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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스 미니스트리는 컴파스칼럼을 통해 사랑하고 제자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를 추구하는 기독교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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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장자권

bible 42 (창세기 48:1-49:33)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늙고 병들어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이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장자권 축복을 해줌으로써 구속사의 주역이였던 야곱의 험난한 시대가 마감되지만, 요셉이 다시 장자권을 이으면서 구원의 역사가 단절됨 없이 이어져감을 보게 된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장자권 상속은 이삭이나 야곱의 경우처럼 누구는 구속사의 반열에 서고 누구는 탈락하느냐는 관점이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 모두가 구속사의 일원으로 참여하되 구속 역사의 실현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구체적으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즉 자신의 손자들을 자기 열 한 아들과 항렬을 같게 조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요셉에게 두 배의 몫이 돌아가도록 조정했다.

이처럼 언약 가문 내에서 구속사적 축복을 행하면서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아우를 형보다 더 축복한 점, 그리고 당장은 정복의 가능성조차 없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미 다 정복한 것처럼 확신하고 분배해준 장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야말로 인간의 상식적 수준을 넘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야곱이 임종에 직면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앞으로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남긴 예언이 그 후 실제 이루어졌음을 보면서 구속사는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전개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가운데 유대에 대한 예언(창 49:8-12)에 특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는 1차적으로는 향후 다윗 등을 통한 유다지파가 왕권을 공고히 함으로써 이루어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한 왕권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야곱의 육적 장자권은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계승했으나 영적 장자권은 넷째 아들 유다가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대상 5:1-5)

마지막으로 야곱이 자신을 약속에 땅에 매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 것은 구속사의 한 세대 족장으로서 그가 비록 몸은 애굽에 있으나 그 영혼은 언제나 약속의 땅을 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진정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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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가문의 애굽 정착

bible 41(창세기47:1-31)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성공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창47:27)

드디어 야곱의 온 가족과 가축들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의 고센 땅에 도착하자 바로가 언약가문의 최고 어른인 야곱을 만나 그들의 애굽 이주를 인정한다.

성경이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 노예가 아니라 애굽의 국빈자격으로 이주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당시 극심한 가뭄 속에서 애굽의 번영을 위해 요셉이 총리로써 펼친 눈부신 치세에 대한 기록도 그 기본 취지는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요셉의 개인적 관점에서 보자면 본장의 내용은 하나님의 선한 종인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어 행한 치세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단지 노예가 아니라 애굽의 공신인 요셉의 후예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장 말미에 나오는 대로 야곱이 이 땅에서의 수명을 다하고 약속의 땅에 묻게 하라는 그의 유언도 결국 그들은 원래부터 애굽에 속한 자가 아니라 약속의 땅 사람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즉 구속사의 주역으로 선택된 언약백성들이 거할 땅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언약의 후손에게 주시기로 약속했던(창 15:9-21) 가나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원래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온 것은 기근 가운데에서도 생명을 보존함은 물론 그들로 하여금 주변 세력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성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강성해진 후 그들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이끄시려는 구속사적 신앙이 그 배경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장의 내용을 통해 택함 받은 우리 성도의 본향이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천국임을 깨닫고 그날을 위해 이 땅에서도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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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가문의 애굽 이주

bible 40(창46:1-34)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니라 (창46:3)

드디어 야곱 가문이 애굽으로의 이주길에 오르게 됩니다. 본문에는 애굽으로 이주한 70명의 명단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것은 400년 후의 출애굽 세대에게 자신들은 모두 이주민의 후손으로서 원래 고향이 당시 살고 있었던 애굽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 있음을 확인 시켜주는 역사적 증거가 됩니다.

