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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성 목사의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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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1일부터 메시지를 발송하지 못하게 됩니다.

매일 찾아오는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와 이야기, 어떠신지요?^^ 플러스친구 메시지가 유료화되었는데 제가 외국에 있어 유료 메시지를 사용할 수가 없어 당분간 메시지로는 발송해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계속 이곳에서 이어가고 있겠습니다. 수고스럽지만 가끔 여기 플러스 홈을 찾아주시고 혹시 '일반 카톡'으로 편지를 받기 원하시는 분은 카톡 아이디나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단톡방에 초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한

예수께서 인생을 비유하며 여행하는 어떤 사람이 집을 떠날 때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일을 맡기고 깨어 있으라고 명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는 권한이 있고 할 일이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권한과 맡겨진 일은 무엇인지를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옛 사람들은 시간은 금보다 귀하다고 했고 어느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시간을 아껴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오늘, 지금 내가 사는 시간의 주인이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이 있습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일이 있습니다. 수고하며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기회, 사랑할 수 있는 가족,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친구, 연인이 있지요. 하루를 사는 일상을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니라 나의 권한과 나의 일로 정확하게 알고 보며 사는 삶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 애씀을 고통이 아닌 낙으로 받을 수 있는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십시오. 나의 권한과 나의 일을 기쁘게 합니다. 마지막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 준비하며 살아야지요. 늘 정성껏, 최선을 다하는 삶, 종말을 사는 삶입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30)

조건

캐나다에 와보니 이 나라에도 신분이 있습니다. 시민권자가 다르고, 영주권자가 다르고, 취업비자가 다르고, 학생비자가 다르고, 방문자가 다르고, 서류미비자(소위 불법체류자)가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불법체류자여서 늘 불안하고 전전긍긍합니다. 언제 쫓겨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취업비자만 나오면 그 때는 열심히 일도 하고 캐나다에서 사는 것을 누리며 즐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취업비자를 받아도 영주권만 나오면 할 거라고 합니다. 영주권이 나오면 시민권이 나오길 기다리고 살겠지요. 늘 불안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행복은 그런 조건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불법체류자여도 영주권자가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영주권을 얻어도, 얻지 못해도 잘 살 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를 어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그렇게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나를 알고 만나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모르며 사는 것이 장점, 유익이 있습니다. 언제일지 알지 못하기에 늘 마지막처럼 사는 것이 최고로 사는 것입니다. 많이 아파보신 분들이 하시는 공통된 고백이 있지요. 인생은 시한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그동안 허송세월을 하며 낭비한 것이 억울하여 이제부터는 한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뜻 깊게 보내겠다고 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29)

행복

사람들이 속고 사는 것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조건이 행복하게 한다는 착각입니다. 이것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하다느니 이것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느니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조건이 충족되고 나면 또 다른 조건 때문에 불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예가에서 캠프를 열 때 여름마다 오는 캠퍼들에게 처음에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토론토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내가 산 하루가 모여서 30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멋진 기대와 포부를 가지고 캐나다에 왔지만 내가 하루를 살지 않으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거지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소중하게 정성껏 행복하게 사느냐에 캠프의 성패가 달렸다는 것이고 그 하루는 내가 살고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 누구와도 아닌 나와의 약속입니다. 그렇게 산 시간이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을 짧은 시간동안 진하게 경험하자고 말합니다. 지금 여기가 내 생의 전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는 것이 깨어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무엇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 행복한 것입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27)

내일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종말이 언제인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종말이 언제인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망했습니다. 종말이 오기도 전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가족과 이웃과 사회도 망가뜨려 버렸지요. 그런 사람들은 이제 곧 끝이니 흥청망청 즐기며 살자고 합니다. 이제 곧 끝인데 일하면 뭐해? 라고 합니다. 또는 이제 곧 끝이니 산 속에 들어가서 세속과 결별하고 살아야지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역사는 자기 일을 하며 정성껏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이렇게 이어져 왔고 이어져 갈 것입니다. 그날은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께서만 아신다고 하셨지요. 감추어진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조심하고 - 마음을 살피고, 깨어 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종말을 깨어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될지 모르는 삶의 긴장을 즐기며 사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지금밖에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성껏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것 밖에 없습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내일도 열심히 살 수가 없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이기 때문이지요. 기다리는 지금을 즐기지 못하면 기다리는 것을 얻어도 즐길 수가 없습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15)

