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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오동성 플러스친구친구 197

오동성 목사의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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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고향에서 거절당하신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권능을 주어 둘씩 보내셨지요. 하나님이 예수를 세상으로 보내셨듯이 이제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불러 세상에 보내십니다. 가까이 부른다는 것은 또한 멀리 떠나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가면 떠날 날을 준비해야지요. 머물러 거기에 만족하고만 있으면 성장이 없습니다. 변화산이 좋아 거기서 초막 셋을 짓고 앉아 있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하늘을 보았으면 땅도 보아야 합니다. '여기'가 행복하면 '이곳'에서도 행복해야 합니다. '산'에 올랐으면 그 산을 마음에 담아 그 어느 곳도 '산'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 그 선물의 의미이지요. 산에 가야만 산이 있나요? 산에 가지 않아도 늘 산에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산에 있어도 산에 있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깊은산 20181218)

#세월호 참사 1708일째 : 두 번째 특조위의 첫 조사가 개시 되었다. 두 번째 조사가 아니라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조사가 개시 된 것이다. 지금의 두 번째 특조위가 태동이 된 때는 2016년 12월이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 탄압이 극에 달할 때 첫 번째 특조위의 강제해산을 막기 위해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국회에 특별법을 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무력했고 특별법 개정을 과감하게 하지 못해 특조위 강제해산을 막지 못했다. 이때 4.16가족협의회는 다시 법을 제정해서라도 진상규명을 반드시 할 것을 국회에 강력히 요구했고 이로 하여 오늘의 두 번째 특조위 설립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2016년 12월 23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었고, 2017년 11월이 돼서야 자동으로 국회 본 회의에 부의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오늘의 첫 조사 개시는 세월호 가족과 국민이 박근혜 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워서 이룩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416연대)

살 길

선물을 선물로 받지 못하면 자기 손해입니다. 대접하는 대로 대접을 받습니다. 아내를 여왕으로 대접하면 내가 왕이 됩니다. 자녀를 왕자와 공주로 대접하면 또 그렇지요. 친구를 귀족으로 대접하면 나는 귀족의 친구가 됩니다. 이렇게 오늘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가까이 와 있는 그를 맞이한 성탄이지요. 그러나 또한 나의 변화를 사람들은 인색하게 대할 것입니다.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달갑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만큼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이들을 보고 놀라워하시면서도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지요. 자기가 할 일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일을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 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판단과 편견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깊은산 20181217)

#세월호 참사 1707일째 :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세월호참사 4주기 합동 영결추도식을 앞두고 ‘완전한 진실 규명’을 공개 선언하였습니다. 이러한 현 정부의 정국 구상이 실현되려면 박근혜 정부 당시의 잘못된 수사와 재판에 대해 단호히 배격하고 이를 근거로 2기 특조위에 전면적인 재조사권이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고 특별수사단을 설치하여 기무사, 국정원과 같은 곳을 비롯한 세월호참사에 개입한 모든 기관과 피의자들을 성역 없는 전면적인 재수사로 처벌해 나서야 할 것입니다.(416연대)

12월9일~12월16일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업데이트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신학교 졸업 후 목회를 배우고 목회를 하느라 20년, 나이 오십이 넘어 유럽을 처음 나온 벗들의 손을 잡고 파리를 다니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떼제 공동체를 방문하고, 버킷 리스트인 프루스트의 일리에르 꼼블레를 돌아보고,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을 걷고 한국을 들러 토론토입니다.
그리고 또 일상의 순례길 위에 서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과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올려두었고 이곳에서 다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나 함께하게 되어 고맙습니다.
아, 숨찹니다.

● 잘 다녀왔습니다.
http://pf.kakao.com/_cVgKC/30760036
● 20181209 정의와 평화
http://pf.kakao.com/_cVgKC/30770829
● 20181210 거기를 떠나서
http://pf.kakao.com/_cVgKC/30813037
● 20181211 따라서
http://pf.kakao.com/_cVgKC/30864310
● 20181212 고향
http://pf.kakao.com/_cVgKC/30907947
● 20181213 아무 기적도
http://pf.kakao.com/_cVgKC/30949580
● 20181214 성탄
http://pf.kakao.com/_cVgKC/31002883
● 20181215 양면
http://pf.kakao.com/_cVgKC/31048164
● 20181216 하나님의 영광
http://pf.kakao.com/_cVgKC/31075944