이들이 애굽 땅에 도착하자 야곱은 유다를 먼저 요셉에게 보내 가족들을 고센 땅으로 인도하게 하는데 이는 유다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두 번째로 애굽을 방문했을 때 당시 위기에 처한 동생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자처했던 그 행동으로 인해 야곱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음은 물론 가족 전체의 대표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훗날 유다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왕권과 메시아가 나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또한 이들이 애굽 본토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고센 땅에 거주하게 된 데도 상당한 이유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우상 문화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애굽 이주의 주요 목적이었던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센 땅은 나일강 하류에 위치해 있어서 풍부한 목초지로 인해 목축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고센 땅은 애굽의 국경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매우 편리하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이 같은 제반 상황을 종합해서 요셉이 그의 가족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키려 했던 점을 보면서 요셉은 가나안 복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도 400년 후에 일어날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야곱가족이 고센 땅에 정착해서 애굽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일시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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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화해

bible 39(창45:1-2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8)

요셉은 자신의 계시적인 꿈과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인해 형제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는 애굽으로 팔려와 노예로 살아왔던 쓰라린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드디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던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시험이 끝나면서 형제들 간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야곱도 애굽으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택함 받은 언약가문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오던 구속사의 물결이 더 넓은 세계인 애굽으로 흘러들어 다시 한번 소용돌이치면서 큰 힘을 결집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언약 가문의 형제들 사이에 진정한 재회가 이루어진 것처럼 죄인인 인간과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도 먼저 죄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과거의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 자신을 통해 이루어져 가는 구속사의 섭리를 깨닫고 이를 형제들에게로 확산시키는 요셉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참된 신앙인의 전형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하고 본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요셉을 통한 언약 가문의 애굽으로의 이주는 우연히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이미 예언된 구속사적 계획의 성취임을 보면서 다시 한번 구원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는 영광스러운 출애굽 사건에 이르게 되면 이 땅에서 이어저가는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역사의 물결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한 점의 어긋남도 없이 흐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역사다. 이 역사의 흐름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저 가고있다.

이러한 구속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택한 자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전개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그래서 이 땅에서 전개되는 역사(h:story)란 H:s story 즉, 하나님의 이야기임을 굳게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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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시험

bible 38(창43:1-44:34)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창 44:33)

가나안땅에 기근이 극심해지자 야곱의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고 거기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있는 아우,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형들을 시험합니다. 즉 그들이 과거 자신을 팔아넘겼던 사실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의 인격은 얼마나 성숙되어있는지를 시험한 겁니다. 이것이 1차 시험이지요.

세월이 흘러 가져간 양식이 다 떨어지자 요셉의 형들은 다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들을 다시 시험하게 되지요, 즉 가장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의 자루 속에 요셉이 아껴 쓰던 은잔을 넣어 그를 도적으로 지명하면서 그의 책임을 물은 겁니다.

이것이 형들에게 부과된 2차 시험이었지요. 즉 요셉은 이 시험을 통해 과거 시기와 질투로 자신을 팔아넘겼던 그 형들이 지금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동생 베냐민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형제들의 대표격인 유다가 나서면서 과거 이기적이고 사악했던 형제들과는 달리 보다 변화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즉 위의 요절대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요셉의 종이 되겠다면서 다른 동생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청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변화된 모습을 통해 형제간의 진정한 재회가 이루어지면서 구속사의 대 사건인 언약가문의 애굽으로의 이주가 실현되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택한 자들의 구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대상인 성도들을 철저하게 연단하십니다. 물론 그 연단이 당시에는 큰 고통이지만 그 연단의 결과 우리는 영원한 삶에 이르게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동생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원하여 중보자의 위치에서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간청하는 유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탄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유다의 혈통을 선택하셔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통로로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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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을 만난 요셉

bible 37(창42:1-38)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42:21)

가나안 땅에서 극심한 기근이 시작되자 야곱의 열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 야곱의 명을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드디어 애굽에 도착한 그들이 이미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같은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자신의 형들인 줄을 알면서도 정탐꾼으로 몰아세우는 요셉 앞에서, 그들은 20년 전 동생을 팔아버린 행위에 대해 본문처럼 뉘우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현재 당하고 있는 괴로움을 인과응보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형들의 모습이 너무나 새롭습니다.