철이 들어

철없을 때 안다고 하지 사람이 철이 들면 내가 얼마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모르기에 믿고 맡기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참 앎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도, ‘사랑’이라고 해도, 더 크게 ‘하나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상대’가 ‘절대’를 알 수 없지요. ‘유한’이 ‘무한’을 담을 수 없습니다. ‘사실’이 ‘생각’을 담지 ‘생각’이 ‘사실’을 담을 도리가 없지요. 이미 가장 잘 되어져가고 되어져 있는 세상입니다. 나만 모를 뿐입니다. 그것을 알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육체이고, 내가 한계가 있고, 내가 지나가는 것을 알 때 그 너머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 날과 그 때를 알려고 하고, 안다고 합니다. 공허한 호기심일 뿐입니다. 학생들의 실력을 높여주는 선생님은 시험날짜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제일 무서운 선생님은 불시에 시험 보는 선생님이지요. 시험 때를 알면 그 때까지 넋을 놓고 있다가 닥쳐서 벼락치기를 하고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평소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제 시험을 보아도 걱정이 없지요. 시험날짜를 아는 것이 사실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철이 들어야 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14)

모를 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모른다고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 때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쉽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알면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모르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 성장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안다고 하니 그것이 너희의 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아는 것입니다.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니 말입니다. 남편을 안다고, 아내를 안다고, 자식을 안다고 하지만 안다는 생각 때문에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되곤 합니다. 모름에서 시작해야 진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르기 때문에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신학대전’이라는 불세출의 거작을 남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평생을 걸쳐서 신학대전을 집필하고 마지막 몇 장을 남겨 놓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밤에 기도하는 방에 가서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십자가상이 빛나기 시작했고 빛나는 십자가를 보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그리스도가 그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동안 써왔던 것을 일체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그것을 마저 쓰면 후세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고 설득하면 “내가 철이 없어서 그것을 썼지. 이제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그것들이 지푸라기만도 못한데, 그것을 쓰느라 평생을 소모했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08)

분별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때를 분별한다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면 봄이 온 것이고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삶에 큰 환난이 있고 견딜 수 없는 역경이 와서 해가 어두워지고 달과 별이 떨어지는 듯한 위기를 만나게 되면 분별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런 위기에서 절망하여 낙담하게 되고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기 쉽지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에 이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먼저는 예수께서도 그런 고통을 겪어 하나님을 만나십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지요. 자, 그런 지금이 주님을 만날 때, 하나님을 우리 삶에 모실 때입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07)

문 앞에 서 계신 주님

그렇게 환난의 때, 지금은 그것이 지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를 만나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 살아가는지를 아는 구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내가 나이고, 부활이고, 생명임을, 나는 태초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있고, 아버지께로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전해주신 복음, 이것이 사람으로 태어나 눈을 떠서 맞이하는 신비, 믿음의 세계입니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볼 것입니다. 나의 날이 다하기 전에 볼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입니다. 다 일어날 것이니 피할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맞이하고 잘 바라보아 때를 알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이제 문 앞에 가까이 와 계신 하나님, 사랑의 선물을 마음껏 만나고 누릴 수 있습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701)

재림

어느 영성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원이 시간의 영속이라는 것은 가장 큰 속임수다.” 영생이 그렇습니다. 시간의 개념에는 절대 영원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넘은 세계를 볼 때 진리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선조들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했지요. 나타난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음을 알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보이는 것, 나타나는 것에 연연해서 살아가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다렸던 그 재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보았습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거짓말을 한 것이지요. 진실로 그들의 삶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간을 넘은 삶으로 맞이하는 신비입니다. 그 무엇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그것이 내가 아닌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이들은 이미 그들의 생에 예수를, 그리스도를 다시 맞이했습니다. 큰 권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늘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30)

