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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0,20
레시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기도의 방법에는
염경기도와
묵상기도와
관상기도가 있다.

염경기도는 정해진
기도문을 읽으면서
봉헌하는 것이고,
묵상기도는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 흐름을
따라가며 주님께 자신의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보통 우리들은 묵상기도까지는
잘하는데, 한 발 더 나아가
관상기도는 어려워한다.

혹은 묵상기도를 관상기도로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내가 묵상기도를 했는지
관상기도를 했는지 확인하는
법은, 내 의지가 ‘들어갔는가?
아닌가?’이다.

내 의지대로 기도를 한 것은
묵상기도이고, 내 의지마저도
내려놓고 주님이 내 안에
오시어 나를 마음대로 하게
내어 드리는 것은 관상기도이다.

나도 기도를 하면서
관상기도에 들어가는 게
쉽지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시나무의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비우고 온전히 주님이
말씀하시게 두어야 하는데
내 안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주다 보니,
주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한다.

제자가 되어 세상에 파견된다는
것은 너무도 외로운 길을 것이다.
세상은 쉬운 것, 편한 것,
좋은 것을 찾으라고 하는데,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고, 힘든 것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로 나아가는 이들이
온전히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말씀해 주셨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이야기하고
내가 이야기할 때는
내 이야기를 더 하곤 한다.

이럴 때 주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영이 말씀하시게 자리를
내어드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시게
자리를 내어 드리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제자로
살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0,8
레시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예전에 미생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바둑을 배우던 장그래가
바둑을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며
벌어지는 일들을 바둑에
빗대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이었다.

작가의 주옥같은 대사와
느낌은 그 만화를 볼 때마다
장그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다.

회사 내에서 불법을 저지르던
상사를 장그레가 있던 부서에서
골라내고, 그 자리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상사가 왔다.

그는 위의 명령을 받고 왔기에
장그래가 있는 팀에서 자꾸
사람들을 의심하고 긴장을
만들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부장이 그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천 과장! 일을 해 일을
회사 나왔으면, 응 힘 빼지 말고,
사람이 왜 게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줄 알아?
게임을 하니까 빠지는 거야
일하러 와서 게임이나
하고 있다가는
자네부터 게임에 빠질 거야.”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다 보면
딱 이 말씀이다.

내가 너희에게 시키는 일을
할 때는 너희의 생각을
넣지 말고 내가 가르친 대로,
너희가 느낀 그대로를
실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항상 내 생각을 넣으려고 하고
상대의 행동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며,
그러다가 상처를 받고
멀어지곤 한다.

성당에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신앙생활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게임에
사람을 잃고 상처를 받고,
떠나가며 자신이 만든 게임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탓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오늘 하루, 나는 평화를
누리고 평화를 누리기
마땅한 사람인지 돌아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0,7
레시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상대에게 내 마음속
말을 전할 때는
상대가 내 말을 잘 담고
주변에 흘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 말을 잘 담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말을 담는
그릇이 작아서 흘리고
쏟아서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그릇 크기가
얼마만 한지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을 볼 수 없기에
경험을 통해 느끼고
깨지면서 배우게 된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떤 생각이 있는지
다 알고 계시지만,
제자들의 마음에 당신의
말과 기적들을 부어주신다.

그것은 그들 마음속에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자 하심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본인들의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서, ‘하늘나라가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벼이 여기며 흘리지 말고
제자답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선포하라고 하신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담을 만한
그릇이 있는지, 아니면
너무나 작아서 하나도
선포하지 못하고 흘리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다.

주님의 말씀을 담지 못하고
흘리며 주변을 어지럽히기보다
온전히 담아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9,37
레시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지난번에 교구청 신부들끼리
낚시를 다녀왔다.
이 모임에는 회장님이 있는데,
다 같이 가는 것이라 이것
저것 준비를 많이 하셨다.

회장을 맞은 신부님은
같이 가는 신부들이
번거로울 가봐.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고 본인
혼자 일을 준비하였다.