● 새로운 물음(621번째 편지, 20181216)
http://pf.kakao.com/_cVgKC/31073692

<<2018년 산티아고 순례길 : 저의 플러스친구 홈에서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 20181110(#산티아고 1일) 생장피에드포트 - 론세스바예스 : 새로운 길을 가기
http://pf.kakao.com/_cVgKC/30087433
● 20181111(#산티아고 2일) 론세스바예스 - 쥐비리 : 부활
http://pf.kakao.com/_cVgKC/30101702
● 20181112(#산티아고 3일) 쥐비리 - 팜플로냐 : 지금을 놓치지 않기
http://pf.kakao.com/_cVgKC/30110621
● 20181113(#산티아고 4일) 팜플로냐 - 폰페라다 : 아침마다 새롭고
http://pf.kakao.com/_cVgKC/30131718
● 20181114(#산티아고 5일) 폰페라다 - 베가 데 발카스 : 낚여가는 길...
http://pf.kakao.com/_cVgKC/30154445
● 20181115(#산티아고 6일) : This way is you
http://pf.kakao.com/_cVgKC/30172338
● 20181116(#산티아고 7일) 트리아카스텔라 - 사리아 : 맑음
http://pf.kakao.com/_cVgKC/30193561
● 20181117(#산티아고 8일) 사리아 - 포르토마틴 : 은혜
http://pf.kakao.com/_cVgKC/30199295
● 20181118(#산티아고 9일) 포르토마린 - 팔라스 데 레이 : 해바라기
http://pf.kakao.com/_cVgKC/30207978
● 20181119(#산티아고 10일) 팔라스 데 레리 - 살세다 :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http://pf.kakao.com/_cVgKC/30227813
● 20181120(#산티아고 11일) 살세다 - 산티아고 : Just smile, keep walking.
http://pf.kakao.com/_cVgKC/30263426
● 20181121(#산티아고 12일) 산티아고 - 피스테라 : 길의 끝은 바다, 나의 끝은 감사와 찬미
http://pf.kakao.com/_cVgKC/30274705

하나님의 영광

어제 양로원에 손님들이 오셔서 성탄 축하 인사를 잔뜩 하고 가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곧 크리스마스네요. 그래서 오늘 예배에 캐롤 찬송가를 함께 부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 구주 나신 날...” 찬송을 부르고 오늘 예수님이 어디에 나셨지요? 물으니 우리 어르신들 멍~ 하십니다. 방금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셨다고 찬송을 하고 났는데요.ㅎ 그런데 저로서는 자동으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셨다고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베들레헴에 나셨겠어요. 오늘 토론토에, 우리 은혜양로원에, 할아버지 할머니들 가슴에 나셨지요. 그게 성탄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사는, 생각으로 사는 나는 죽고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탄생이지요. 크리스마스 맞이는 그렇게 합니다. 트리를 세우고 라이트닝으로 하고 파티를 여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라 나눕니다. 그래서 아프고 힘든 이웃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복된 날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으러 오셨으니요. 죽음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사랑으로 삶도 죽음도 다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롭습니다.(#깊은산 20181216)

#세월호 참사 1706일째 : 304명 대형 사망의 원인에 범죄 가능성이 있는지 철저히 수사 검증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선체조사위가 찾아 낸 복원력에 관한 과학적 근거와 외력까지 배제할 수 없게 된 사실관계와 이제 새롭게 조사에 나설 2기 특조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에 최소한 ‘특별수사단’ 정도 규모의 수사체를 합리적으로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참사과 관련되어 산재 되어 있는 부분적 수사사안과 재판사안, 특검 등을 통합적인 재수사로 주도할 수 있는 국가의 특별수사기구를 두고 여기에 2기 특조위의 재조사와 공조를 이룬다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더욱 앞당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416연대)

새로운 물음(621번째 편지, 20181216)

예수의 말씀에 귀가 열린 여인은 물을 달라던 예수께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 몸을 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당신의 영생하는 몸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몰라도 좋습니다.
다만 속이는 마음이 없이 구원을 간청하는 것, 생수를 구하고 그의 몸을 사모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필요한 것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진실한 목마름, 바로 그것입니다.
돌아봅니다.
정말 구원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진리에 목마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시라도 아무 것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인이 생수를 구하자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지요.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는 여인에게 왜 갑자기 남편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일까요?
여기에 이 여인의 문제의 핵심, 목이 마르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에 예수와 대화하기 전의 여인이었으면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을 불러왔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여인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돌아보니 함께 살고 있는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었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형편과 삶이 질이 내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나에게는 남편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또한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이 여자는 다섯 남자에게 쫓겨났고 이제 여섯 번째 남자에게도 쫓겨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한과 고통 덩어리였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그에게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고 상처를 건드려 고름을 터뜨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상처는 싸매기도 하지만 열지 두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거기에 정직해지지 않으면 아물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게 다 털어놓은 여자, 나에게 남편이 없다고 고백하며 한과 응어리를 털어낸 여자의 가슴 깊은 곳에서 샘이 열려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현 위치를 알지 못하는 한 속고 속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물음이 달라지고 있지요.

