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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에 강렬한 노랑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알코올 병원 사무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병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알코올 교육을 했다. 나 역시 강의를 듣기 위해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시작되고 30여 분이 흘렀을까. 뒷문을 열고 지각생이 들어왔다. 보라색 베레모에 선글라스를 쓴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심상치 않은 차림새였다.

이내 그녀의 치마에 시선이 멈췄다. 그렇게 강렬한 노란색 미니스커트를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젊은 여성도 쉽게 소화하지 못할 과감한 의상이 아닌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잠기운이 단번에 날아갔다. 그녀를 길 가다 만났어도 분명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지난 강의 때도 그녀가 궁금했다. 매번 화려한 옷을 입고, 지각을 했는데도 맨 앞에 앉아 열심히 강의를 듣는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수업이 끝나고 퇴근하는데 때마침 버스 정류장에 그녀가 서 있었다. ‘이때다.’ 싶어 말을 걸었다.

“오늘은 왜 늦으셨어요?”
강의실에서 나를 본 기억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고, 가는 방향도 같아 버스 안에 나란히 앉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슴이 저릿해졌다.

“스물여섯 살짜리 내 딸이, 2005년에 갑자기 하늘로 떠났어요. 난 원래 술이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입에도 안 댔거든요. 근데 이상하대. 상 치르고 너무 힘들어서 널브러져있는데 눈앞에 술병이 보이더라고요. 술 마시면 뭐든 다 잊힌다고 하니까 한번 마셔 봤는데 그대로 기절해 버렸어요.”

딸을 여읜 괴로움을 술로 잊고 싶었던 것이다. 한 번 마시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셨단다. 깨어 보니 자신이 방 안에 누워 있고 머리 위에 어지럽게 널린 술병을 보았을 때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괴로움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덤덤했지만, 간간이 손을 떨었다. 부모는 떠나보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다 키운 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나이가 우리 엄마와 비슷했다.

“요즘은 토요일이 가장 좋아요. 나만을 위해 보내는 날이거든요. 토요일엔 남편과 아들한테 밥도 알아서 먹으라고 해요. 이 강의도 내가 좋아서 듣는 거예요. 그래서 난 토요일이 즐거워요. 화사하게 차려입고 여기 오면 행복해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린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단지 멋 부리기 좋아하는 중년 여인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굴곡 많았던 그 시간을 버티고 노란 미니스커트를 꺼내 입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까지, 아픔을 겪어 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 상처를 헤아릴 수 있을까.

그녀는 알코올 교육이 끝난 지금도 단주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토요일이면 화사한 옷을 입고 병원에 온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무척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난 아직도 무어라 정의 내리기 힘든 ‘행복’이라는 단어를, 그녀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꺼낸다. 의심이 많은 나인데도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혹 길을 가다가 노란 미니스커트를 입은 또 다른 중년의 여인을 만나면 이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야겠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전은선 님의 사연입니다.

좋은생각 3월 호 자세히 보기 ▶
https://goo.gl/54bh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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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ㅈ2월 17일 오전 01:37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되네요 그런사정이...

an jung ja2월 17일 오전 08:15

이 글을 읽고 나서도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중년은 치마좀 짧게 입으면 안되는지요.
미친여자라 소리듣지 말라는 말은 좀 그러네요~~ㅠㅠ 딸을 가슴에 묻고 토요일을 기다리며 새 삶을 찿아가는 분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것보다 얼마나 보기 좋아요.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응원의 댓글만 부탁

서영관2월 17일 오전 08:47

아~~이런 삶을 사시는 분도 계시는구나^^

💞행복한 나의 삶💞2월 17일 오전 11:35

ㅜㅜ맘이 을마나 아프셧을까요?

감사합니다2월 17일 오후 12:29

저도 an jung ja님의 말씀에 공감입니다 당해보지 않은 아픈 그마음 아무도 모르는거니까요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사시길 응원합니다

(알수없음)2월 17일 오후 02:48

편견은 다른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하는것임을 느낍니다 그 가슴에 묻은이야기가 분명 있는데
우리는 그 가슴속 이야기를 모른체 겉모습 보이는것만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파본사람이 아픔을 압니다~%

김혜경2월 17일 오후 08:05

글쓴이의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따스한마음이 필요한 계절입니다

2월 17일 오후 10:18

남 입는것까지 중년이라 이렇게 입어야한다.저렇게 입어야한다는것은 본인의 고정된 관념이고 짧게 입었다고 미친여자라고 한다면 그런말 하는 여자가 미친여자네요 .남 흉이나보는 그수준 한심하네

김상태2월 19일 오전 07:36

멋진 아주머니..머리속에 그림이 그려지네요.항상 좋은생각으로 살고싶은데..현실이 그렇지 않네요.

Park.H.J3월 3일 오후 12:11

슬프네요 ㅜㅜ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