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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스 회원님들의 가정에 날마다 성경이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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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과 예후의 죽음

Bible 84(레위기 10:1-20)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7일 동안 드려진 제사장 위임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제사를 드리던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주신 규정을 어긴 죄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즉 성소에서 분향할 때 번제단의 불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율례를 어기고 함부로 다른 불을 가져다가 사용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모독하는 행위였다.

그 사건이 일어난 때는 언약백성의 제사제도가 완비되고 제사장 취임식이 거행된 바로 그 날 저녁이었다. 그 첫날 저녁에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경솔한 행위에 엄벌을 내려 백성들에게 순종을 가르치려 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악용하는 자는 공의로운 형벌을 받게 된다는 교훈과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한다는(요 4:24) 원리를 다시 깨닫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주신 이 동물의 희생을 통한 제사법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었다.

즉 동물을 대신 희생시키고, 죄인은 살려 그 죄인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려는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제사를 직접 수행할 책임을 지닌 제사장들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모욕을 당한 것이다.

어디 이 같은 인간에 의한 모욕이 이 사건 뿐이겠는가? 사실 출애굽 40년의 역사가 그랬고 구약 이스라엘 역사가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반역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끝없이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쉽게 저버렸던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었는가?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배은망덕한 죄악된 행위와의 대립은 구속사의 시작부터 그 종점까지 계속 이어지는 가슴 아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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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의 사역개시

Bible 83(레위기 9:1-24)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3-24)

제사장의 취임을 기념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장면이다. 제사장은 속죄제와 번제로, 그리고 백성들은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로 드렸다.

이 기념예배에서 제사장들이 자신들을 위한 제사를 먼저 드려야 했던 이유는 큰 직임을 맡기에 앞서 그들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했기 때문이다.

즉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의 직임을 맡고 있었지만 그들 자신도 불완전한 인간이었으므로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 받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백성들을 위한 제사 순서가 속죄제, 번제 그리고 화목제의 순서로 진행된 것은 제사장 위임식 예배에서 본대로 먼저 속죄제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한 후에야 번제를 통해 참된 헌신이 가능했고 참된 헌신 후에야 진정한 화목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위임제사와 취임제사를 드린 후에야 중보자의 직임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자신도 자신의 몸을 갈보리 제사의 제물로 드리고 나신 후에야 비로소 인류를 위한 영원한 중보자가 되셨음을 깨닫게 된다.

드디어 모든 제사를 하나님의 지시대로 다 드리고 난 후 아론이 손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임하셔서 드려진 제물들을 다 불로 태우신다. 그러자 백성들이 소리 지르며 엎드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신 것이다.

이 제사의 형식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 제사 속에는 찬양도, 설교도, 간증도 없었다. 성가대도, 반주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백성들 중에 놀라운 방법으로 임재하시자 백성들은 그분의 영광의 존귀함 앞에 엎드렸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예배의 형식을 웅장하게 꾸미기에 바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하루의 삶 자체가 진심으로 드려지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하게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롬 12:1).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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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Bible 82(레위기 8:1-36)

오늘날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하게 하시려고 명하신 것이니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레 8:34-35)

성막건립과 각종 제사법의 제정을 완료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을 세울 위임식을 준비시키신다.

그래서 제물을 준비하게 하시고 위임식의 증인으로 회중들을 회막으로 불러 모으셨는데, 이 모든 준비가 하나님이 세우신 위대한 계획 속에서 빈틈없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흐트러짐 없는 질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제사장 위임식 제사는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화목제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는 첫째, 제사장들이 위임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는 속죄제가 필요했고, 둘째, 그 후 그들의 헌신을 서원하는 번제가 드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들이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제사제도를 통해 거룩히 성별된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정결해야할 뿐 아니라 봉사와 헌신의 삶으로 일관해야 함을 보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오늘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성도들도(벧전 2:9)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성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은 화목제를 마지막으로 완료되었는데 그 위임식이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계속된 이유는 그들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성별하시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위임식 규례가 보여주는 구원사적 원리가 있다. 그것은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 직접 설수 없으므로 중보자가 요청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구약시대 제사장으로 세움받았던 인간 중보자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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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건제의 규례

Bible 81 (레위기 7:1-38)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레 7:21)

