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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사백고동친구 381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의 입술로 백번 이상 고백하는 동아리!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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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자신의 삶과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을 했지만, 끝내 병환으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 이찰수 선생님이십니다. 그가 일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남긴 한마디가 있습니다. “이다음에 독립이 되고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면 꼭 어려운 사람, 공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어느 날, 세간의 화제를 모은 어느 할머니의 기부가 있었습니다. 빌딩 청소 일을 하며 아끼고 아껴 모은 돈 5천만원. “불우이웃을 위해 써주십시오. 목표한 1억을 채우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도필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사과했습니다. 그녀가 힘들게 모은 돈을 기부하게 된 이유는 조국을 사랑하던 아버지, 이찰수 선생의 유언 때문입니다. 녹록지 않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이었지만 그녀가 끝까지 붙들었던 것은 나라를 사랑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지상명령도 이와 같이 않을까요? “세상 가운데 나의 사랑을 전파하라.”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마지막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남기신 하나님 아버지의 부탁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사명을 감당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고백하길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넉넉히 이깁니다

1981년 이색적인 등반이 이루어졌습니다. 9명의 등산객이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레이니어(Rainier)산을 등반했습니다. 일명 ‘눈산’이라고 불리는 이 산은 해발 약 4,300m의 매우 높은 산입니다. 9명 중 5명은 시각 장애인이고, 2명은 말을 못 했고, 1명은 인조 보조 다리를 한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명은 심한 뇌전증 환자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이들은 서로 책임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짐을 지며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로마서 8장 37~39절에서는 우리가 사망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떠한 높음이나 깊음이나, 또는 어떤 피조물 만나더라도 우리가 넉넉히 이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약점을 채워주고 붙들어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 크고 작은 삶의 산맥을 등반할 때,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다시 입술의 고백으로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덩케르크 기도 작전

1940년 5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34만 명이 프랑스 덩케르크(Dunkirk) 해안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34만 명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그때 영국 총리 처칠(Winston Churchill)은 3만 명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고 국왕 조지 6세(George VI)에게 기도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5월 26일, 조지 6세는 국가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국가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영국의 모든 교회가 문을 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배를 가진 영국 사람들은 각각 5월 26일 영국 해협에 도달했는데, 그 수가 861척이나 되었습니다. 이 배들을 통해 연합군 7,669명이 돌아오기 시작하여 28일에는 17,804명이 철수 하였습니다. 철수하기 시작할 그때 독일 진영에는 폭우가 쏟아져 전투기뿐만 아니라 탱크조차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 덩케르크 해안은 아주 쾌청한 날씨였으며 거칠기로 유명한 영국 해협도 잔잔하여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6월 2일과 3일에는 나머지가 철수하여 34만 명 모두 안전하게 철수하였습니다.

주님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사랑으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주십니다. 기도함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베를린장벽조차 막을 수 없었던 사랑

30년 전 오늘 서독과 동독을 나누는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장벽이 세워진 28년 동안 140여 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분열의 장소에서는 사랑의 능력이 더욱 밝게 비치는 법입니다.

장벽이 허물어지기 1년 전, 22살의 젊은 공대생이 동독을 탈출하기 위해 서독으로 가는 비밀 동굴을 팠습니다. 그렇게 요하김 루돌프(Joachim Rudolph)는 자유의 땅인 서독으로 탈출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독에서 새로운 인생을 즐기기보다, 뒤돌아서서 다시 동독을 향해 동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출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번의 침수, 한 번의 실패한 탈출 작전, 그리고 사로잡힐 수 있는 위험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베를린장벽 최대 규모의 탈출 작전에서 29명을 구출해냈습니다. 오늘 그 동굴은 ‘터널29(Tunnel 29)’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편안히 천국 보좌에 앉아 계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우리를 위해 가만히 계실 수 없었습니다. 위험, 고난,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장벽조차 그리스도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동일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이사야 52:7)” 새생명 축제를 앞두고 우리도 베를린장벽을 넘어 영혼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