사실 과거 요셉을 팔아넘길 당시의 그들은 시기와 질투, 애증과 갈등으로 가득 찼던 살벌한 심성의 소유자들이었지요. 그래서 쉽게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팔려온 요셉을 시련의 과정을 거처 애굽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그리고는 그의 형들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계기로 과거 아브람에게 주셨던 예언, 즉 아브람의 자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시키신 것이었지요. (창15:13-16)

이처럼 형제사이의 단순한 갈등이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놀라운 축복의 계기가 되었음을 깨닫고 있었던 요셉은 이미 형들을 마음으로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셉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전체가 잘 살수 있다는 진리를 형들이 깨닫을 수 있도록 그들을 계속 시험했던 것이었지요. 그런 형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애끓는 형제의 정으로 눈물을 흘렸던 요셉,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사의 흐름을 바로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처신했던 요셉처럼 오늘날 구속사의 주인이 된 성도들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아 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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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사람, 요셉

Bible 36(창 40:1-41:57)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창 40:8)

요셉은 꿈의 사람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의 삶은 꿈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단을 향해 절을 했다”는 꿈을 통해 그의 장래에 대한 계시를 받은 바 있습니다. (창 37:5-9)

결국 그 꿈을 계기로 형들의 질시를 받아 애굽에 팔려오게된 그는 또다른 모함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그곳에서 만난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줌으로써 애굽왕 바로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거기서 또다시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그는 그 공로로 애굽의 총리 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일개 노예로 팔려온 자가 한 나라의 총리가 된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셉이 해석해준 바로왕의 꿈대로 역사는 7년간의 풍년에 이어 7년간의 대기근을 가져다줍니다.

그러자 부족한 양식을 구하러 애굽땅을 찾은 요셉의 형들이 우여곡절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된 동생 요셉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극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요셉의 역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기근을 피해 야곱을 위시한 70여명의 전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들은 거기서 400여년을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되고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에 의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요셉과 야곱가족의 단순한 가족사를 뛰어넘는 이야기입니다. 즉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래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계속 이어저 내려왔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하나님은 요셉과 두 관원장과 바로의 꿈을 그 위대한 구속사의 도구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도구로 사용받는 것을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대로 꿈의 모든 해석권을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처럼 오랜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하나님의 구원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어떤 도구로 쓰임받고 있습니까?
그 삶을 가장 고귀한 인생의 가치로 여기시는지요?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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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bible 35(창39:1-2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성경에서 우리는 요셉이라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로써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자였는데 그가 형들의 모함을 받아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지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온 귀한 아들이 하루아침에 애굽 사람의 노예라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신세를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면서 보디발가정의 총무로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셔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집주인 보디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삶이 말로서가 아니라 열매로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형통한 자”란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에 관여하셔서 그 삶이 번성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요셉의 형통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주인 보디발에게도 충성했던 삶의 결과였지요.

이렇게 요셉이 성실하게 일하자 주인 보디발은 그를 믿고 자기 가정의 총무로서 모든 재산을 다 관리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요셉을 위해 보디발의 집에 큰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 요셉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도 복을 받게 되었던 사실을 통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혹시 노예로 팔려간 요셉보다 더 극심한 고통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래서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울부짖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지나 않았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요셉의 삶의 신비를 배웠으며 합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삶이 한때는 고통이었지만 그를 통해 요셉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400여 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백성의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증인의 삶으로 쓰임 받은 겁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뤄 가시는데 필요한 통로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요셉처럼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된 사람에게도 충성해야 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 결과는 영육 간의 형통한 삶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 은혜가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소망합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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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대 결혼 법

bible34 (창 38:1-30)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창38:8)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좀 이해하기 힘든 계대 결혼이라는 풍습이 고대 중근동 문화권에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계대 결혼이란 죽은 형제에게 자손이 없는 경우 그 대를 이어주기 위해 죽은 자의 남은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해서 자손을 얻는 제도입니다. 그때 태어난 아이는 법적으로 죽은 형제의 자손이 되어 그의 가문과 기업 등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게 됩니다.