저녁이 되어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상을 차리고
있는데, 회장님이 ‘아차차’했다.
그 이유는 다 잘 준비했는데
혼자서 하다 보니 고기를
싸 먹을 쌈을 다 씻어놓고
집에 그대로 놓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았으면, 먼저 물어보고
도와줬어야 했는데,
말하지 않았다고,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학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주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손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일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일일이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의 일을 보았으면
먼저 주님께 “이 일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

힘들어하는 이웃을 보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보았을 때 ‘혹시나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지래
짐작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것보다는 ‘혹시
힘들면 도와줄까요.’라고
한 마디 물어보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늘나라를 완성하는
일꾼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초대된 일꾼들이다.
일꾼으로서의 소명을
이웃을 통해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
완성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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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9,18
레시피: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유학 생활 중에
힘든 순간을 꼽으라 하면
기말고사를 볼 때이다.

공부해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머리는
하나이고, 6월이면
더워지는 이태리 날씨에
그 머리조차 과부하가
걸려 돌아가지 않았다.

아침에 도서관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험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 교수님였는데, 대면
시험을 보면서 문제를
엄청 꼬아서 물어보고
대답을 못하면 호통을 쳐서
더 못 알아듣고 못 대답하게
만들었다. 지난 학기에
한 번 당했던 터라 시험
준비를 하는데 마음이
굳어져서 그런지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냥
포기 상태로 있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내 모습을 본
선배 신부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신부님 시험을 준비할 때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
항상 “‘된다, 된다, 다 된다.’를
마음에 새기면서 하셔요.
그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하면
묘한 자신감이 생기고요.
시험 앞에서도 그 순간을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시험 보기 전까지
‘된다. 된다. 다 된다.’는
말을 되뇌며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데, 이상하게
문제도 내가 아는 것만
물어보고 답도 생각보다
잘해서 시험을 무난히 넘겼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아픈 여인도
남들은 ‘될까?’하는 마음을
‘된다’로 바꾸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병과 영혼을 고쳐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 마음에는 한두 번의 실패로
의심이라는 씨앗이 들어와 나도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만들곤 한다.

그러곤 종종
“뭐 주님께 기도해봐도 들어주시지
않는데, 뭐 주님께 다가가도 볼 수
없는데.”하며 쉽게 포기하곤 한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이번 한주는
“된다. 된다. 다 된다.”를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발걸음을 주님께서
보신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얘들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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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5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0,19
레시피: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5살 어린 나이에 신부가
되기 위해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에 오르셨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되었던지 함께 길을 떠난
최방제 신학생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동료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에
그들은 그의 몫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사제품을 받았다.

한국의 첫 번째 사제로서
1845년 고국에 돌아온 그의
마음에는 필시 하느님이
가득했을 것이다.

매일 관원들의 눈을 피해
이동하며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영해주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해를
들어주면서도, 그는 한 번도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느님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에 인간적인 어려움은
은총의 발걸음으로 바뀌었다.

1846년 서해를 통해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던 중
관원에게 체포되어 그는
관아로 압송되었다.

26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수려한 외국어 실력과
지리에 대한 정보
명석함은 관리들에게 있어서
탐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 없이
배교하라는 회유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하느님을 외면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려오는 기록들을 보면
어쩌면 저런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 뚜렷하게
하느님을 증거하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안에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기에 그런 어려움의 순간에
인간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님으로 내 마음을
채우기보다는 나로
내 마음을 채우곤 한다.

그러기에 어려움이 닥쳐오면
주님의 말을 하기보다는
내 말을 할 때가 더 많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두려워
할 때가 종종 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을 지내며,
성인을 닮아 내 안에 주님이
계실 수 있게 자리를
내어드렸으면 좋겠다.
주님이 계신 곳에
당신의 영이 머물고
그 영이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9,17
레시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각자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도구로 SNS가 있다.
예전에는 싸이월드가 있다면
그것이 카카오스토리에서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로 옮겨지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나의 일상과 짧은 단상들을
올리는 도구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기세가 잠잠해지지 않으면서
대면으로 했던 사업들은
이제 사양길로 접어들고
비대면으로 하는 것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대다.

특히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신자들에게 코로나로 인해
미사 중단과 전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사를 못 오고
있는 이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여러 SNS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계시다.

이것은 예전처럼 사람이 와야
만나는 형식이 아니고,
자신이 살고 있는 교구의
신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큰 성당으로 보고
전 세계를 하나의 교회로
엮는 모습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가만히 앉아서 신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 나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전국에 있는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교리교사들이 코로나 시대에
신앙을 담는 새 부대라고
생각이 든다.