지난해 9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로 귀가하던 여성 경찰관 가이거(Amber Guyger, 31세)는 집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집으로 조심히 들어간 그는 그곳에 있던 흑인 보탐 진(Botham Jean, 26세)을 총으로 쐈습니다. 자신의 집은 3층이었는데 남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4층에 잘못 내린 뒤 보탐의 집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저지른 끔찍한 실수였습니다. 경찰관 가이거에 대한 재판이 1년 동안 이어진 끝에 지난 10월 2일, 증인석에 앉아 있던 한 흑인 소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살해된 보탐의 동생 브랜트 진(Brandt Jean, 18세)이었습니다. 동생 브랜트는 눈물 머금은 눈으로 형의 원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물어본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할 것이라는 걸 알아요... 내 가족을 대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이 당신도 사랑합니다... 가장 최선은 당신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거에요... 다시 말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아무런 나쁜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동생은 판사를 보며 질문하였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그를 한 번 안아줄 수 있을까요?” 판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허락하자 울고 있던 경찰관 가이거는 브랜트를 향해 걸어 나와 증인석 앞에서 둘은 한참을 포옹하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죄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고백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사백고동 공지사항

카카오톡채널 시스템 점검으로 인해 다음주수요일(30일)까지 문자가 발송되지 않습니다.

점검일시(문자발송 불가): 26일(토) 오후 ~ 30일(수)

이점 양해말씀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예사백고동을 통하여 '예수님 사랑합니다'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참 헌신의 삶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윌리엄 캐리는 원래 제화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구두쟁이'라고 소개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온통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자네에게 심각하게 충고 할 말이 있네. 자네는 분명히 사업가일세. 그런데 복음을 전하느라 본업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윌리엄 캐리는 친구를 바라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가 나를 잘 모르는군. 나는 지금 본업에 열중하고 있다네. 내 본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일세. 구두를 만드는 일은 단지 복음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라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윌리엄 캐리의 얘기를 들으면, "그거야 윌리엄 케리니까 그렇지!"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즉 윌리엄 캐리는 선교사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그의 본업이 될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날도 목사나 전도사 혹은 전임 사역자로 헌신한 사람들의 직분만을 가리켜 복음을 위한 본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하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직업과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통해서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설사 "예수 믿으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성실하게 산다면, 그 자체가 복음의 빛을 비추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미국의 조안 C. 존스라는 간호사가 쓴 글이 있습니다.
『간호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강의 대신 간단한 문제가 수록된 시험지를 돌렸다. 수업을 착실하게 들었던 나로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항에서 막혔다.
"우리 학교를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것이 시험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 난 이 아주머니를 여러 번 봤었다. 검정 머리에 키가 크고 나이는 오십대쯤 보였는데 이름은 뭐지? 난 마지막 문제의 답을 공란으로 두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모두 답안지를 제출하고 난 후 한 학생이 마지막 문항도 점수에 반영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간호사로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와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여러분은 항상 이들에게 미소를 보내야 하고, 먼저 미소를 보내야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야 합니다."
지금도 난 그 강의를 절대 잊지 않고 있다. 청소 아주머니의 이름이 도로시였다는 것도...』

간호사가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간호사의 따뜻한 미소와 친절이 복음의 메시지가 되어 환자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행위 자체로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목사가 되어야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사가 되고 전임사역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에서나 받은 무슨 일에서나 그리스도인답게 살면 그가 그리스도를 위한 전임 사역자입니다.

- 이상영 목사 칼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中 -

내가 있는 그 곳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갑시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열심보다 중요한 순종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

일을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열심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열심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할 때 우리의 열심은, 예수님의 의를 드러내기보다 도리어 자기 의와 공로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2).

많은 성도가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예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면서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교제는 소홀히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다의 열심을 통해 드러난 것은 오히려 강한 자아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동생을 향해 불평하고 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아의 특성입니다.

사도행전 6장 1~6절을 보면 교인들이 교회 일을 하면서 시험에 드는, '자아의 문제'가 드러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구제하는 일로 시험에 빠졌습니다. 구제의 문제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구제하는 일, 봉사하는 일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일에만 얽매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자 구제와 봉사는 곧 시험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큰 공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통해 초대교회는 더 강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과 동행하면서 일하는 것임을 깨닫고 오히려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주님과 만나는 시간을 소홀히 하면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공부 모임을 열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끈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큰 영적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웬일인지 마음이 점점 식어가고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식었고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목사는 그 성도에게 "잃어버린 뜨거움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목사는 "성도님이 어떻게 회심했는지 내게 말해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주 예수께서 생명과 평안을 주실 것을 믿고 십자가만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주님은 제게 구원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님은 '구원'에 대해서는 예수님을 의지하였으면서 '사랑'에 대해서는 왜 똑같이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성도님의 마음이 아무리 차가워졌다 할지라도 억지로 애쓰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십자가만 붙잡으십시오. '주님은 내가 지금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 다 아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능력이고 소망이십니다. '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주님께서 영적 메마름과 미움에서 변호시켜주실 것을 어린아이처럼 믿고 기다리십시오. 이렇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길입니다."