무화과나무의 비유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라는 것을 알 듯이 내가 견디기 힘든 역경 가운데 있다면, 해조차 어두워지고 달과 별들이 빛을 잃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되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 때가 주께서 문 앞에 서계시는 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바로 나의 때라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여기 있는 사람이 죽기 전에 내가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까요? 당시의 제자들은 정말 그렇게 예수의 재림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오실 것을 바라보면서 철저하게 살았지요. 그들은 종말을 살아갔던 순교자들입니다. 죽음도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고 곧 인자가 올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셨던 위로는 너희들의 때가 올 것은 길지 않을 것이고 곧 일어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것이니 믿음을 잃지 않는 자는 승리할 것이라는 격려입니다. 종말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자만이 맞이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종말을 다 끝났다고 여기는 시간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지요.(#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24)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인생의 고통과 역경과 혼란을 지나서 만나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때에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지금 어려움과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것은 밤이 깊은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아침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이지요. 그날이 지나면 주님께서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나에게 오실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는 인자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될 수 없지요. 구원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진실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난조차도 감사할 밖에요. 슬픔이 있어서 기쁨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 땅 끝과 하늘 끝에서 사람들이 모여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모으십니다. 주님이 보내는 천사가 우리 곁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불러 하나님 곁, 사랑과 감사와 환희로 이끄시는 천사를 만나는 것이 생의 구원이지요. 그러니 어디에 있든지 염려하고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 끝에 있더라도 땅 끝에 있더라도 보내시고 모으시는 것은 주님의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릴 수 있고 인내할 수 있고 어떤 일에도 감사할 수 있지요. 환난은 지날 것이고, 그러면 인자가 오셔서 천사와 함께 우리를 불러 모아주실 것이니 말입니다. 일은 그렇게 일어나고 되게 되어 있으니 염려와 걱정이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23)

분리

환난이 일어나는 일 안에서 또 다른 길을 보는 통로라면 깨어 있는 것은 분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료하게 갈라지는 것이지요. 나누지 못해서 혼란스럽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나를 떨어뜨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겪는 환난과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어나는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하고 남편과 나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남편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나의 행복을 구하는 것은 분리가 아닌 의존이지요. 자식과 나를 분리하지 못해서 평생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환난이 지난 뒤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해가 어두워집니다. 달과 별들도 사라지고 하늘의 세력이 흔들립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당대의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 절대시하고 지나가지 않으리라고 보았던 그것 역시 사라지고 흔들리고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오늘 나에게 그것은 무엇인가요? 해도, 달도, 별도, 나를 괴롭히는 땅의 권력과 힘 있는 사람들의 통치도, 로마와 종교지도자들의 협박과 폭력도 흔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남는 것은 여전히 나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나를 괴롭히는 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지키고 소중히 여겨야할지 분명해집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16)

환난은 지나가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고통입니다. 누구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나에게 그 일은 어떤 일들인지 생각해 봅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 ‘실연’, 평생을 같이 살아온 배우자가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부도’, 생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이혼’과 ‘사별’, 감당할 수 없이 힘든 ‘질병’과 ‘패가’.... 아니 지금 나를 옥죄고 있는 그것들, 그 순간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 환난은 지난다고 했습니다. 로마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은 2000년간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존심과 신성을 모두 망가뜨리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그 환난 역시 지나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빠르고 더딤이 있을 뿐, 가장 적당한 시간에 그렇게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지혜 가운데 하나는 ‘영원한 것은 없음’입니다. 환난은 그렇게 일어나는 일 안에서 또 다른 길과 음성을 듣는 통로인 것입니다. 또 그렇게 보면 그것이 나를 어쩌지 못하고 나는 변함없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10)

신비

그 환난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고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큰 재난과 곤경을 보는 또 하나의 길을 말씀해 주고 계시지요. 그것은 지나간다는 것이고 그 때가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 날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문제의 좋은 점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 일을 만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2000년 전에 살다가 간 사람이나, 2000년 후에 살다가 간 사람이나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세대에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생로병사, 삶은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할 신비입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09)