분명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면
발효가 되어 부풀며 새 부대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고통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고통을 잘 이겨내고
주님의 은총을 담는
새 부대가 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새 시대의 새 사도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못한다고, 모른다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어떤 매체로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다 보존된다. - 마태복음 9,17 (가톨릭새성경) #캘리드로우노엘 #캘리드로우 #말씀캘리 #말씀묵상 #callidraw #callidrawnoel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요한 20,25
레시피: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라디오에 출연해서
사람들의 질문을 받다 보면
전례에 대한 것을 많이
물어보신다.

가톨릭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예절을
전례라고 한다.

전례 안에는 절차와 방법과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다 알고
미사를 봉헌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

이런 것들을 반복해서
교육하고 들으면
참 좋을 텐데,
대부분의 신자들은
예비자 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배운 게 다 인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본인이 알고
있는 것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도 하고,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잘못된 정보를
맞는 것처럼 설명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서
신앙에 대해서 전례에
대해서 물어보는 분이 있다면
알고 있으면 바로 대답해드리고
모르면 공부를 해서라도
알려드리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알고자
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에서 토마스
사도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토마스에 대해서 바라보지
주변에 제자들이나 토마스를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냥 보고 믿는 제자도 있고,
부활에 대해서 마음에
마음에 의심은 있지만
다들 가만히 있기에
그냥 믿었던 제자도 있을 것이다.

그 제자들 중에 토마스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조금 의심하고 마는 게
아니라, 철저히 살펴보고
결국 해결되지 않는 것을
입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그의 끝까지 알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앞에 나타나시어
그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꿔주신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의문이 나거나,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까지 찾아보고, 구해보고
살펴보면, 주님께서 의심을
믿음으로 바꿔주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왔을 때
토마스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2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9,2
레시피: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코로나 이후에 미사를
봉헌하며 영성체를
할 때마다 불안해
하시는 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기에
별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잊어먹고 영성체를 하려고
입으로 돌진하시다 부딪혀
떨어뜨리는 분들도 계시고,
영성체를 받고 마스크를
벗다가 영성체를 떨어트리는
분들도 계시다.

그러하였을 때는 후딱
주어서 영하면 되는데
간혹 신자 사이에
영성체를 떨어뜨리면,
죄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 말을
듣는 분들이 불안해
하시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생각해 본다.
하느님이 영성체를 떨어트렸다고
야단치시고, 장궤를 하지
않았다고 미워하시고,
감실 앞을 지나갈 때
인사하지 않는다고
따지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까?

아마 그런 하느님이라면
우리는 다른 종교로
가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는 인간의 쪼잔함이 아니라
하느님만의 자비하심과
너그러움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분명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있어도 율법학자처럼
따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죄 중에 있어도
깊은 성찰과 회개를 통해
주님께서는 죄를 버리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리실 것이다.

오늘 하루 주위에 힘 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살기보다는
주님의 힘 넣는 말씀을 듣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8,29
레시피: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어렸을 적 동내에서
친구들과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던 것도, 멋진
변신 장난감도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다 같이 있으면 너무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참 재미있을 무렵
어머니는 밖에 나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들어와서 숙제해야지
그렇게 놀다가 저녁에
부랴부랴 하면서 하기 싫다고
하지 말고 지금 들어와서 해”

어린 마음에 나는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지금의 즐거움을
찾았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고 놀다가 밤늦게까지
자지 못하고 숙제를 하며
힘들어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려고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시어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불안한 마음에
점 보러 가지 말고
기도를 해봐.
고통스러운 마음을
잊으려 계속 놀지 말고
성당에를 가봐.”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
우리는 주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택하기보다는
주님과 멀어지며, 주님의
말씀에 나를 괴롭히려
오셨는지 반문할 때가 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신다. 그 모습이
내 마음과 같지 않아
당황하고 피하려 하기보다는
주님의 계획에 나의
마음을 올려놓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8,26
레시피: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사람은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
어렸을 적 목욕탕이나
수영장을 가서
친구들이랑 잠수 놀이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물속에 들어가 먼저
나오는 사람이 지는
놀이이다.