-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 中, 유기성 -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과 동행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인도함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명심합시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오래 전, 교외선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젊은 대학생 둘이 소주병을 앞에 놓고 시국 토론을 벌이다가 언성이 높아져서 그만 차안이 시끄러워졌더랍니다. 다른 승객들이 짜증스러워 했지만, 혹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건장한 장교 한사람이 나서서 타이르더랍니다. "여보시오, 학생들,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한 다른 승객들을 생각해서 좀 조용히 합시다." 그러자 청년들은 예상했던 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하는 말이 "조용히 하고 안 하고는 내 자유요.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라며 대들더라는 거죠. 순간 다부지게 생긴 그 장교가 한 청년의 멱살을 잡더니 보기 좋게 따귀를 올려붙였습니다. 그가 왜 때리느냐고 거칠게 덤벼들자, 그 장교는 이같이 소리치더랍니다. "때리는 것도 내 자유다. 임마!"

해방 후에 "내 자유다. 왜 참견이야!" 이런 말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너무 억눌려 있다가 터진 거지요. 그러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압니다. 자유가 많이 보장된 나라일수록 준법정신이 더 큰 법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게 주어진 것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남이 가진 것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교통이 너무 복잡합니다. 차선을 변경하여 좌회전하려고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주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불을 번쩍이면서 빵빵거리며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야단을 하는 통에 불안하고 놀라서 차선 변경과 좌회전도 포기하고 쫓기다시피 그냥 신호등을 지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야단하며 쫓아오던 그 차가 신호등을 건너더니 2차선에서 5차선까지 그냥 냅다 붙였습니다. 뒤따르던 차들이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교통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 기사는 너무도 당당했습니다. "나는 해도 되지만 넌 안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믿음이 성숙된 믿음입니다. "내 믿음대로 한다"는 것이 자칫 다른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고, 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의 성숙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마음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결국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자유, 내가 가진 권리, 내가 가진 물질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필요합니다. 그리고 큰 믿음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믿음입니다. 이 사람이 큰 사람이요, 부요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 이상영 목사 칼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中 -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믿음이 참 된 믿음, 성숙한 믿음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시험을 이기는 기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26:41)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성도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공격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길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6장 41절에서 성도가 힘들어도 기도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성도와 교회를 공격합니다. 시험이 계속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마귀의 시험을 분별할 수 있고, 결국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죄 짓는 일과 진실한 기도는 병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그만두든지 죄짓는 일을 그만두든지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6:13)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말씀을 “깨어 있으라”(마26:38)고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것은 깨어 있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잠들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안일한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유혹과 시련이 닥칠 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기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고 쉬라”하셨는데, 이 말은 기도할 때가 지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조금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기도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무장하는 길이요, 어려움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서 “마음이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흔히 핑계로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마음은 기도하고 싶지만 육신이 약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마음과 의지가 강하게 원한다고 해도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더욱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대 형편과 여건에 따라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마귀는 계속해서 어려운 형편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성경에는 형편이 좋아서 기도한 예도 없고, 그렇게 해서 역사가 일어난 예도 없습니다. 좋지 않은 형편에 있을지라도 영적인 숨통이 열릴 때까지 끝까지 매달리면, 어느 순간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영적인 세력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 中, 유기성 -

시험에 들지 않게 날마다 기도하는 광주 사랑의 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날마다 5.5.5 기도회에 적극동참합시다. 토.특.새 기도회에 참여합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될것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기름 부으심

기름 부으심은
첫째, 치유입니다.
둘째, 능력을 부어 주는 것입니다.
셋째, 어떤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따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는
첫째, 말씀의 능력을 갖게 되며
둘째, 기도의 능력을 갖게 되며
셋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게 되며
넷째, 지혜와 분별력을 갖게 되며
다섯째, 기쁨과 찬양의 영을 갖게 됩니다.
이를 통해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거루한 리더십의 권위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름 부으심을 받으려면
첫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겸손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간절함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

기름 부으심의 기도

하나님,
여기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가슴속에 있는 모든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게 하옵소서.
말과 행동과 생각이 깨끗해지게 하옵소서.
하나니의 지혜와 능력이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가정이 복을 받고, 사업이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드리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기도, 하늘의 능력을 다운로드 하라中, 한홍 -