무슨 일을 만나든

요즘 코로나19의 상황과 함께 달라진 일상의 후폭풍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어둔밤을 지나고 있지요. 양로원에서 일하고 아들 기숙사지만 집에서 일을 할 때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숨을 돌릴 틈이 있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 몇 주 5일 이상을 밖에서 지내며 일을 하다 보니 잃어버리고 고갈되어 가는 것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며 신호가 딱 옵니다. 양로원 생활 때부터 7년 이상 매일 쓰던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도 일주일에 한 두 편으로 뜸해지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반응도 파편화가 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 또한 충분히 경험하면서 그런 밤을 지나 찾아오는 아침이 있다 여기며 몰두하고 있지만 위기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신호이겠지요. 책상에 앉아서 보는 하늘 말고 삶의 현장에서 하늘을 보겠다고 기도하고 있으니 지금 만나는 영혼의 어둔밤을 고갈과 상실이 아니라 길 위에서 하늘을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 얼굴에 미소를 잃지 말고 가슴으로 그 일을 사랑합니다. 홍수를 지나 본 사람은 또 다른 홍수가 와도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나는 노아입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08)

어떤 마음

방주에서 나간 까마귀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면 독립해서 좋고, 돌아오는 비둘기는 맞이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여기에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 품고 받아 안을 수 있는 유연함이 사랑이고 그것으로 족하지요.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가면 보내주고 오면 받아들이고... 그리고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 왔던 그 비둘기도 결국을 다시 나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게 삶이고, 그게 방주이고, 그게 노아입니다. 더 크고 넉넉하게 인색하지 않게 그렇게 살기로 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07)

있는 그대로 주는 사랑으로

바람이 불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홍수가 그치고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불어옵니다. 늘 새로운 날이지요. 이제 방주에서 나가려 할 때 노아가 내가 만든 나의 방주에서 너의 생명을 지켜 주었으니 너는 나를 떠나지 못한다고 하지 않고 노아는 손수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 줍니다. 떠나보내려고, 자기 삶을 살게 하려고 방주에서 데리고 있었던 거지요. 내가 한 일이 아니니 내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가장 높은 의식 수준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냥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는 사랑으로 내가 큽니다. 자식을 소유하려하고 남편과 아내, 애인을 내 맘대로 하려하고 일의 결과를 좌우하려할 때부터 사랑은 떠납니다. 방주를 만들고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그것 자체로 이미 행복이고 감사이고 기쁨이지요. Enough!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도 바람이 불어 숨을 쉽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05)

또 조심

결론은 역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높은지, 낮은지, 사랑인지, 미움인지, 두려움인지, 감사인지... 거기에 따라서 나의 삶이 달라집니다. 조심하는 것을 통해 나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미 다 이루었고 선물로 주셨는데 믿음으로 살지 않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큰 환난 날에, 지금 미움과 원망과 한숨으로 황폐해진 우리,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우리 안에 서 있는 것을 볼 때 당장 떨고 일어나, 미련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하고, 기도하고, 이런 저런 속임수에 속지 않도록 그런 것들을 믿지 말고, 조심해야 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04)

거짓말쟁이 사기꾼

또한 그 날에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속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날을 줄여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혹은 저기에 있다고 하며 사람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거짓말쟁이고 사기꾼들입니다.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들을 고쳐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속아 재산과 세월을 탕진했지만 예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고 하셨지요. 하나님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늘 나의 편이시지요. 그러므로 거짓 그리스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은 그들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홀리지 말고 깨어서 굳게 서 있으십시오. 나의 밖에서 나를 흔드는 나의 생각에 느낌, 심각함에 빠져서 지금을, 오늘을 놓치지 말 것입니다. 믿음은 생각과 느낌 너머에 있습니다. 그런 속임수를 믿지 말고 '직시'하십시오.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남의 생각으로 살지 말고 나의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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