보통 그렇게 놀이를 하면
대략 50초 위아래가 지날 때
숨이 안 쉬어지고 답답하고
무서워서 수면 위로 올라온다.

나는 내가 숨을 50초 정도
참을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난번 아는 분을
통해서 잠수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수영장에 들어가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나에게 잠수를 해보겠냐고
물었다.

그분의 지도에 따라 물에
들어가서 잠수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50초 언저리에
답답하고 힘들어서 나왔다.

그런 나를 본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 안에는 50초를
넘어서도 숨을 참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제가
함께 해드릴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시고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 보세요.”

그 말을 듣고 잠수를 시작했고,
50초를 넘자 다시 두렵고,
답답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런데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앞에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결국 나는 2분까지 숨을 참았다.

인생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닥쳐오면 우리는 숨을 참는
것을 힘들어하고, 스스로를
한계 짓고 물 밖으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반복되는 어려움은
피하려고 하고 마주하려 하지
않게 된다.

이런 모습이 풍랑에 힘들어하는
제자들과 같고,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두려움이
찾아오면 피하지 말고 내가
곁에서 너의 손을 잡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 믿음 안에 머물며
오늘 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6,16
레시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작년에 바오로 사도의
발걸음을 따라 성지순례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는 온몸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하고 난 뒤
주님께 온몸과 마음을
빼앗겼다.

그의 삶의 처음 목표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이들을 죽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하고 난 뒤
그는 누구를 죽임으로
사람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죽임으로
하느님에게 인정받는
삶으로 180도 바뀌게 된다.

그의 선교지에 들러
바오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알 수 있다. 그가 마을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회당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를 선포하고, 유대인들에게
끌려가 맞고, 감옥에 갇힌다.

이런 과정, 회당에 가서
예수님을 알리고, 맞고,
감옥에 갇히고, 풀려나는 것
나였다면 한 번 두 번
행동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피하거나, 안 할 텐데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모습을
유지한다.

그것은 베드로에게도 똑같이
보이는 모습이다.
예수님을 겉으로 알던 베드로는
십자가의 고통 아래 주님을
배반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아낌없는 사랑과 말씀에
그도 자신의 삶을 살리는
삶에서, 주님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삶을 택했다.

그 모습은 네로 시대에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베드로에게 신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말을 한다.
이 말을 듣고 로마를 떠나다
로마로 들어가는 예수님을 보고
다시 발걸음을 돌이켜
로마로 돌아가 순교를 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결심은 내 삶에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번번이 무너지고 잊힌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서
미워하실까? 아니다 주님께서는
늘 기다려 주시며 우리가
입을 열어 다시금 당신이
죽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내 삶 한가운데 살아 숨 쉬며
활동하시는 분이라고 고백
하시기를 원하신다.

오늘 하루 베드로와 바오로를 닮아
내 삶의 주인이신
주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소리 높여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8일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0,42
레시피: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자매님 중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봉헌하시는 분이
계시다.

길을 가다 가난한 이를
만나면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꺼내 주고,
주위에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해준다.

그 자매님과 지난번에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나는 이것을
여쭤봤다.

“자매님, 선행의 마음은
어떻게 나오세요?”

나의 질문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나에게 가진 것이 있다는 건
그것을 나눌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주님께서 나에게
차고 넘치는 은총을 끊임없이
주신다고 믿어요.
주님께서는 그 은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비우고 나눠도 계속
채워주실 거잖아요.
그러기에 아낌없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은총의 그릇을 만들어 주셨다.
그것은 비울수록 채워지고
더 빨리, 많은 은총이 들어온다.

하지만 내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고
미움으로 가득 차고
고통으로 가득 차면
은총을 나눠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나를 위해
쓰려고 은총의 그릇을
비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번 한 주를 살아가며
내 마음에 있는 은총의
그릇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고여있는 은총과 나눌 것이
보인다면 이웃을 위해
자신 있게 비워보자.
그럼 주님께서 더 빨리
많은 은총을 채워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8,13
레시피: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작년 이맘때 통진 성당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아침에 형제님이 출근을
하시다가 그대로 쓰러지신 것이다.

병명은 뇌출혈로
형제님은 그대로 의식이
없어지셨고, 자매님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다니셨다.