좀 특이해 보이는 이 결혼제도는 죽은 형제의 가업을 계승하게 해주고 이스라엘 여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방지함은 물론 자녀도 없이 불쌍하게 된 미망인을 보호해주는 제도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결국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창대케 하리니"(창12:2)라는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는 구속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혈통인 다윗의 계열이 보아스와 룻의 계대 결혼에 의해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룻4:10,마1:1-17)

그런데 본문의 계대 결혼이 거론된 계기는 야곱의 실제적 장자인 유다가 자신의 며느리인 다말과 불륜을 저지르게 된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이스라엘의 혈통을 지켰던 자기 조상들과는 달리 가나안 여인과 결혼해서 세 아들을 두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자 엘이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미망인이 된 형수 다말과의 결혼을 명합니다. 그러나 그도 죽은 형 이름의 아들을 두게 하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에 쏟아내는 불순종의 행위 때문에 죽게 되자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도 잃을까 염려하면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버립니다.

세월이 흘러 셋째 셀라가 장성한 후에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는 유다를 보면서 결국 며느리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유인해서 불륜을 통해 유다의 쌍둥이 아들까지 출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혈통이 너무나도 부끄러운 불륜의 혈통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4명의 여인인 다말과 라합, 룻과 바세바가 각각 근친 상간자, 기생, 이방 여인, 그리고 간통자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주님이 죄인인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혈통 가운데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처럼 죄악에 휩싸인 분이 아니십니다. 죄와는 관계없는 순결하신 분으로써 이 세상 모든 죄인들의 죄를 속죄하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더러워진 세상밖에 고고히 거하시면서 의인들만 불러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죄악의 세상 속으로 직접 들어오셔서 죄인을 이끌어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님의 그 희생적인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언약의 후계자인 야곱의 아들 유다가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한 행위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야곱의 후손들이 계속 가나안에서 살았다면 우상숭배자인 가나안 족속과의 혼혈이 이루어져 택한 백성으로서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의 이주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한 필연적 사건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여러 사건들 속에서도 구원을 위한 지칠 줄 모르시는 하나님의 열정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사랑의 고백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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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꿈

bible33 (창 37:1-36)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묵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37:7)

참으로 황당한 꿈 이야기입니다. 형들이 모두 자기에게 절하더라는 꿈 이야기를 들을 때 그렇게 말하는 요셉을 향해 분노하지 않을 형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에 더해서 이 같은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가 요셉을 미워하는 형들의 마음에 부채질을 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결국 야곱이 세겜 땅에서 양을 치는 형들에게 요셉을 심부름 보낸 것을 계기로 요셉은 미디안 상인들에 의해 애굽 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동기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평소 형제들의 잘못에 대한 요셉의 고자질과 야곱의 편애이고 다른 하나는 요셉이 꾼 꿈에 대한 형들의 시기 때문입니다. 즉 장차 요셉이 야곱 가문의 머리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그의 꿈이 평소 그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형들의 미움과 시기심에 불을 붙이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면적 동기에 불과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내면적 동기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는 점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 노예생활과 가나안 복귀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먼저 야곱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요셉의 애굽행이 바로 그 첫 단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일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 형들의 악한 뜻을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그러나 사실 인간의 악한 뜻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섭리로 선용하신 가장 큰 실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시기와 질투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인류구속의 역사를 성취 시키는데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어떤 교훈과 책망을 받습니까? 무엇보다도 부모는 편애를 버리고 자식들에게 공평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신21:15-17) 또한 요셉이 꾼 꿈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는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더욱 겸손해야겠다는 교훈도 받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구속사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에 깊숙이 개입하시고 섭리하심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 요셉처럼 오늘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한 귀중한 통로라는 사실을 감사와 기쁨과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면서 선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 삶의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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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bible32 (창 35:1-29)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창35:3)

밧단 아람에서의 20년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야곱이 옛날 가나안을 떠날 때 드렸던 벧엘 서원을 잊은 채 지내다가 딸 디나가 추행을 당하는 사건을 맞게 됩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복수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족속을 살육하는 처참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같은 비극적 사건의 이면에는 야곱으로 하여금 언약의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들어있었습니다. 즉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야곱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란으로 도피하던 과정에서 하나님과 맺었던 벧엘 서원(창20:20-22)을 지키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다시 벧엘로 올라가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먼저 가족들이 소유한 이방 신상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정결케 했으며 의복도 바꾸어 입고 외모도 정결케 했습니다. 즉 가족들이 영육 간에 완전한 정결을 유지해서 벧엘 제단으로 나아가는데 거리낌이 없게 했는데 그 같은 행동 속에는 벧엘로 향하는 야곱의 회개와 믿음의 결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온 가족들이 벧엘에 도착하자 야곱은 오래전의 서원대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사실 벧엘은 야곱이 가장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올려드렸던 서원의 장소였습니다. 또한 가장 외로웠을 때 뜨겁게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의 손길을 체험했던 은혜의 장소로서 하나님의 따뜻한 품과 같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 정열을 다 쏟으며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늘 허무함뿐임을 깨달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눅 15:12-16)

