 사명을 행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생명력(生命力) 자체이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우주대생력에 자기 채널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명상이요 수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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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금이 곧 우주(宇宙)이고 영겁(永劫)의 한 중앙(中央)이다.

생명(生命)이란 영원하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하는 나의 의식(意識)이 곧 생명의 증명이고 시공(時空)의 정점(頂点)이다.
나의 의식이 없어지는 순간 생명도 곧 사멸하고 만다.
우주의 공간의식이나 시간 속의 생명도 모두 나의 의식에서 느끼는 존재감에서 시작되고 나의 의식의 정점에서 끝을 맺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란 의식이 존재하고 있을 때 문자나 언어적 기록으로 남기고 이것이 기록 문화가 되며 나아가 인류의 문명이 되는 것이다.
즉 나의 의식이 지식의 축적이 되고 오늘의 사회구조를 이루며 나아가 삶의 혜택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말하듯 언어가 없으면 생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의 덕택으로 말미암아 생각도 하고 기록도 하며 이것이 역사로 전해져서 문화도 되고 문명도 되어 대를 이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의식은 문화와 문명을 초월하여 존재하므로 그 주체를 생명이라 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는 데카르타의 말처럼 의식이 곧 우주와 영겁의 정점에서 맛보는 생명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시간의 소중함인데, 이 귀하고 귀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곧 천명(天命)이다.
그래서 이 시간의 쓰임을 아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사명(使命)이다.
그냥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의 귀한 생명을 헛되게 쓰는 아주 저급한 의식 수준이 낮은 일반 동물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 의식 수준이 곧 사람의 품격(品格) 인격(人格)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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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는 뭔가(음식이든 공기든)를 취하고 배출하는 선순환이 잘 돼야  삶은 물론 건강한 생을 영위할 수가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음식도 섭취는 제대로 되었는데 배출이 제대로 안 될 때 신체적 결함인 변비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디 음식뿐일까, 
재물도 이와 마찬가지로 선순환이 필요하다. 
오직 벌기만 하고 쓰기가 잘 안되는 사람을 구두쇠라 부른다.
이러한 사람 중에서는 사랑이나 우정을 논하는 이를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소비 역시 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낭비하지 않고 쓸 곳에 제대로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소비문화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절약과 근검은 삶의 필수 조건이다.
건전한 소비란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절약이다.
아무리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도 건전한 소비가 되지 못하고 낭비란 문화에 젖어서 살기 시작하면 얼마 가지 못해 경제적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어찌 낭비가 재물뿐이랴. 
돈을 낭비하면 거지가 되고, 시간을 낭비하면 건달이 되고, 정신을 낭비하면 폐인이 된다.
건전한 소비문화 정착을 위한 우리들의 가치관 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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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원질(宇宙原質)

하느님은 존재한다,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인식과 관계없이 우주원질이 있다. 
이것을 우주대생력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이 우주원질에 안테나를 꽂는 작업, 이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가 진리를 향하고 있을 때 나와 우주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도통(道通)이라 한다. 
 즉, 의식이 진리를 향하고 있을 때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우주원질과 통하는 것이다.
통하는 관념의 통일이 확실할 때 생명은 불사의 신념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 생과 사의 개념이 없어진다. 
우주원질은 죽거나 살거나 하지 않는 영원불사의 것이다.
 
'나'가 없다고 하는 관념은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주원질과 하나이기 때문에 '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나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나의 것. '소유'를 쌓는 것이 아니라  우주원질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각을 빌려 나의 착각을 벗는 작업이다. 
지식을 쌓는 것은 남의 생각을 빌려 오는데 필요한 언어나 기호를 익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공식을 외워 두는 수준이면 되는 것이다. 
 
결국 우주원질이란, 나무에 비유한다면, 나는 그 가지요, 열매인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사람을 '하늘', '천지신명'을 의인화해서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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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강민수

양심과 본능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의사인 프로이드는 누구나 다 아는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에서의 억압이나 저항 등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양심과 본능 사이에 ego라는 자아가 그 중심에 균형을 잘 유지해야 건강한 자아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본능에 치우치게 되면 양심이 다치고, 반면 양심에 치우치게 되면 본능이 불만족으로 남아 자율신경의 밸런스가 깨져서 병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설사 자기 양심은 다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본능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남의 길을 다치게 하다 보면 사회적 제도의 그물망에 걸려 일탈자가 되고 만다.
우리는 이것을 '죄'라 한다.

 그럼 ‘건강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은 걸까.
건강한 자아를 만드는 길은 바로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역동 심리학에서 양심과 본능이 다투게 되면 본능이 승리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우리가 본능과 양심 사이에서 자기 보존을 위해 욕망의 만족을 유보하고 방어 메카니즘을 발달시키며 사회의 도적적 규범을 내면화 하기 위해 명상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본능에 질서를 주는 일, 바로 ‘욕심의 한계’에 대한 철학이 요구된다.
법적인 죄가 아니더라도 양심의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세속에 살더라도 본능을 다치지 않고 양심을 가장 따뜻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더불어 사는 것 즉 이웃사랑과 봉사의 실천이다.
몇십 년 살아본 나의 경험으로는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사랑은 물론 보너스로 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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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에 대한 소고(小考)

논어(論語) 이인편에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이란 성어가 있습니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의미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더 공자의 말씀을 상기하면 옥편에 덕(德)이란 큰 덕이라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라 주자의 해석서를 빌리자면 성(性)과 리(理)가 마음속에 내재(內在)하여 생활에 끊임없이 실천할 수 있는 힘이라 하고 있습니다.

흔히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행위를 우리는 그 사람이 덕성(德性)을 갖추었다고 일컫습니다.
위 공자의 말씀을 직역하면 "덕은 홀로 있을 수 없고 꼭 이웃과 함께 있다. "는 뜻으로 의미를 새겨볼 수 있지요.
곧 덕성(德性)은 의식 수준이 높다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우리는 때로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수준으로도 덕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큰 뜻으로 함축해서 덕(德)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노자의 말을 빌면 인(仁)과 의(義). 예(禮)를 다 담은 큰 그릇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기도(祈禱)의 법칙을 언급할 때, 나(我)의 욕심을 위한 기도는 하늘에서 들어 주지 않지만 남(他)을 위한 기도, 공동의 선을 위한 기도는 하늘이 꼭 들어 준다. 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나를 위한 탐심과 욕심의 발로에 기인한 기복신앙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남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도와 준 분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곧 기도이며 그 기도는 하늘이 꼭 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힘이 곧 덕(德)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에 덕을 베푼 이는 수혜자의 기도로 오복의 수(壽). 부귀(富貴). 강녕(康寧). 유호덕(唯好德). 고종명(考終命)의 혜택을 하늘에서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명리(名利)보다 이웃에 대한 봉사가 곧 덕(德)을 실천하는 최선이자 최대의 방법인 것입니다.

위대한 스승 예수가 말한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한 것은 만고의 진리(眞理)로 이천년이 넘도록 추앙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덕(德)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인간(人間)이 꼭 가져야 하는 의식의 최고 수준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는 것입니다.
'바보' 가 곧 덕자(德者)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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