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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공식계정친구 65,390

아름다운 사람들의 밝고 따뜻한 이야기, 좋은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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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평수는 둘이서 하기 힘들 텐데요."

이사 갈 집을 청소하기 위해 여러 업체에 연락했지만 마땅한 데가 없었다. 고민을 들은 친구가 한 사람을 소개해 줘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초인종이 울려 나가니 아주머니와 청년이 꾸벅 인사했다.

“아니, 둘이서 청소를요? 이 정도 평수는 둘이서 하기 힘들 텐데요.”
청년은 늘 잘해 왔다며 깨끗이 해 드릴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곤 집안을 살피며 거실, 부엌, 방, 화장실, 베란다마다 시간을 배분하고 일사천리로 청소했다.

가만 보니 아주머니는 엄마였다. 청년은 힘든 일은 자신이 하고 엄마는 쉬운 일만 하게 했다. 구석구석 청소하는 모습을 넋 놓고 보던 나는 열심히 일하는 청년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정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들과 달리 어쩜 저렇게 청소를 잘할까?' 젊은 나이에 엄마를 따라다니며 청소하는 청년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점심땐 뜨끈한 떡만둣국을 끓여 주었다. 청년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자신이 청소한 데서 누군가 산다고 생각하면 즐겁단다. 그는 그릇을 비우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내가 칭찬을 아끼지 않자 청년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전문대 졸업 후 취직을 못해 이 일에 뛰어들었지만 여느 친구보다 수입이 좋아 장래 청소 업체 사장이 되는 게 꿈인 아들이란다.

청년이 가고 난 후에도 그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자기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던 청년. 머지않아 그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송영희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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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 1월 호를 소개합니다!

‘다시’ 새해를 맞이합니다.

‘다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꿈꾸고,
다시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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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깊이|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자연의 깊이를 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할 것이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들의 온몸이 노랗게 된 것이었다

서둘러 근처 응급실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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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연애 시절, 무뚝뚝한 내게 늘 먼저 표현하던 남편은 결혼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왜냐고 물어보면 꼭 말해야 아느냐고 했다.

그런데 남편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바로 나의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늘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어여삐 여겼다. 처음엔 통화할 때마다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해 민망했지만, 이젠 나 역시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마 그동안 받은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찬 덕분일 것이다.

엄마 없이 바르게 자란 내게 고맙고, 나를 키워 준 할머니와 아버지가 존경스럽다는 시어머니. 한번은 짬짬이 써서 응모한 글이 채택되자 무척 기뻐하며 나를 송 작가라고 불렀다.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결혼 후 아내와 엄마로 바삐 살며 '나'를 잃어 가는 건 아닌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한데 사랑과 칭찬이 담긴 말이 나를 변화시켰다.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해 봐.”, “내 며느리가 되어 줘 고마워.”, “지민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재주가 있어.”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은 컸다.

내가 점점 성장하는 걸 느꼈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원하는 걸 입 밖으로 내뱉어야 그 꿈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고 한다.

말의 힘이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의 움직임이 나와 내 주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송지민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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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시작을 한 건 아닐까

내가 아딧과 반야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딧과 반야는 파견 나온 아빠를 따라 한국에 왔다.

비싼 학비 탓에 외국인 학교는 꿈도 꿀 수 없어 공립 초등학교에 편입학한 뒤, 인도네시아 어를 전공하던 나와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나는 풋내기 선생이었지만 아이들에게 헬렌 켈러의 설리번선생 같은 존재가 되려 했다. 그러나 둘은 생각만큼 따라 주지 않았다.

오빠인 아딧은 사춘기가 찾아와 수시로 반항했고, 소심한 여동생 반야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아딧과 반야의 열의가 부족하고 한국어 실력도 늘지 않는다며 지적했다.