벧엘을 떠나 살았던 야곱의 생애가 바로 이 같은 삶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부유함과 영화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늘 실패와 치욕이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의 품인 벧엘로 돌아오자 비로소 야곱은 참된 평안과 번영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먼저 세상에서 방황하며 지칠 때마다 낙심하기에 앞서 꼭 하나님을 기억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세속적이고 비 신앙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비로소 참된 평안과 변영이라는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죄를 회개했던 그곳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매몰찬 파도에 흔들리면서 어머니의 품 같은 그 벧엘을 잊고 살지나 않으셨는지요.

그렇다면 이제 다시 벧엘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웃으시며 내미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과거 야곱에게 주어졌던 그 뜨거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도 분명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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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 대학살 사건

bible31 (창 34:1-31)
제 삼일에 미처 그들이 고통 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습격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고 (창34:25)

얍복 강가에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살길을 열어주셨지만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살만해지자 야곱은 과거 가나안을 떠날 때 드렸던 벧엘 서원 (28:20~22)을 잊은 채 계속 세겜에 머무르는 영적인 나태함을 보여줍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습니까? 급할 때는 매달리다가도 삶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나태해집니다. 이때 하나님은 고난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지요.

즉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추장인 세겜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자 디나를 사랑했던 세겜 부자가 야곱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해옵니다. 그러나 불타는 증오심과 함께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야곱의 아들들은 살의를 숨긴 채 혼인 조건으로 세겜성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요청합니다. 그들에게 복수할 계락을 세운 것입니다.

세겜 부자의 요청과 설득에 의해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시행합니다. 사실 할례의식 자체는 당시 고대 근동지역의 보편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양가의 결혼 후 야곱 집안과의 결연을 통해 그들의 경제력을 흡수해서 부족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세겜 족속의 계산도 한몫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3일후 할례 받은 자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급습해서 칼로 성안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여인과 자녀들을 사로잡고 모든 가축들을 탈취하는 약탈이 자행됩니다. 참으로 무서운 보복입니다.

왜 이 같은 참상이 저질러졌습니까? 거짓말쟁이 야곱이 새사람인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지만 세겜에 안주하면서 구속사의 주역으로 부름 받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육적 안일함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딸 디나는 세상에 호기심을 지닌 채 스스로를 범죄에 노출시키는 무절제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야곱의 아들들은 거룩한 할례의식을 자신들의 추악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사실 세겜의 과실에 비하면 그들의 보복의 정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아무리 동생의 수치를 갚고 언약 가문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비신앙적이고 비윤리적인 악행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후일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저주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사건의 도화선이 된 분노와 혈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분노와 혈기는 가증스러운 거짓을 낳습니다. (13~17절) 증오와 살인을 낳습니다. (25~29절) 그리고 또 다른 보복의 위험성을 낳습니다.(30절) 그래서 분노와 혈기는 성도들을 쉽게 넘어뜨릴 때 사용되는 사탄의 무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분노와 혈기가 없습니까? 이 때문에 큰 위험에 빠졌던 적이 있지나 않았는지요? 말씀과 기도의 생활에서 떠나면 누구든지 이 같은 분노의 함정에 빠진 채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귀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추악한 인간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변함없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 사건을 통해 영적으로 침체되었던 야곱을 각성시켜 구속사의 주역으로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 자신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로 야곱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구속사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택하신 자들은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의 매를 드셔서라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우리 모두 눈물로 감사드립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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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컴파스회원님들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야곱의 얍복강 씨름사건

bible30 (창 32:1-33:20)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그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5~28)

야곱이 온 가족과 수많은 가축떼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그는 과거 형 에서에게 행한 잘못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더욱이나 화친을 위해 에서에게 보냈던 사람들로부터 에서가 4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인간적인 도피 계획까지 세웁니다.