통진성당에 있었을 때
늘 조용하신 그 자매님은
하느님 안에 머물며
가족을 기도로 기르시던
분이셨다.

힘들 때 함께 있어
드리고 싶었지만,
소속이 바뀌었기에
집에서 기도하며
전화를 한통 드렸다.

자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며 형제님의
안부를 묻는 나의 말에
이렇게 답을 하셨다.

“주님께서 잘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신부님 기도해
주셔요.”

나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님께서 그 자매님에게
이 사건을 통해 욥의
마음과 고통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시고
계심을 느끼게 되었다.

자매님은 주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계셨기에
그 시간을 기도로서 버티고
계셨고, 자매님의 기도에
통진 성당 공동체의 기도가
더해져 형제님은 그 병고를
털고 일어나시어 지금은
아무 일이 없으셨던 것처럼
지내신다고 하신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보통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그렇게 나온 생각은
“아니야, 안 될 거야,
뭐가 되겠어.”하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발전한다.

이런 생각들은
주님께 내리고 있던 뿌리가
흔들리게 만들고 결국
모든 일이 안되게 만들곤 한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오고
누구에게나 고통은 온다.

그럴 때 그 순간을 ‘안 될 것’
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될 것이고, 다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며 그 뿌리를 주님께
쭉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8,2-3
레시피: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하기 전 주임신부님께서는
나에게 고해소에 들어가라
말씀하셨다.

고해성사하면 글로 배운 터라
실전이 없었던 나는
주임신부님의 말씀에 떨리기
시작하며 “어떡하지!”라는
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해소에 들어가서
첫 성사를 볼 분을
기다리는데 너무나 떨렸다.

책에서 배운 것 말고
사람의 사연은 다양하기에
무슨 말을 해 드려야 할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몰랐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눈앞에 있는
성경을 펼쳐보았는데
오늘 이 성경 말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이 말씀을 읽기 전에는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죄를
듣고, 그가 정말 성찰했는지
안 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안 했으면, 훈화를 길게 하고
보속을 무겁게 줘야지 했던
나의 마음은 그 말씀으로
180도 바뀌었다.

신자들은 고해소의 문고리를
잡기 전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까지 온 그들의 마음은
이미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의 마음으로 온 것이다.

그럼 고해소에 있는 사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해소에 있는 사제는
영대를 거는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기에,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성경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날 나는 고해성사를 주며
그리고 지금도 고해성사를
주며 이런 말을 주로 한다.

“고해성사 보려고 마음먹기
힘드셨을 텐데, 잘 오셨어요.
주님께서 이 성사로 당신을
깨끗하게 해 주시니까요.
죄를 지으려 할 때 한번
참을 수 있는 용기를
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그 모습을
닮으려는 사제는
‘영혼 수선공’이기 때문이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 미사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8,19-20
레시피: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 갈수록
주위의 사랑을 받을수록
이상하게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도 똑같이
올라가는 신기한 체험들을
사회나, 단체에서 하게 된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거나
내가 했던 일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며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내 귀로
안 들어도 상관이 없는데
그걸 나를 위한 다는
이유로 전달해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 즉 오해와 억측의
한가운데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즉,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소명하고 다니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함께
기도해 줄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
혼자 망망대해에 있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 어려움을 빨리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기도 부대가 생긴다면
그 어려움이 빨리 지나갈 것이다.

나를 비난하고, 모욕을 주는 사람들은
내가 그 비난에 반응하고 모욕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음에 기뻐한다.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용서할 수 있을까?”

예전에 이런 질문을 선배 신부님께
했더니 그분은 이렇게 답을 주셨다.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고통이
찾아왔다면 그 길을 잘 가고 있는 거야.
악마는 욥처럼 하느님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통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거든. 그럼에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용서가 되지는 않아도,
용서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체험할 수 있게 될 거야.

용서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은
상대를 살리기 위한 게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맛있는 복음밥-

재료: 루카 1,63
레시피: “그의 이름은 요한”

우리는 살면서 각자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혼자의 십자가
어떤 사람은 가족의 십자가
어떤 사람은 공동체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십자가의 무게가 한 개든
여러 개든 짊어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 무겁지만
한 개인이 공동체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았다.