잘못된 시작을 한 건 아닐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도통 책을 펴지 않고 몸을 비비 꼬는 날에는 과자를 사 와 수다를 떨었고, <곰 세 마리> 등 쉬운 동요를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내가 배우는 인도네시아어 책이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난타 공연을 보여 주는가 하면, 자신이 만든 미술 작품을 자랑하고, 편지를 써 주며 웃어 준 것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두 남매가 아주 밝아졌다며 고마워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이 내게 원한 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사랑으로 기다려 주는 것임을. “빨리빨리!” 하는 한국에서 아딧과 반야가 느꼈을 상처와 외로움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도 이젠 아딧과 반야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

우리 셋은 다시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강정원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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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혜와 경험으로|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타인의 지혜로는 멀리까지 갈 수 없다. _리투아니아 격언

아버지가 명예퇴직 사실을 숨긴 채 가족 몰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다

평생 꽃 한 송이 선물한 적 없던 아버지가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친구들과 지하철을 탔는데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버지는 당황해 손에 든 걸 놓칠 뻔했다. 꽃은 사치라고 여기던 아버지라 참 의외였다. 친구들은 로맨틱하다며 야단이었다.

꽃사이로 “사랑하는 선영 씨! 생일 축하해요.”라는 메모가 보였다. 친구들이 부러워할수록 눈시울은 점점 뜨거워졌다. 선영 씨는 엄마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퇴근하는 아버지를 골목에서 기다렸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

아버지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당시 항암 치료 중이던 엄마한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문자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선영 씨인가 싶어 손이 벌벌 떨렸다.

“지하철 퀵서비스입니다. 내일 여섯 시 교대역으로 꽃 배달 가능하시면 답장 바랍니다.”

비로소 꽃바구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명예퇴직 사실을 숨긴 채 가족 몰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다.

힘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해하고 미워했으니 미안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제사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농담을 건넸다.

“엄마 꽃이 선영 씨 꽃보다 작은 거 아니에요? 그때 보니 꽃바구니가 무거워 휘청하던데. 이제 아르바이트 그만하세요.”

아버지는 웃으면서 가장의 무게가 실려 그랬을 거라며, 지금은 받는 이들의 꽃보다 아름다운 표정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봐라! 너희 엄마도 꽃 받고 좋아서 저렇게 웃고 있지 않니?”

아버지의 꽃바구니를 바라보는 영정 사진 속 엄마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조명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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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미니 명언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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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 정복해 내는 것이다._제임스 홀링워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자연 그대로 두었다

시골 생활 첫해 봄, 감나무, 살구나무, 모과나무 등 수많은 묘목을 마당에 심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걱정스레 봤지만 나는 행복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돌본 덕에 나무가 잘 자라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내 잘못을 깨달았다. 햇빛을 충분히 받으려면 나무 사이 간격이 적당해야 하는데 나무가 마냥 작으리라 생각해 그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심었던 것이다.

불과 3년도 안 돼 나무를 옮기거나 베어야 했다. 또한 집 가까이 심은 은행나무나 개수나무, 느티나무가 태풍이 불 때 쓰러져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쉽지 않은 시골 일에 건강까지 해쳐 한 해 집을 비웠다. 다시 돌아오니 정성 들여 가꾼 터전이 야산 폐가처럼 돼 있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자연 그대로 두었다. 나무 심고 밭을 일구는 데 욕심을 버렸더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텃밭에서 볼 수 없던 야생화가 피고 새들이 잡목 사이 둥지를 틀었다.

손길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은 제 역할을 했다. 매년 제거해도 끈질기게 살아나는 칡넝쿨의 생존력은 실망보다 인내를 배우게 했다.

올가을엔 탐스러운 감이 가득 열려 지나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두 자연이 일군 것임을 잠시 잊고 내가 키운 감인 양 우쭐거리기도 했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게 시골 생활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실수할진 모르지만 그 뒤엔 새로운 기쁨과 지혜가 주어진다는 진리를 알기에 나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련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광한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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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왜 프러포즈 안 해?”

소개팅 자리에 나가니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웃음 띤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연애 한번 해 본 적 없다는 그였지만 진중한 모습에 끌려 만나기로 했다.

한데 그는 여자 마음을 참 몰랐다. 주변에선 남자 친구가 이런저런 이벤트를 했다며 자랑하는데 나는 말할 게 없었다. 프러포즈만큼은 내심 기대했으나 결혼식이 다가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오빠는 왜 프러포즈 안 해?”
“결혼하기로 했는데 그걸 해야 돼?”
말문이 막힌 나는 그 후 이벤트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식이 끝나 갈 때쯤 그가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식장에서 그러지 말라며 말리는 순간, 나는 사회자 말에 놀라고 말았다. 신랑의 깜짝 이벤트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식은땀 흘리며 쭈뼛쭈뼛 앞으로 나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가사도 외우지 못했는지 휴대 전화 화면을 보면서. 너무 긴장한 탓에 첫 음을 높게 잡아 목에 핏대까지 섰다.