이처럼 야곱이 에서를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위로하시면서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창28:15)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은 그때까지도 삶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야곱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아들들과 모든 소유를 먼저 보내고 얍복 강가에 홀로 앉은 그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십니다. 즉 야곱의 생사를 건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믿음과 함께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겠다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날 어떤 사람과 생사를 건 씨름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씨름이란 단순한 육체적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마치 씨름하듯 밤새 매달리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야곱의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기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후에 야곱은 함께 씨름했던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30절) 씨름 중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도움을 호소하는 야곱의 필사적인 간구를 뿌리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는 몸의 중심 부분이며 힘과 생명을 상징하는 야곱의 환도뼈를 처서 부러뜨립니다.

즉 그때까지 자신의 힘과 머리만 믿고 살아온 야곱을 꺾으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일깨워 주시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해주심으로 자기중심적인 야곱이 하나님 중심의 새사람인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입니다.

야곱으로 하여금 이 같은 은혜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형 에서와 화해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인도하십니다. 걱정했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얍복 강가의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듯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어 본 적이 있습니까? 조용한 산속이라든지 아니면 황량한 겨울바다 앞에 서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창조주이시며 인생의 모든 문제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매달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해답을 주시고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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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귀향

bible29 (창 31:1-5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창 31:26)

20여 년을 외삼촌 라반을 섬긴 결과 야곱의 재산이 늘어나자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싹트게 되었는데 이것이 야곱으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귀환의 궁극적인 원인은 때가 되어 고향으로의 귀환을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3절)

그러므로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게 된 것도 때가 되면 야곱 일행을 귀향 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면밀하신 구속사의 진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삶은 사건마다 다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신비스럽습니까?

야곱의 가나안으로의 귀향은 그의 조부인 아브라함이 고향인 하란을 떠났던 사건(창 12:1)과 맥을 같이하는데 이는 후일 출애굽 사건의 예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귀향 명령을 받은 야곱이(3절) 벧엘 서원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떳떳한 태도를 보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두려워하면서 몰래 라반으로부터 도망치는 듯한 비겁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나안으로의 귀환은 한 가정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단순한 이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구속사의 일환이지만 야곱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훗날 얍복 강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야곱에게 주시는데 이것은 “속이는 자” “나약한 도망자”였던 야곱이 “승리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방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한편 라헬이 훔쳐서 가지고 나왔던 가정 수호신인 드라빔 사건은 결국 이스라엘에 우상숭배의 잔재를 남기게 됩니다. 당시 사회에서 이 드라빔의 소유자는 재산상속에 대한 합법적 자격을 갖고 있었기에 라헬은 목숨을 걸고 훔쳐 나왔고, 라반은 그것을 되찾기 위해 7일 길을 추격해 왔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속에서 죄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죄의 올무에 사로 잡혀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해 줍니다.(벧후 2:18-19) 그러므로 성도는 죄의 모든 요소를 버림은 물론 죄의 모양도 취하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살전 5:22)

한편 야곱의 일행을 뒤쫓던 라반에게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경고하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오늘도 택하신 백성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 자상하심 앞에 무릎 꿇고 감사드릴 뿐입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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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믿음

bible 28(창30:1-24)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창30:32)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라헬을 아내로 맞기까지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무료로 봉사한 야곱이 고향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라반은 그를 만류하기 위해 야곱에게 품삯을 지불하겠다고 역제안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계약의 내용이 좀 특이합니다. 즉 야곱이 맡아 돌보는 라반의 양떼나 염소떼 중 앞으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태어날 경우 그들 양과 염소는 모두 야곱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양의 정상적인 양의 털 색깔은 흰색이고 염소는 검은색입니다.