양면

두 후배가 있었습니다. 한 후배는 저를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받아 갔습니다. 스펀지처럼 다 흡수해서 그의 삶이 넉넉해지고 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후배는 똑같은 것을 주어도 그저 잔소리하고 꾸중하고 간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줄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았지요. 그 둘을 보면서 많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한 후배는 저를 더 크게 만들어주고 힘을 주었고, 또 다른 후배는 저를 더 힘들게 하고 작아지게 했습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선생으로 보는 이들은 참 많은 것을 받아갑니다. 그러나 무시하는 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지요. 저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만이 아니라 서로를 다르게 만들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자기 손해입니다. 자기 삶을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기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사람은 더 받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다고 했습니다.(#깊은산 20181215)

#세월호 참사 1705일째 : 대법원 판결이 과연 적법한 법리에 따른 심판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04명이 침몰로 인해 희생되었는데, 사인의 발단이 될 수 있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일으킨 범죄자는 없었다는 판결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박근혜의 청와대가 개입한 기획 수사, 기획 재판으로 세월호참사는 법적으로 종결된 상태에 있습니다. 죽은 국민들이 있는데 죽인 자는 없다는 판결과 다를 바 없는 결론을 우리더러 믿으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전면적인 재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한 된 조사가 아니라 다시 낱낱이 모든 사실 관계를 제대로 다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범죄자를 찾고 범죄 가능성을 검증해야 할 제대로 된 재수사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기 특조위와 더불어 정상적인 ‘합동수사본부’입니다.(416연대)

성탄

예수께서도 거기에서는 아무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믿지 않는 곳에서는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내 생각과 기준에 묶여 있으면 그렇습니다. 그것이 귀신이지요. 하나님이 찾아와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맞이하는 것은 제자의 몫입니다. 눈을 뜨면 그 누구도, 그 무엇에서도 배울 수 있지요. 그런데 아들을 그저 말썽꾸러기로 보면 아들의 입에서,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목사를 목사로 보지 않으면 목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은 철없는 아이들도 선생님으로 맞이할 때 배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키웁니다. 성탄은 그런 거듭남입니다.(#깊은산 20181214)

#세월호 참사 1704일째 : 검경 합동수사본부만 그런 게 아닙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전문가 자문단이 대부분 박근혜 정부의 국가 해양사고 조사기관인 해양안전심판원과 관계가 있고 해양안전심판원의 전문가 자문단도 마찬가지 입니다. 광역 해양심판원장 출신인 검경 합동수사본부 자문단장은 재판정에 가서 세월호의 나침반에 남겨진 비정상적 각도 변화 기록-즉 비정상적 급선회 사실에 관한 중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기록을 말 한 마디로 부정하였고 재판부는 이를 검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국가 수사기관들인 국정원과 기무사 역시 세월호참사의 조사와 수사에 개입하였습니다. 국정원은 직무범위를 넘어서 세월호 수색에 관여했고 기무사는 세월호 증거 흔적 발견을 우려하며 인양을 중단시키려고 했습니다.(416연대)

아무 기적도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기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고 목수의 아들로, 누구의 형으로, 누구의 오빠로만 보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주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고, 또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지혜와 사랑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향의 친구들은 함께 자라 너무나 '익숙'하고,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너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손가락을 보느라 손가락이 가르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거지요. 믿음은 받침대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받혀 그 위에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 준비되어 있는데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에 오히려 예수가 놀라지요. 다 알고 있다고, 다 안다는 생각, 그런 선입견, 고정관념이 기적을 막습니다.(#깊은산 20181213)

#세월호 참사 1703일째 : 2014년 세월호참사에 대한 수사는 ‘세월호 침몰 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들의 수사 결과가 재판으로 이어졌고 사법부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를 거의 대부분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는 엉터리며 적법하지도 않았다는 게 올해 드러났습니다. 304명의 참변을 일으킨 발단인 침몰의 직접적 원인 제공에 대한 중대 단서를 포착할 수 있는 조사 기관의 실험 결과가 있었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를 누락시켰습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의 부설 연구소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의뢰에 따라 실험을 하였는데 이 실험에 따르면 이른바 세월호의 비정상적 급선회 현상이 세월호의 자체 결함으로는 재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실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이를 재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범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순 사고로 단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졸속 수사로 범죄 가능성을 따져볼 육하원칙-누가, 왜, 무엇으로 어떤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무슨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재판부에 제대로 제출된 것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사법 농단에 휩싸인 재판부는 세월호 재판을 기획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습니다.(416재단)

고향

예수께서 고향에 가니 달갑지 않아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옛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변화를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두려워하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련된 선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왔지만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내 친구가 변화되고 바뀌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모습, 이미 정해놓은 굳은 생각으로 보고만 있습니다.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힘들게 했던 남편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서 사랑하고 싶어 다가와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내가 새로운 모습으로 친절하게 대하면 닭살이라고 거절하지 않습니까?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그러기도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내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내가 풀지 않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풀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내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깊은산 20181212)