매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기름부으심을 받는 광주사랑의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빌리 선디 목사는 이렇게 외치며 살았습니다. "나는 죄와 싸우겠다. 발이 있는 한 죄를 차버리겠고, 주먹을 가지고 있는 한 죄를 쳐버리겠고,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받아버리겠고, 치아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물어뜯겠다. 내가 늙어서 주먹과 치아에 힘이 없어진다면 영광의 내 집에 들어갈 때까지 잇몸으로라도 죄를 이기겠다." 이 얼마나 처절한 죄와의 싸움입니까?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회개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거듭난 신자들이 또 다시 원치 않는 죄를 짓게 될까요? 거듭난 신 자속에도 자꾸 죄를 짓게 만드는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듭난 신자들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죄성을 온전히 없애주시려고 '성결의 은혜'라는 아주 복된 은혜를 예비해놓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복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은혜와 감격을 잃어버립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십자가의 감격이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의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죄를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습니다. 죄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법과 문화 역시 죄 짓지 않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들키지 않는 데 초점을 두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고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양심에 약간 거리낌이 있기는 하지만 쉽게 무시해버립니다. 증거가 있는 것만을 죄라고 역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들킨 죄보다 들키지 않은 죄가 많습니다. 얼마든지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고 사람의 눈도 속일 수도 있지만, 결코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살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제로 더러운 곳을 청소하듯, 마음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는 죄를 토설하고 자복해서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내야 합니다. 죄는 세월이 지난다고 없어지지 않으며 기억에서 잊힌다고 소멸되지도 않습니다. 봉사와 헌금을 한다고 없어지지 않으며 예배를 드린다고 사해지지도 않습니다. 선행으로 상쇄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끄럽고 힘들겠지만, 주님 앞에 자신 지은 죄를 낱낱이 자복하는 것이 죄를 씻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 앞에 눈물로 통회하며 보혈로 씻어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피해를 주었으면 보상하십시오. 그럴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철저한 회개 없이 믿느 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회개하면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이르러 영생을 얻도록, 주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직장, 재산,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 中, 유기성 -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회개 함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고 드러내는 광주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마귀는 꺾입니다.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귀의 일이 멸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실제로 증명되는 사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도는 철도 레일과 같습니다. 기관차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레일이 깔린 곳에서만 달릴 수 있는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성도의 기도가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기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기도가 적은 교회는 침체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는 영적으로 충만하고 기도가 없는 성도는 메마른 삶을 삽니다. 기도가 충분한 일은 열매가 많고 기도가 충분하지 못한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9장 19절에는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이것은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쇠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들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한 유명 아나운서가 중매로 의사 청년을 만났습니다. 다른 조건은 다 좋은데 교회 다니지 않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조건으로 교회 나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남자는 결혼을 맹세하기 위해 교회에 나가겠다며 혈서를 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나운서는 교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것이 결혼조건이어야 했음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정말 교회만 나오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만 가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남편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에 같이 가기만 하면 가정에 평화가 올 줄 알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이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미웠어요. 자고 있는 모습까지 미웠으니까요." 그렇게 남편을 미워하던 그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았구나! 그 후 바쁜 일정 중에도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일대일 양육도 받았습니다. 양육자와 삶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까. 기도는 기적의 순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때려주고 싶을 만큼 미웠던 남편이 갑자기 잘생겨 보이는 것입니다.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서 특유의 명랑함이 살아나자 남편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마음도 점차 신앙으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좋은 것이구나하고 처음 느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을 분별하고 이깁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더라도 기도실에 들어가면 승리의 기쁨을 얻고 나옵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양의 싸움은 사실상 모두 영적 전쟁이며 기도의 싸움입니다.