그리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단색 동물의 경우 점박이는 유전법칙상 열성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의 출산 확률은 매우 희박한 것이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이 같은 제안을 한 이유는 욕심 많은 라반을 순순히 계약 조건에 응하게 하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 방법이 비록 출산 성공의 가능성이 적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시는 것만을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는 야곱의 믿음의 발로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계약을 맺은 야곱은 점박이와 아롱이를 얻기 위해서 당시 유행하던 가축의 수태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맺은 계약이었지만 한편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가축을 다루는 야곱의 재주가 비상했기 때문에 야곱이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리한 계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벧엘 언약 (창28:13-15)에 근거해서 야곱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야곱의 행위(창28:13-15)가 어리석은 미신적방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방법에 까지 축복하셔서 선한 열매를 거두시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후손과 재산의 번성을 축복으로 주신 이유는 택한 백성 야곱을 하란 땅 라반에게서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는 원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은 벧엘 언약에 분명히 계시된 봐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택함 받은 자들의 일생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야곱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부당한 대우 속에서 절망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랐던 야곱의 믿음에서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많은 재물을 얻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삶의 목표로 삶고 맡겨진 일을 충실히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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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결혼

bible 27(창29:1-35)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7년을 라반에게 봉사 하였더라 (창27:30)

브엘세바를 떠나 외가가 있는 하란에 도착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주하게 된 야곱은 결국 라반의 두 딸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야곱은 라반의 작은딸 라헬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조건으로 라반과 계약을 맺고 7년을 봉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큰딸 레아와 먼저 결혼하고 다시 라헬도 아내로 맞는 조건으로 7년을 더 봉사하게 됩니다.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삼게 된 것입니다.

이 결혼의 와중에서 야곱과 동행하신 하나님은 이기간 동안 야곱을 연단시키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장차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이 될 자로서 많은 시련과 고난을 통해 그의 성품과 인격과 신앙이 변화되고 성숙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나 하나님께서는 부친과 형을 속인 야곱에게 외삼촌 라반과 아내 레아에게 속임을 당하는 쓰라린 고통을 당하게 하심으로 심는 대로 거두는 삶의 원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한 여인 라헬을 진정 사랑함으로써 오랜 기간을 인내하게 하심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야곱의 성화를 위해 부단히 애쓰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결혼을 계기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거듭해서 약속하셨던 대로 후손이 번성해지는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즉 두 아내와 두 여종의 몸을 통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될 12 아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탐욕스러운 라반의 속임수로 이중결혼을 하게 되고 또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야곱이 도주하는 등 서로 간에 속고 속이는 비열함속에서도 구속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후계자인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기틀을 마련해 주십니다.

참으로 인간은 간사하고 변덕이 심하지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현실이 너무 실망스럽다 하더라도 성도는 결코 실망하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또한 신성한 결혼 앞에서도 속고 속임으로 가정 안에 갈등이 야기되는 야곱의 삶을 통해 우리는 남을 속이는 자는 자신도 속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라반에게 속아 봉사하게 된 14년간의 노역이 야곱에게는 아버지를 속인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면서 스스로 성결케 되는 기회가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결점 투성이인 야곱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사랑의 매로 그의 전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디 야곱에게만 국한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변화되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이 사회를 정화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도록 사랑의 채찍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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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축첩

bible26 (창28:1-22)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창28:8)

에서는 이미 가나안의 후손인 헷 족속의 딸들 중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이 자신의 장자권을 탈취한 동생 야곱을 축복하고 떠나보내면서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는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단순한 성격의 에서는 자신이 장자권을 박탈당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원인이 가나안 족속인 두 아내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마엘의 딸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 같은 에서의 경솔한 결혼 행각은 과거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넘긴 것처럼 자신이 언약의 후계자로서는 부적격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할 뿐이었습니다.

부친이삭이 고향의 친척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야곱에게 당부한 이유는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에서는 부친의 환심을 사서 자기도 복을 받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미 언약에서 제외된 이스마엘의 후손을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이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에서의 이 결혼 사건은 과거 가나안 족속의 여인을 아내로 맞은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반성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거듭되는 결혼으로 인해 하나님이 세우신 일부일처의 결혼제도(창 2:24)를 경솔히 여기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뿐입니다.