본장에는 화목제 규정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공동식사에 관한 것으로 구약의 5대 제사인 번제, 소제, 화목제,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 중에서 화목제의 경우에만 백성과 제사장이 함께 희생제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동식사 자리에 정결법상 부정한 자는 참석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친교를 위해서는 항상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로 화목제에서는 기름과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이처럼 생명의 상징인 피와 생명체를 살찌게 하는 기름의 사용을 금하신 이유는 하나님만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체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제사장의 몫으로 제물의 일부가 주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맡겨진 거룩한 직무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구약의 제사제도를 신약시대인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근본정신은 오늘도 여전히 복음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즉 번제의 정신은 성도의 헌신과 복종을 통해, 화목제는 성도가 지켜야할 하나님과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는 지금도 죄를 사해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 속에서 여전히 그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자에 불과했던 구약의 각종 제사 제도와 형식이 오히려 오늘날 복음 안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음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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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의 규례

Bible 80 (레위기 6:8-30)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 하니라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레 6:9)

레위기 1:1-6:7까지의 말씀이 제사의 기본목적과 제물에 관한 기록이라면 본장은 제사장이 제사를 어떤 절차와 방법에 의해 진행해야할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제사장은 상번제 즉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제사에서 불이 하루 종일 꺼지지 않고 계속 타도록 해야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충성이 변함없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단 앞으로 나아갈 때 제사장이 세마포로 만든 속바지를 입어 하체를 가려야 했던 것은 인간의 하체가 수치와 부끄러움과 치욕을 상징했기 때문이다(사 3:17).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소제물 이외에 예물들은 아론과 그 자손인 제사장들의 몫으로 주어져서 거룩한 회막 뜰에서 먹도록 했는데 그것은 소제물을 먹는 행위도 거룩한 제사의식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속죄제를 드릴 때 피뿌림 의식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러다보니 제사장이 아무리 주의를 한다 해도 의복에는 종종 피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피가 옷에 묻었을 경우에는 그 의복을 거룩한 곳인 회막 안에서 빨아야 한다는 정결법을 제사장들에게 가르치셨다. 그것은 의복을 함부로 방치함으로 속죄의 피가 속화되고 훼손되어 하나님의 성물이 모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희생제물의 피조차도 세심하게 다루어졌던 당시 제사법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영원한 대속제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를 잊고 죄 속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나 가증스런 일임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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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컴파스 회원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추석 되세요~~

속건제

Bible 79(레위기 5:14-6:7)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레5:18)

속건제란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 중 제물이나 첫 열매나 십일조 같은 것을 그릇되게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이에 덧붙여 이웃의 권리나 재산을 침해한 죄도 함께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 속건제에는 제사와 아울러 손해를 끼친데 대한 적절한 보상이 수반되어야 했다.

속건제는 세 가지 유형에 따라 드려졌는데 첫째는 여호와의 성물을 훼손한 경우이고 두 번째는 여호와의 계명을 어긴 경우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이웃에게 범죄했을 경우인데 어느 경우든 대상자와의 화해를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배상과 대가가 지불되어야 했다.

이 중에서도 남에게 범죄했을 경우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별되는데 그것은 남의 물건을 위탁받은 후 부인한 경우, 남의 물건을 횡령한 경우, 남의 물건을 강도질한 경우, 이웃의 물건을 탈취한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의 물건을 줍고도 이 사실을 부인한 경우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는 그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줌과 아울러 그 가치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벌과금을 더 지불하고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 대한 범죄는 결국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속건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떼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이 속건제의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종종 막막해짐을 떨쳐낼 수 없다. 죄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사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려고 스스로 십자가상의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건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바로 이 사랑이 인생의 모든 문제와 죄에 대한 영원한 해답임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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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

Bible 78(레위기 4:1-5:13)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레5:13)

속죄제란 이름 그대로 한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번제, 화목제, 소제 등의 제사는 자원제였다. 즉 개인이 꼭 드려야할 의무가 아닌 스스로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지만 속죄제는 의무제다. 즉 일단 죄를 범한 자는 누구나 그 죄의 해결을 위해 드려야 하는 제사인 것이다.

더욱이나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택해서 드릴 수 없고 4등급으로 나뉘어진 범죄자의 신분에 따라 정해진 제물을 드리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4등급의 신분이란 제사장, 온 회중, 족장 그리고 평민이었다. 이처럼 신분에 따라 제물의 종류가 정해지고 또한 서로 다른 규정에 의해 속죄제가 드려진 사실을 통해 우리는 특별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 중에서도 당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했던 제사장에게도 속죄제가 필요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인간 제사장은 불완전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또한 회중들의 경우, 그들이 드릴 제물과 제사 방식이 제사장의 경우와 같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회중을 동일하게 여기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신약시대,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만인 제사장 제도의 성경적 근거가 된다(벧전 2:9).