#세월호 참사 1702일째 : 구하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대해 국가가 말해준 답은 없습니다. 그게 정말 사고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선박 자체 결함으로 세월호참사를 사고로 일으키려면, 복원력이 아주 좋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복원력 불량에 의한 사고는 모순적인 엉터리 해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지난 4년 반이 넘도록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폐된 진실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중대한 단서와 증거들의 봉인이 풀린 이후에야 그 빙산의 일각을 비로소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9.11 대참사 직후 7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아서 조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1초, 1분이 우리 국민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적폐세력 산하의 수사사법당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중요한 시간을 배제하였습니다. 단 1초라도 제대로 해명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제 시작입니다. 구하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서 낱낱이 밝히고 범죄였다면 남김없이 처벌하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해 4월 16일 4주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개 선언했던 ‘완전한 진실 규명’일 것입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는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416연대)

따라서

거기를 떠나는 길도 함께하면 쉽습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 제자들도 따라 갑니다. 예수의 고향으로 떠나가는 것이지만 따라가는 제자들은 또 각자의 고향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홀로이지 않지요. 예수께서 앞서 서 그 길을 가시고 제자들은 따라갔지요. 오늘 나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미 그와 그녀가 앞서 간 길입니다. 이미 되어 있는 길을 가고 있으니 내 눈만 뜨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이지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두려움은 내 안의 느낌일 뿐, 한걸음을 옮겨 가 보아 사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라고 보는 눈으로는 문제만을 만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서 그것을 내가 경험하는 신비로 만난다면 구경하듯이 바라보고, 게임하듯이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여유와 틈이 생기 거지요. 오늘 거기를 떠나 고향으로 가는 그처럼 나도 그 마음이 되어 봅니다.(#깊은산 20181211)

#세월호 참사 1701일째 : 구하지 않은 시간들 중 어느 시각 하나도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시간들에 관여한 그 누구에 대해서도 혐의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이 ‘사고’ 인지 ‘범죄’인지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기 특조위를 만들었고 제대로 된 재수사를 요구하며 이에 따른 제대로 된 심판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가 전복된 시각은 10시 17분이었습니다. 그리고 10시 30분에 완전히 침몰하였습니다. 검찰은 박근혜가 3분 뒤, 10시 20분에 침실에서 나와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10시 20분. 과연 이게 사실일까요? 10시 20분 전까지는 자고 있었다? 8시 49분부터 첫 구조헬기가 온 9시 27분, 구조 함정 배가 온 9시 30분까지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해경의 지휘부 윗선들은 과연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이것이 과연 첫째의 시간들에 간여 되었을 자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416연대)

거기를 떠나서

예수께서는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거기는 그동안 내가 일을 해왔던 곳,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그곳입니다. 예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떠나보는 거지요. 그래서 고착되었던 것에서 나와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이고 붙잡혀서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하지만 또 떠나보면 그렇게 힘들었던 것조차도 그리워질 거예요. 소중한 나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언제까지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 안주하고 싶어 한다는 거지요. 머물러 있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잘 떠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머물러 있는지 비추어 봅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와 같이 거기를 떠나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익숙한 순간이 떠나야할 때입니다.(#깊은산 20181210)

#세월호 참사 1700일째 : 처음으로 초동 조치를 했어야할, 참사의 발단을 일으킨 자들에 대해 박근혜 정권 혹은 조사와 수사 기관, 재판부가 파헤친 사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사수사, 사법당국은 애초부터 참사를 일으킨 자들에 대한 영역은 배제했습니다. 이들은 세월호가 언제든지 침몰할 수 있는 선박이었다고 단정하고 사건이 일어난 발단,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배제했습니다. 오히려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시민을 구속까지 시켰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자문단장-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은 재판에서조차 세월호의 급격한 변화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조타실에 있었던 나침반이 목격한 기록에 대해 오작동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검증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세월호는 애초부터 나쁜 배였고 그러니 태어나지도 출항하지도 말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허무한 말로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을 초월하는 엉터리 단정으로 국민을 속였습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모든 사건과 범죄들은 애초부터 그 용의자들이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416연대)

정의와 평화

양로원에서 어르신들과 주일 예배를 드리며 이사야 32장을 읽었습니다. 통치자들은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고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고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 같다는 이사야의 고백을 들으며 슬픈 마음으로 이 땅의 위정자들을 봅니다. 그들은 백성을 돌보는 눈이 멀고 요구를 듣는 귀가 막히고 의도한 것을 말하는 입이 닫혀 있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을 보내주시면 황무지가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가 풍성한 곡창지대가 된다고 노래합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정의가 세워지지 않은 까닭이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정의가 결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성령은 정의와 평화입니다. 정의가 세워지지 않고 평화가 없다면 하나님의 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오늘 성령으로 사는 사람을 기다립니다.(#깊은산 20181209)