사실 에서가 새로 택한 가문도 아브라함의 후예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가문에서는 이미 제외된 자들입니다. 결국 에서는 세상의 축복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외형적인 형식에만 급급했던 그는 결국 구속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여러 종교들이 단지 기독교와 유사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 유기된 자는 영적으로 어두워 질수밖에 없으며 결국 그가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악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죄로 눈이 어두워진 자는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도 없고 그 진리대로 행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언약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지하는 한 길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하신 것처럼 구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과 뜻에 따라 구원 하실 자를 택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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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장자권 상속

bible25 (창27:1-48)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창27:30)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 있을 때 이미 동생 야곱을 언약의 계승자로 지명하셨습니다.(창25:23) 그런데 이삭이 늙고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영안까지 어두워지자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시도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에서에 대한 인간적인 편애에서 나온 불신앙적 태도였습니다.

아내 리브가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리브가가 야곱의 족장권 상속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미 예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한 채 계책에 의해 야곱이 족장권을 상속받게 했기 때문입니다. 즉 리브가의 야곱에 대한 인간적 편애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것입니다.

과거 아들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하나님의 더 큰 섭리를 믿고 순종했던 아브라함에 비해 볼 때 리브가와 야곱은 조급함에 휩싸인 채 남편과 아버지에게 속임수까지 동원하는 패륜적 행동을 보인 겁니다.
이처럼 야곱이 장자 축복을 받은 사실을 결론적으로만 보면 하나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취 과정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되지 못했습니다. 그 축복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아 은혜롭게 된 것이 아니라 편애와 공모, 속임수 등 인간의 온갖 허물이 뒤섞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냥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생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에서는 야곱을 살해할 마음을 굳히게 되고 이를 눈치 챈 리브가가 야곱을 자신의 친정이 있는 하란으로 보냄으로 20여 년간 형제는 서로에게 원수가 되어 피해 살아야 했으며 역사적으로도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과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줄곧 적대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느 때나 하나님의 예언적 약속은 인간의 권모술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따라 성취되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진 인간의 죄악은 분명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한 채 에서에게 무리하게 축복하려 했던 이삭은 아내인 리브가와 아들 야곱에게 속임을 당하는 배신감에 사로잡힙니다. 또한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면서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에게는 장자에 대한 축복권이 박탈됩니다. 그리고 야곱을 편애하면서 남편 이삭을 속이면서까지 야곱에게 축복이 주어지도록 애쓴 리브가는 야곱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 쓰라린 아픔을 겪게 됩니다.

또한 장자의 언약을 기다리지 못하고 형과 부친을 속였던 야곱에게 주어진 아픔은 기약 없는 도피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온갖 허물과 잘못까지라도 사용하시면서 그 위대한 구속사를 이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과 잘못은 간과치 않으시고 심은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약속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꼭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약속을 나의 방법과 작은 지혜로 이루려 했던 불신앙적 시도가 있었다면 당연히 책망받고 고침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강 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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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우물들

bible24 (창26:1-35)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창26:32)

아브라함 때에 이어 이삭 때에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이삭은 다시 블레셋의 그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삭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잘 지켜 순종함으로 복 받은 아브라함의 경우를 상기시키면서 그에게도 똑같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이처럼 언약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축복은 중단 없이 이어지지만 이삭은 거기서 아브라함이 범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자신의 목숨의 위험을 막기 위해 아내 리브가를 누이동생이라고 다시 속인 것인데 이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인간적인 연약함을 보여주는 아쉬운 장면입니다.

이 같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번성해진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어 물이 귀한 그 지역에서 우물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과 잦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받는 축복에 대한 불신자들의 핍박을 연상케 합니다.

즉 이삭에 대한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가 판 우물을 강제로 메우는 블레셋 족속들에 의해 거주지를 여러 번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관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이삭이 주변의 박해 속에서도 번영하는 축복을 누렸던 이유입니다.

특별히 이삭이 그를 박해하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대해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온유함을 잃지 않자 블레셋 사람들은 스스로 이삭을 찾아와 화친조약을 제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바른 자세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 같은 이삭의 삶을 통해 비록 허물이 많은 인간이지만 한번 택하신 자를 놀라운 구원사역을 위해 변함없이 쓰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받게 되는 교훈은 이삭이 박해하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함으로 결국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호의적이지 않은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강 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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