예레미야 33장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의 네 단계가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단계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기도하도록 감동을 주시는 단계입니다.
셋째, 성도가 순종하여 실제로 기도하는 단계입니다.
넷째,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합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 中 기도와 영적 전쟁, 유기성 -

기도는 영적전쟁입니다. 날마다 기도로 승리하는 광주사랑의교회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붙잡으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27:8)

한 어린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도 보고, 호랑이도 구경했습니다. 빵과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습니다. 그런데 구경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빠의 손을 놓고서 혼자 뛰어다니면서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재미있게 구경을 하다가 보니 자기가 아빠의 손을 놓친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빠의 손을 놓치고 혼자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먹는 것도 맛이 없고, 구경도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왜 아이가 아빠의 손에 잡혀 있을 때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해 안달을 해야만 할까요? 결코 아빠의 손이 아이를 즐겁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손을 빼려 하고,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혼자가 되었을 때에야 아빠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친 마당에 먹고 마시고 구경하는 모든 것이 인생에게 참된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세상의 좋은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과, 내가 예측하지 못한 문제들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손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날 인생들이 모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한일은 홀로 있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손에 가족도 재산도 얍복강 너머로 다 보내 버리고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의 곁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보내고 혼자 남고 보니, 하나님이 보입니다.
인생은 세상과 물질을 붙잡고 있느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러나 한 때 그것이 즐거움인줄 알았고, 그것으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알았었지만, 어느 순간에 홀로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될 때를 만납니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대로고, 세상도 그대로이건만 외로움과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홀로 있게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홀로 있을 때 고독 속에서 절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이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인 인간이 외톨이로, 단독자로 홀로 서는 실존의 결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세우셨을 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잔뜩 쥐고 있는 손이 비게 만드시고,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만큼 눈앞에 잔뜩 쌓인 것들이 없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모실 수 없을 만큼 세상의 것으로 가득 담겨 있던 마음을 비우시기도 하십니다.
바로 이 때가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손을 내어 미신 것입니다. 없어져 버린 것들만 보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내 손을 내어 밀어 하나님께 맡겨야 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 이상영 목사 칼럼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붙잡으라中' -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나를 만족시킬만한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승리하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민족 복음화의 꿈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내 조국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직공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각급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 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의가 모일 때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게 하시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외 되게 하옵소서

- 민족 복음화의 꿈/ 김준곤 목사 -

주일 선포된 말씀과 같이 지금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5.5.5 기도회를 통하여 이 나라와 민족과 우리 교회를 위해 힘써 기도합시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일보다 우선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어느 날 한사람이 산에서 열심히 톱으로 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근처를 지나던 다른 사람이 보니, 온 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를 썰고 있었지만 잘 베어지지가 않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톱이 녹이 쓸었고, 무디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오? 나무를 자르고 있지 않소." "잘 되십니까?" "글쎄, 빌어먹을 잘 안되고 있소." "제 생각에는 잠깐 일을 멈추고 톱을 갈아서 다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제정신이요? 하루 종일 나무를 자르는데도 아직 반도 못 잘랐는데, 톱을 갈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리고는 그 나무꾼은 계속 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당장 톱을 가는 것이 시간 낭비일지 모르겠지만, 톱을 가는 사람이 녹슨 톱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집에 빨리 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도 부지런히 일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이 있습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일이나 운동선수가 땀 흘려 연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욕심만 부렸지 먼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당장 열매가 없다고 답답해하면서 먼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무를 베기 위해 톱 가는 일을 게을리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 입니다. 너무 일이 많아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나 바빠서 기도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가 한 말은 우리에게 강한 도전을 줍니다. "아, 요즈음은 너무 바쁘고 일이 많구나. 그러므로 기도 시간을 더 늘려야만 하겠구나!"

....

아무리 바빠도 기도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일이 분초를 다투는 전쟁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일이 없을 때 일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다가 기도의 응답으로 일이 많아졌을 때, 이제 바쁘다고 기도를 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나무꾼은 톱 가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 이상영 목사 칼럼 '일보다 우선하는 것中' -

아무리 바빠도 성도라면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5.5.5 기도운동]/ 매일 5.5.5 기도운동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기적의 일상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매일 5분 동안 주기도문의 뜻을 생각하며 (마6:9~15)
- 나 자신, 가족, 교회, 직장, 나라등 5가지를
- 5가지 기도제목에 대입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함, 일용할 양식을 구함, 용서를 구함,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구함)

기도로 승리하는 광주사랑의교회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중보기도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사59:15~16)