#세월호 참사 1699일째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세월호는 갑자기 꺾이며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바로 이 시각으로부터 필요한 것은 응급 초동 조치였습니다. 신고도 해야 하고 탑승객이 안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초동 조치를 누가 해야 했을까요? 첫째, 그 시각 누군가가 세월호의 진로를 갑자기 꺾고, 선체를 급격히 기울게 했다면 바로 이들이 신고를 비롯한 첫 초동 조치를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자들입니다. 둘째, 그 시각 세월호의 선수는 마치 레이싱 경주 자동차가 드리프트 하듯이 해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선수는 오른쪽으로 45도 급선회하고 좌현으로 50도 이상 기울어 침몰의 발단이 된 초기 침수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에 5톤 화물차조차 중력을 뛰어넘는 원심력으로 인해 네 바퀴가 부양하여 왼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러한 대형선박의 급격한 변화를 알게 된, 항해를 책임지고 있던 선원과 연락을 받은 구조 당국은 최대한 빨리 초동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신고는 8시 52분, 탑승객이었던 단원고 학생이 했습니다. 구하지 않은 시간들은 8시 49분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416연대)

잘 다녀왔습니다.^^

신학교 졸업 후 목회를 배우고 목회를 하느라 20년, 나이 오십이 넘어 유럽을 처음 나온 벗들의 손을 잡고 파리를 다니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떼제 공동체를 방문하고, 버킷 리스트인 프루스트의 일리에르 꼼블레를 돌아보고,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을 걷고 한국을 들러 토론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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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로 멍하지만 오자 마자 들어온 공항픽업 일을 하고, 네팔 안나 푸르나를 다녀오신 권종섭 장로님 내외를 만나 교제를 나누고, 양로원에 올라오니 눈이 한 가득입니다. 한 달을 비웠고 워낙 기억력이 없으신 할머니들인데도 목사님 왔냐고 어디갔다가 이제 왔느냐고 환히 반기시니 미안함 가득합니다. 우리 백구 로라도 꼬랑지를 흔들며 눈밭에 발랑 누워 어쩔줄을 몰라하네요. 고마운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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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책상에 앉아 꼬박꼬박 졸며 버티다 아침 죽을 슬로우 쿠커에 올려놓고 잠이 들었는데 12시도 안되어 꿈속에서 "똑똑 똑똑똑 똑똑똑똑"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은데 아무래도 생시같고 여기가 어디지 하며 일어나 올라가 보니 할머니 한분이 화장실을 나왔다가 방문을 못열고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ㅎ 문을 열어 드리고 내려와 잠을 청하는데 시차로 잠이 달아나 버려 말똥말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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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떻게 잠이 들었나 모르는데 물이 쏟아지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3시, 할머니 한 분이 배회를 하시면서 수도 꼭지와 샤워 꼭지 물을 있는대로 다 틀어 놓으셔서 한강 일보 직전... 휴~ 그리고 내려와 눈을 부치지만 곧 6시 아침 일과 시작 시간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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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서빙을 마치고 청소하고 빨래 돌리고 점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할머니들 화장실 봐드리고 간식 챙겨드리고 저녁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하루가 다 갔습니다. 하루만 더 버티고 오늘 밤은 잘 잘 수 있을까 묻다가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서 있습니다. 발은 아프고 짐은 무겁고 한걸음도 떼기 힘들어 지금 몇시지? 얼마나 더 가야지 할 때마다 어떻게 온 길인데 아끼고 아껴야지하며 정신을 차리면 내 앞에 있는 그 길은 조금 전 그 길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길을 즐기고 지금을 사랑하는 길을 알아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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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례길, 오늘입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양로원에서 하는 일, 이틀만 버티자 하면 나는 지옥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틀을 아끼고 아끼고 사랑하자 하면 나는 천국에 삽니다. 구원은 종이 한장 차이도 아니지요. 구원받은 사람은 없고 구원받은 상태만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각을 바라보는 의식의 차원입니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요. 아끼고 아껴서 충분히 다 해서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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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한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 본다..."

● 20181121(#산티아고 12일) : 길의 끝은 바다, 나의 끝은 감사와 찬미

혼자 자니 코를 고는지 이를 가는지 잠꼬대를 하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여행를 나와 같이 자게 되면 애로가 많습니다.
나도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자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코를 골고 있더라구요.ㅎ
단체로 자는 알베르게에서는 소용이 없는줄 알지만 많이 미안합니다.
산티아고에 와서는 이틀을 2인실 호스텔에서 묵기로해 마음 편하게 잡니다.
상선이형도 코를 골고 잠꼬대를 하니요.^^
어제 일찍 도착해 순례자 증서도 받고 성당 저녁미사도 참석하고 혼자서는 생각도 못하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진지도 했답니다.