어머니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의 잉태를 통해
아들의 미래가 범상치
않을 것임을 알았고,
아버지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섭리를 의심하다
벙어리가 됨으로 하느님께서
아들을 통해 이루실 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기에 주위 사람들은
가족의 십자가를 지라는 의미로
집안의 이름을 따르라고 했지만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섭리에
아들을 맡긴다는 의미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렇게 주님의 뜻에 의해
삶이 정해진 세례자 요한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완성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오늘은 인천교구의 교구장님이신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님의 축일이다.

신부로서 살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주교의 이름을 받고 난 뒤
주교님은 교구 공동체 모두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앞으로 가고 계신다.

내가 지어보지 못한 십자가기에
그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인지
그 십자가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기도만 더할 뿐이다.

오늘 하루 살아가며
주교님의 앞으로의 삶에
지혜와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하고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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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님의 영육 간의 건강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7,12
레시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며칠 전에 아는 분 댁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보통 초대를 받으면
맨입만 가지고 가지 않고, 방문 기념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해 가던 습관이 있어서,
마트로 갔다.

마트에서 이런저런 것을 찾아보다
와인이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와인코너 앞에 섰다.

이런저런 와인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내 주머니 사정과
와인의 맛을 맞추고 있었다.

한참을 고르며 가격과 와인의 맛은
비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결심을 했다.

"가격 생각보다 내가 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으로 사자."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정답이
금방 나왔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든
일상생활에 있어서 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기준은 높으면서
내가 남에게 해주는
기준은 낮을 때가 있다.

이것은 비단 이웃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주님을 위해 하는 봉헌과 예물은
"이 정도면 충분해"하면서
나를 위한 것은 큼지막히 띄어
놓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주님께 원하는 것은
내가 봉헌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청할 때가 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주님을 위해서든 이웃을 위해서든
나에게 하는 것만큼 해드린다면
우리는 늘 은총의 첫 자리에
있을 것이다.

아멘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7,3
레시피: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유학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존 요리를
하던 나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요리를 해주면 그것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어쭙잖은 조언을 한다.

예를 들어 라면을 끊여다 주면
“잘 먹겠습니다”가 아니라
“여기에 파도 좀 넣고
청량 고추도 좀 넣으면
더 맛있을 텐데.”
누군가 김치볶음밥을 해주면
“여기에 계란 프라이
노른자 반숙으로 된 거
올리면 더 맛있을 텐데.”
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떤가 이 글을 읽으면서도
옆에서 내가 해주는 요리에
이런 말을 하면 짜증이
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말하는 나를 두고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아들이 요리를 잘해도
상대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도
중요한 거예요. 누가 밥을
해주면 아들 눈에 무엇인가
보여도, 그 자체를 인정해
주는 여유를 지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면
그것에 대해서 최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무슨 일이든 내가 그 안에
있을 때보다 그 밖에 있을 때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 잘
보인다. 분명 그것을
조언이랍시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상대의
들보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요리를 더 맛있게 한다거나
관계를 더 좋게 한다거나
상황을 더 좋게 하는 적은 드물다.

오히려 나와 이어진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오늘 하루를 살면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는 경우가
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부족한 부분은 기도로서
함께 해주는 우리가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사진출처:
https://brunch.co.kr/@4noramyeon/314

맛있는 복음밥

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가해)

-맛있는 복음밥-

재료: 마태 10,31
레시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부모님을 하늘로
보내는 분들이 늘어간다.

장례식장에 가서 미사를
봉헌해 드릴 때 나는 항상
똑같은 질문을 한다.

“부모님께서 살아생전에
잘해주셨던 좋은 기억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눠 주시겠어요.”

아직까지는 한 분도 빠짐없이
부모님이 못해 주신 것보다
일생에 있어서 잘해주신
기억들을 이야기하시고
추억하시며 눈물을 짓곤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이신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부모님이 저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전하며
하늘나라를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삶에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기보다는 세상적인 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병고에 의한 어려움
금전에 의한 어려움
관계에 의한 어려움
우리는 이런 어려움이
닥쳐오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기도로서
해결하기보다는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들려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고 의탁하려
한다면 세상적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그 사랑을
주시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작든 크든 삶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 보자.
그리고 그 사랑을 고백해 보자.

그럼 내 영혼을 감싸고 있는
위협은 물러가고 주님과 함께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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