결혼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결국 절정에 다다라 한계가 왔고 겨우 노래는 끝이 났다. 너무 웃어 얼굴 근육이 아팠던 결혼식이었다.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던 그. 알고 보니 친구가 가사를 적은 스케치북을 놓고 온 탓에 휴대 전화를 들여다봤단다.

시어머니는 “내 아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라며 놀라워했고 명절 때 만난 친척들도 신랑을 놀리기 바빴다. 그때마다 그는 아무 말 못하고 얼굴이 발그레했지만 내 눈엔 그저 귀엽기만 했다.

그동안 무뚝뚝하고 센스 없다며 타박했던 게 미안했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용기 있고 로맨틱한 남자인데 말이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양정은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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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어머니는 화를 내며 어디서 난 돈이냐고 추궁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산촌에서 감자와 배추 등을 팔아 어렵게 생활했다. 1960년대 당시 교통수단은 하루 두 번씩 운행하는 버스뿐이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차비 10원을 구해 줬다. 그러면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내겐 그게 고역이었다. 어린 마음에 한 푼이라도 돈을 아껴 어머니를 돕고 싶어 왕복 5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하루는 어머니가 “넌 참 이상하다. 다른 애들은 교복 한 벌로 3년을 입는데, 너는 왜 바지가 세 개나 닳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나는 걷는 속도가 빨라 그렇다며 얼버무렸다.

그렇게 돈을 모아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입학금에 보태라며 어머니에게 이천 원을 내놓았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화를 내며 어디서 난 돈이냐고 추궁했다. 결국 난 사실대로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어린놈이 엄마 생각한다고 50리를 걸어 다녔으니…….” 그 후로 어머니는 신발과 옷을 사 주며 더욱 날 챙겼다.

사실 내가 걷게 된 건 어머니가 시장 갈 때 20킬로나 되는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닌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점심도 거른다는 걸 알았을 땐 참 마음이 아팠다.

이제 손자가 여섯이나 있지만 여전히 어머니가 보고 싶다. 아들은 호호백발이 되어도 어머니는 영원히 어머니인가 보다. 반듯한 옷 한 벌 입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 눈물만 흐를 뿐이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건원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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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시간만큼|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하루가 저물 때 우리는 사랑한 것을 기준으로 심판 받을 것이다. _성 요한

놓칠 뻔한 며느리

8년 전 추석, 아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이 입을 열었다.

“만나는 여자가 있는데 임신 3개월이에요. 올가을에 결혼시켜 주시면…….” 조금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아가씨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보라 하니 아들은 “저보다 여섯살 많고,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해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온갖 고생하며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넋이 나간 우리 가족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 “안 돼!”라고 소리쳤다.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아들에게 아가씨를 데리고 오라 하니 아침 햇살처럼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는 나이보다 앳된 얼굴로 순한 인상이었다. 그늘진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부모 잘 만났더라면 흠잡을 것 없는 참한 며느릿감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우린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다음 날 새벽, 아내가 말했다.

“어젯밤 소리도 못 내고 우는 아가씨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우리가 그동안 고아원에서 봉사한 게 위선이 아니었을까요. 이제 그만 승낙합시다.”

가슴을 찌른 말이었다. 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봤으면서 아가씨를 탐탁지 않게 여긴 내가 부끄러웠다.

아침을 먹으며 우리 마음을 전하니, 둘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며느리는 예의 바르고 음식 솜씨가 좋아 14대 종손 며느리로서 부족한 것이 없다.