그리고 아침, 빗소리가 거세어 어쩔까, 더 잘까...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컵라면에 물부어 먹고 나가니 비가 멈춥니다.
버스 터미널까지 30분 걸어가 버스를 타고 땅끝마을 피스테라를 다녀왔습니다.
해안가를 달리는 버스 창밖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감탄을 하다 잠이 들고 깨고... 달콤한 여행이었지요.
3시간을 달려 피스테라에 도착해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땅끝 등대까지 3Km를 걸어 올라갑니다.
정말 비 사이로 막가인지 비를 피해 잘다녔습니다.
구름과 하늘도 멋지구요.
역시나 등대에 이르니 바람이 거세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바람'이 내 바람이 되길 기도하며 잠시 앉아 명상하고 등대 위 Bar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여행길이 마무리 되고 이제 일상으로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여행을 하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그 떠남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돌아온 그는 예전에 그가 아닐거구요.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성당 앞에서 어느 이쁜 금발의 처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소감을 묻는데 나는 "이제껏 걸어왔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산티아고가 내 목적지가 아니었구나. 다시 걷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나니 대견했지요.ㅎㅎ
"부엔 까미노(좋은 길 되세요!)"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에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
(로마서 12:9-12)

● 20181120(#산티아고 11일) : Just smile, keep walking.

살세다 알베르게에서의 환대를 뒤로하고 산티아고를 향해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더 상큼해진 숲길이 코끝에 아리는 숲향으로 느껴집니다.
한숨차게 걷고 처음 만나는 Bar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하고 다시 걸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역시나 산티아고는 그냥 우리를 맞이하지 않네요.ㅎ
걷는 내내 우비를 입고, 앉아 쉬지 못한데다 빗줄기가 거세 신발 안까지 물이 스며들어 걷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빗소리를 친구 삼아 28Km를 잘 걸어 산티아고 성당 앞에 섰습니다.
산티아고에 들어서니 날이 개기 시작해 걸음이 더 가볍습니다.

어느새 세번째 찾아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입니다.
내 생에 이런 날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요.
이렇게 감히 상상하지 않은 삶을 삽니다.
산티아고 도심이 보이기 시작하자 불현듯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 듭니다.
아쉬움은 길이 끝나고 있다는 직감이고 후회는 더 정성껏 걷지 못한 미안함입니다.
헉헉거리며 온 숲길이 그리워지지요.
그 순간에 그것이 그렇게 좋은지 미쳐 알지 못했고 심지어 불평을 하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함께 걷는 상선이 형은 비를 맞는게 좋아 오늘이 최고의 순례길이라고 환호성을 올립니다.
열흘 남짓 걸었으니 이제 몸이 걸음에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와서 길을 잃게 됩니다.
지금을 놓치면 어디든 의미 없는 거지요.
오늘 사는 나의 하루도 그런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왔지만 막상 대성당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걷고 싶은 내 발과 가슴이지요.
나는 거기를 향해 내내 걸어왔습니다.
이제 돌아가야할 때입니다.
길가의 돌 하나, 풀 하나, 피어난 꽃들이 눈에 들어오면 눈물이 납니다.
바람과 비도 반갑고 뜨거운 햇살과 먼지와 진흙과도 친구가 됩니다.
그러니 그 뮤엇이 나를 어쩌지 못하지요.
다 사랑하고 맞이하고 즐기고 누리는 그것이 순례길입니다.
아끼고 아껴 길을 걷습니다.

어느 순간이든 Just smile, keep walking이면 족합니다.
웃으며 길을 가는 사람을 어쩌지 못하지요.
다시 오고 싶은 여행은 힘들고 시련이 있었고 그것을 넘어서는 기억이 있었던 여행이라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후회와 아쉬움과 감사 가운데 나를 일깨워 제로 베이스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과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하니까요.
산티아고의 밤이 깊어갑니다.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 20181119(#산티아고 10일) :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오늘도 해뜨기 전에 길을 나섭니다.
일정이 촉박하지만 상선이형이 비속에서라도 땅끝 피스테라를 보고싶다해서 하루 일정을 당기기 위해 무리를 했습니다.
언제 다시 오겠냐고,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두번 다시 못볼 듯이입니다.
순례자지요.
덕분에 또 아름다운 새벽길을 걷습니다.
길에서 일출을 보고 일몰을 맞이했습니다.
12시간 반의 산길, 38Km를 함께 호흡하며 걸었네요.
기적입니다.ㅎ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찬양이 몸에서 절로 나옵니다.
아니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입니다.^^
7시가 넘어 깜깜해지고 비는 오기 시작하고 길은 안보이고... 기특한 구글 맵 덕분에 찾은 외진 시골 살세다 알베르게, 얼마나 고마운 천사인지 모릅니다.
아르추아에서 오는 길에 전화를 해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문 열고 기다려 주셨네요.
그리고 지금까지 중에 최고의 저녁진지까지 베풀어주셨습니다.
길에서 천국을, 천사를 만났습니다.
멜리데에서 맛본 유명한 문어요리도 물론 일품이었구요.
"Love is in you."
까미노 이정표에 남겨진 낙서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렇지요.
내가 사랑입니다.
나에게 돌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 나는 그리스도입니다.