이사야서의 이 본문은, 하나님이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실이 없어서 악을 떠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을 당하는 도시를 위한 중재자, 즉 중보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과 그 도시 사이에서 중보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겔22:30)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신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22장 30절을 읽은 다음에 스웨덴의 유명한 중보기도자 옐(Tjel)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까? 당신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까?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멸하지 못하게 할 그 사람을 찾노라 하실 때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까?" 그때에 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나는 하나님께서 이 일에 나를 쓰시도로 , 중보기도자의 삶을 살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질문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때답할 것입니까? 누군가 "당신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까?"라고 물을 때, "예, 저는 저의 책임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중보기도자의 삶을 살기로 주님 앞에 저를 드립니다."라고 대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여러 사람 앞에 서서 그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골방에 들어가서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하며 중보기도하는 사람은 더욱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중보기도자입니다. 사실, 중보기도는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별로 인기 있는 사역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별로 호응받지 못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역은 중보기도의 사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골방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기도함으로 상급을 하늘에 쌓아 둡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전혀 예상 밖의 사람들이 상을 받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이 그 이유를 설명하시기를, "이 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족속에게 복음이 들어갔고, 이 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선교사들을 보낼 수 있었고, 이 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족속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사람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한 나라 또는 한 족속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사람은 중보기도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기만을 원합니다. 하나님과 단 둘이 만나는 골방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中, 홍성건 -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사랑채플 신축을 위하여, 다음세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자가 됩시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일하는 사람과 예배하는 사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영역에서 섬기기 원하십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부르신 가장 큰 목적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또한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두 번째, 성도를 섬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성도가 서로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가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고 사랑하며,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두 번째 목적입니다.

세 번째, 세상을 섬기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섬기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섬길 때, 세상은 우리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때에 우리 안에 있는 소금이 제 맛을 내며 빛은 어두움을 물리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을 섬기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세 번째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다음으로 성도를 섬기며, 그러고 나서 세상을 섬기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의 순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가장 먼저 성도와 세상을 섬기라고 부르시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예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 앞에서 머물며 예배하는 삶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성도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사람은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일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과도 같습니다. 직장과 학교, 교회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찾으시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여러 가지 영역에서 봉사하거나 세상에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도 참으로 귀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임재하심 가운데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명백하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보다 예배하는 사람을 먼저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부터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와 사귐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온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셔서 자신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이 세상을 다스리기에 앞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中, 홍성건 -

일이 너무 힘들어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3:17~19)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고 환경이 과거보다 더 좋아졌음에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이 갖는 최고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들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한 때 이명복 박사의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라는 책이 발간되면서 시작된 사상의학은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습니다. 즉 음식을 먹어도 체질 따라 먹어야 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을 골라서 잘 섭취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이론이 통계적으로 나온 것이기에 일리가 있고, 또 참고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체질입니까? 체질을 진단해 주는 곳에 가서 검사를 해 본 결과, 소양인, 소음인, 태양인, 태음인 중에 어떤 체질이며...또는 팔상을 진단하여 알고, 그에 따른 음식을 섭취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확실한 체질론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체질론 보다 더 정확한 진단은 없습니다. 인간의 건강은 분명히 먹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음으로 육체에 고장이 생기게 되었고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먹는 일에 실패한 아담에게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이라고 하셨고,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것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짓기 전의 아담은 무엇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짓고 난 후의 모든 인생은 먹는 것에 조건이 붙게 된 것입니다. "수고하여야!" 그리고 "얼굴에 땀이 흘려야"라는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수고와 땀을 통해서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고하지 않고 먹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 먹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출세한 자의 특권이요, 행복한 사람의 조건으로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간은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이라고...
그런데 땀 흘리지 않고 먹게 되니 문제가 생기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원리이기에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다못해 운동이라도 해서 땀을 흘려야 건강이 유지되는 것이지요. 땀 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으려 하는 것, 결코 공짜일 수 없습니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결코 축복도 아니고, 출세도 아닙니다. 인간은 수고하고 땀 흘린 후에 먹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하신 것입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요!" 하는 당신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입니다.

- 이상영 목사 칼럼 '어린이 마음에 새겨지는 그림 中' -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말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고후2:7).

건강보험심사원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96%가 우울증 문제로 진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 실제 진단을 받은 경우는 2%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매년 약 60만 명의 우울증 환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겉으로는 증세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절망의 독약'이라고 불릴 정도로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다음은 존스홉킨스 의대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아담 캐플린 박사가 조언하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6가지 말과 행동'입니다.

1. 곁에 있어주기.
2.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기.
3.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주기.
4. 병원이나 약국에 같이 가주기.
5.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기.
6.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먼저 물어보기.

주님 외에는 나의 마음을 100% 아는 사람이 없듯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어떤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배려의 첫걸음입니다.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먼저 내밀며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멘!!

-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내 주변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배려로 다가갑시다.
주님!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는 배려와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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