이런 며느리를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반대한 게 미안해 친부모 이상의 사랑을 주려 노력한다. 그런 며느리는 귀여운 손녀 셋을 선물하며 우리에게 또 다른 기쁨을 주고 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조금숙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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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 오디오 채널 [잔소리] 오픈

좋은생각 오디오 채널 [잔소리 : 우리들의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오픈되었습니다. 달달한 음성과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을 녹이는 [잔소리]를 구독하세요.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 '오디오클립'과 '팟빵'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잔소리] 오디오클립에서 듣기 ▶
https://bit.ly/2SrsmDO
[잔소리] 팟빵에서 듣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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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그 학생은 반가운 합격 소식을 알려 왔다

몇 번의 면접에서 떨어진 학생이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가져왔다. 그런데 가만 보니 메일 주소가 마음에 걸렸다. 주소가 'badblood(나쁜 피)96 XX'였다. 다른 주소가 있는지 묻자 “왜 그러세요?” 하며 의아해했다.

“그 주소로는 면접관이 너를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 무슨 사연이 많아서 하필 그렇게 지었니? 다시 만들어 가져와라.” 나는 기억에 남을 만한, 이왕이면 직장에 걸맞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학생은 잠시 뒤 'bitnara(빛나라)96 XX'라는 주소를 가져왔다. “그래, 바로 그거다!” 나는 메일 주소를 보며 빙그레 웃는 면접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후, 그 학생은 반가운 합격 소식을 알려 왔다. 게다가 면접관이 “메일주소가 멋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물론 그 때문에 합격한 것은 아닐 테지만 메일 주소를 유쾌하게 짓는 것은 자기 홍보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20년 전, 메일 주소를 고민하다 “김 씨 방에 놀러 오세요.”라는 뜻으로 'kimsroom'으로 지었다. 그 뒤 상대방이 주소를 물으면 꼭 “김 씨 방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요사이 학생들의 메일 주소를 보면 자기 한글 이름을 키보드 영문 자판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김'은 'rla', '박'은 'qkr'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런 주소는 사실 흥미롭지 않다. 만약 경찰 시험에 응시한 지원자의 메일이 칼을 뜻하는 'Knife'라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까?

그보다 'Thank You(고맙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주소라면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메일 주소 하나에도 정성을 담았던 그날의 추억이 아직도 떠오른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건우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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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란에서 만난 천사였다

이란 국경으로 가는 버스는 만원이었다. 저녁 무렵,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살리'라는 이란 의사였다.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우리를 살뜰히 챙겼다. 그와 헤어져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린 뜻밖의 소식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란에서는 외국인 신용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근처 은행으로 갔지만 송금도 어렵단다. 머릿속이 하얘져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리에게 연락했다. 그는 일단 며칠의 숙박비를 주고, 방법을 찾아보자며 돌아갔다.

다음 날, 우린 거리를 구경하다가 문득 살리의 병원에 가 보고 싶었다. 물어물어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소개하며 살리를 찾았다.

진료실에 흰 가운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 살리를 아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나이에나'라는 간호사가 통화하더니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우리 말을 듣고 한국에서 일하는 오빠에게 전화 한 것이었다.

다음 날, 나이에나는 우리에게 현금을 빌려 주었다. 나이에나의 오빠는 숙소를 동생 집으로 옮기라고 배려했다. 폐를 끼칠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식사까지 준비했다.

나이에나는 떠나는 우리에게 자수도 선물했다. 요즘도 우린 나이에나의 오빠와 일 년에 한 번씩 만난다. 그녀는 이란에서 만난 천사였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조금숙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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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얼마 전 회사에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신입의 패기로 무엇이든 하려는 게 나와 맞지 않았다. 과한 의욕으로 튀고 싶어 하고 잘 보이려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시청했다. 물질 만능 주의로 자연을 파괴하더니 급기야 원주민에게 의류와 총, 돈을 쥐여 주었다. 수천 년간 야생에 적응한 그들의 삶까지 획일화하려는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역사와 문화는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던 나였다. 그러고 보니 산업화 물결에 우리나라도 색깔을 모두 잃어버렸다. 정갈하던 초가집과 우리 옷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돈을 좇고, 일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제야 그렇게 눈엣가시로 보이던 후배가 떠올랐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나에게 맞추려던 심보가 산업화와 다름없었다.

추석 날, 미안했던 후배에게 문자 메시지가 와 나 역시 다정하게 답해 주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닐까. 보다 넓은 마음으로 그를 인정하려 한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박서정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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