날이 어둑해지니 뒤 따라 오던 상선형이 후레쉬를 켜니 갑자기 앞이 어두워지고 내 그림자에 내가 놀랍니다.
촛불을 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이 빛을 가리고 그림자를 만들지요.
희미한 촛불을 끄고 영원의 불을 밝힙니다.
이제 저절로 걸어지는 걸음 가운데 있습니다.
이렇게 때가 찹니다.
그렇게 내가 가슴 뛰게 하고 싶은 일, 내 자리를 찾아갑니다.

● 20181118(#산티아고 9일) 포르토마린 - 팔라스 데 레이 : 해바라기

파리로 다시 출발하는 학산이 형과 포르토마린에서 마지막 밤을 진하게 보내고 상선이 형과 나는 산티아고를 향해 계속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포르토마린에서 밤새 악몽같은 베드버그의 급습을 받았습니다.
얼굴과 어께와 다리까지 무언가 물어버린듯 붓고 간지럽고 불편하고...
여튼 그냥 잠을 잘 수 있는 날의 편안함을 이렇게 알아가지요.
준비한 알러지 약과 항생제를 챙겨먹어 많이 가라앉았지만 덕분에 약에 취해 몽롱하게 걸으면서 종일 쏟아지는 졸음에 해바라기를 합니다.
다행히 예보된 비가 내리지 않아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네요.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오늘 서로를 축하하며 The last sunny day(순례길 마지막 햇살)라고 합니다.
지금을 즐기자는 거지요.
내일 염려는 내일에 맡깁니다.
길에서 삶아 온 밤도 까먹고 길가 따뜻한 양지녁에서 해바라기하면서 졸기도 하고
여유를 만끽하는 까미노의 축복을 누리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그렇게 길을 걸으며 다시 물음을 만납니다.
오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가슴뛰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아니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임을 길에서 다시 알아차립니다.
이미 충분히 살아 여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의욕을 상실한채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남은 날들이 있지요.
그날들을 아끼고 아끼며 꽉채워야할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다시 묻습니다.
순례길 첫날 내게 주시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돌보며 살고 싶다고 기도하는 나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떻게 남은 길을 채울까 묻는 걸음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삶에 만족하지 못하다는 거지요.
이제 제자리를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같이 길을 걷는 상선이형은 까미노에서 이 시대의 이단아가 되어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이단아로 목회를 하고 있는데 까미노는 그 각오를 더 다지게 하나 봅니다.
나는 어떤 이단아가 되고 있을까, 해바라기를 하며 물음에 물음을 던집니다.

● 20181117(#산티아고 8일) 사리아 - 포르토마틴 : 은혜

아직은 아침에 일어나면 막막한데 짐을 싸고 등에 둘러매면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한 걸음을 걷습니다.
오늘도 아름다운 산길과 동네를 마주합니다.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열어봅니다.
그리고 알아주지요.
산티아고 115km전인 사리아부터는 순례객들이 많아집니다.
첫숨을 돌리며 내가 걸어 온 그 길을 걸어오는 한명 한명의 모습을 보니 참 아릅답습니다.
지난 2번의 순례길에서는 비를 맞으며 걸었던 이 길을 밝은 햇살 아래 걷는 은혜를 누리지요.
이것도 좋습니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지만 또 그래서 입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없으니 모두를 받아 안습니다.

겨울이라 Bar와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아 점심을 미숫가루로 넘기다가 산티아고 100Km 직전에 레스토랑에서 멋진 스페인 디쉬를 대접받습니다.
그리고 만난 100Km 이정표, 거리와 목적지가 갖는 의미는 없지만 우리는 또 반갑게 이정표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한결이와 우중에 만나 세상을 다 얻은듯이 찍었던 사진 한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싶은 것을 만납니다.
만나야할 사람을 만나지요.

길을 가다 막바지 마을에 친절한 쉼터를 다시 만납니다.
2번 빗길 속에 쉬어갔던 곳이라 마음이 다가옵니다.
비를 피해 잠시 쉴 수 있을 때 얼마나 고마왔던지요.
뒤처진 동행을 기다리며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바람 소리가 거세어집니다.
선물로 온 오늘 하루가 가는 소리입니다.
주의깊게 듣습니다.

Honor to the end.
포르토마린 마을 입구의 표지석에서 만난 낙서네요.
끝을 위한 영광, 혹은 끝에서 만나는 영예인가요?
오늘도 학산이형이 끝까지 걸었고 또 마지막 까미노였습니다.
학산이 형은 내일 산티아고로 버스를 타고 가서 파리로 떠나고 상선이형과 나는 산티아고까지 걷습니다.
그 안에 만날 은혜를 기다립니다.

● 20181116(#산티아고 7일) 트리아카스텔라 - 사리아 : 맑음

폰페라다부터 이틀 강행군을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20일 걸을 길을 하루에 온 길을 만회하려는 듯이요.
그렇게 몰아서 다시 순례길에 서봅니다.
어디나 그렇듯 순례길도 쉽게 들어설 수 없습니다.
대가를 치르어야지요.
보통 열흘 정도는 걷는 길에 몸이 적응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몸이 아픔으로 반응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정신적 방황을 하지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끝없이 물음이 물어옵니다.
그리고 나면 길이 이끌고 길을 알려주지요.
그러니 안타깝지만 열흘 정도의 일정으로는 힘든 기억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계를 넘으면 어느 순간 쉬워지는 길의 은총입니다.
지금 다들 많이 힘이 들지만 그래서 때가 차야 하는 거지요.
또 그만큼이 100% 선물입니다.

어제 상선이형이 산을 내려오는 길에 고생을 했습니다.
마을 길에 소를 치는 소만한 개들이 묶여 있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어두워지니 낯선 사람에게 덤벼드는 겁니다.
긴 길을 힘들게 내려 오느라 날이 저무니 개들이 낯선 상선이 형에게 달려들고 물었답니다.
다행히 주인이 금방 나타나 큰 봉변은 면했지만 이제 어두운 길은 나서지 않기로 합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오늘은 20여Km 사리아로 가는 일정이라 느즈막히 푹쉬고 아침도 든든히 먹고 출발했습니다.
뒤로 오세브레이로에는 구름 안개가 잔뜩 끼어 있지만 다른 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맑음입니다.
우리 마음도 더불어 맑습니다.
참 아름다운 산길을 종일 걷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지난 까미노에 한결이가 맛보고는 콜라를 찾지 않던 약수도 다시 찾아 물통 가득 추억을 채웠습니다.
시원하고 깨끗한 맛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천년의 길, 이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의 마음과 고뇌를 되새기며 새로운 길 한 가운데 다시 서는 하루 길을 채우고 반가운 사리아 성당 앞에 섰습니다.
오늘은 드디어 학산이 형도 택시를 타지 않고 계획한 길을 다 걸었습니다.
축배를 들었지요.

구원받았느냐고 묻는데 나는 감히 구원받은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있다면 구원받은 상태만 있지요.
그 안에 흘로넘치는 생수와 기쁨과 사랑입니다.
우리의 의식 수준은 늘 오르락 내리락하지요.
의식 수준이 높아 사랑과 평화에 있을 때 하나님 안에 있는 구원받은 상태이고 의식수준이 떨어져 의심과 불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에게 멀어져 심판과 지옥에 사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그러니 구원은 이미이고 아직입니다.
늘 깨어 있을 때, 지금 여기서 하나님 안에 이미 살고 그렇지 못하면 지옥의 불가에 머뭅니다.
천국과 지옥은 그렇게 있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야지요.
구원받은 상태에 늘 머무는 참나로 살아가는 맑음입니다.

● 20181115(#산티아고 6일) : This way is you

오늘도 까미노에서 높기로 유명한 오세브레이로를 넘어 30Km를 넘게 걸어야해 새벽 6시에 일어나 라면을 끓이고 밥을 합니다.
새벽에 먹는 라면...ㅎ 꿀맛이지요.
아직 어둑한 길을 나서니 각오는 서지만 막막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막막함을 넘어서는 길은 한걸음 옮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직면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가면 어떻게든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날씨 변덕이 심한 오세브레이로, 그 덕에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했다는 전설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어제까지 화창했던 하늘에 구름이 들기 시작하고 저 멀리 산 위는 구름으로 가려져 있지요.
그래도 길은 좋습니다.
신길로 접어들자 온통 밤송이가 가득합니다.
평지에는 다들 주워가서인지 밤송이는 있어도 밤을 구경도 못했는데 사방에서 밤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고 먹음직한 밤들이 굴러다닙니다.
주머니마다 밤을 주워 채워도 다 담을 수 없지요.
오늘 밤은 밤을 삶아야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네요.

오세브레이로를 지나 잘 닦여진 길을 룰루랄라 걷다가 마지막 깔닥 고개에서 숨을 헐떡이며 고비를 넘기니 세상이 다 내려다 보입니다.
이 맛에 걷지요.
세상이 다 내것이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원래 그런 나입니다.
처음 까미노에서는 비를 맞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번째는 한결이와 보조를 맞추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오롯이 나와 함께입니다.
걷는 내내 기도와 명상에 잠겨 봅니다.
오늘도 무사히 순례길을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해 밥을 해 저녁진지까지 마칠 수 있어 고맙습니다.
해뜨기 전에 출발해 해질녁이 되도록 길에 서 있던 하루였습니다.
학산형도 오세브레이로까지 택시로 올라와 마음 먹은 20여Km를 잘 걸을 수 있어 더 감사하지요.

길을 걷다가 만나 가슴에 남는 낙서가 있습니다.
"This way is you."
그렇지요.
올라보아야 아는, 걸아보아야 아는 그렇게 경험한 이들만이 길이 있습니다.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오늘 그렇게 걸은, 오늘 내가 산 하루가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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