또한 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경우 족장이나 평민에 비해 제물이 더 값지고 제사제도도 보다 까다로웠던 것은 그들의 죄의 영향력이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일수록 더욱 죄를 멀리하면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사도 바울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 자신의 정당한 권리나 자유도 양보하면서 관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더욱이나 범죄자는 속죄제를 드리기에 앞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입술을 열어 죄를 자백해야 했다. 속죄제사의 중심은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때 죄의 고백은 구체적이어야 했다. 대충 얼버무리는 식의 고백에는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지한 회개와 그에 따른 삶의 열매를 원하신다. 형식적인 뉘우침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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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

Bible 77(레위기 1:1-17)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1-2)

시내산 언약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지만 아담부터 이어져 온 죄의 속성으로 인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절대성결의 기준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언약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과 계속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한 방법으로 주신 것이 바로 이 제사법이다.

에덴동산의 언약에 따르면 죄를 지은 자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피를 흘리며 죽어야했다(창 2:17).
이에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죄는 죽음으로 처벌하시되 그 죄인은 살려주시기 위해 그 죄를 전가 받은 동물이 대신 죽는 방법을 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법이다.

그런데 구약의 이 제사법은 구약시대에만 국한되는 임시방편으로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 하고 있으며 이제부터 시작되는 레위기는 성막에서 거행될 5대 제사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다.

본문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예물은 소나 양으로 드릴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속죄 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하나님은 소와 양과 염소와 새를 번제로 드리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번제물에 따라 제사방식이 까다로운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신령(영)과 진정(진리)으로 드리는 것임을 알게 해주시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희생제물의 피가 단 주위에 뿌려진 것은 대속의 유일한 수단이 “피”라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 “피”는 후일 죄인들을 위해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동물의 제사법을 명하시면서도 후에 있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미 마음속에 품고 계셨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 때문에 보잘것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미천한 인간의 죄를 위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대신 희생제물이 되시려 하신 것인가?

하나님의 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우리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
그저 눈물로 감사드릴 뿐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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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Bible 76(출애굽기 40:1-38)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출 40:34)

성막제작이 완료되자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성막의 봉헌날짜와 기물들의 배열위치가 정해졌다. 이처럼 성막의 건축은 구상에서 봉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에 따라 진행되었다. 즉 성막의 건축이 비록 인간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건축의 전 과정을 계획하시고 진행시키신 분은 성막의 주인이신 하나님 자신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은 성막의 봉헌으로 실현되었지만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였다(마 1:23).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막은 바로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이다.

더욱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임하셔서 우리를 동역자로 삼아 구원사역을 이끌고 계신다. 이처럼 죄인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이처럼 성막제작을 다 마치고 그 성막을 세워 하나님께 바치게 된 데에는 백성들의 순종이 큰 몫을 차지했다. 즉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모세를 비롯해서 지혜로운 많은 백성들이 순종과 헌신과 충성을 바쳐 성막이 완성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통치의 핵심인 성막을 중심으로 종교적 통일체가 되었고 헌법격인 십계명을 따라 신정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에 순응한 백성들의 순종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이들을 본받아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삶을 살게 될 때 이 시대에 맡겨진 위대한 주의 사명을 이루게 되리라 믿는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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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운동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18)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사도들에게 남기신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의 초점이 늘 인간의 구원에 맞춰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구원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자들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로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동역하는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이 같은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로부터 회개의 메시지를 들은 예루살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받게 되자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서로 교제하며 기도에 힘씁니다.
그렇게도 아끼던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날마다 성전과 집을 오가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변화된 삶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자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자들의 수를 날마다 늘어나게 해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2:37-47).

그러자 그들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사역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산되면서 교회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들과 같은 능력있는 교회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인 중 누가 거듭나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지, 누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교회는 물론 본인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구원의 복음 대신 행복으로의 길, 마음의 평화, 죄책감으로부터 해방, 상처 치유 같은 메시지가 교회 안에서 홍수를 이루다 보니 교인들은 하나님 대신 하나님이 주신다고 생각하는 유익들만을 찾기에 급급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성도가 증인의 삶을 저버린 채 교회가 능력을 잃게 되면 자연히 교회 안에는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형식적인 교인들이 점점 늘어가게 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주님과의 동역을 위해 다시 일어날 때가 된 것입니다. 먼저 죄 된 본성인 교만과 이기심을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성도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이라는 과정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살게 해주시는데 이 변화의 전 과정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딤후 3:16-17).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말씀을 사모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점점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 컴파스 미니스트리에서 날마다 성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미 신명기까지 5권의 날마다 성경 교재를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변화를 체험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불일 듯 일으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날마다 성경운동은 5명 정도 study group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혼자 할 경우 예기되는 사탄의 공격을 물리침은 물론 함께하는 나눔을 통해 큰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주님과 동역하는 삶의 신비와 영광스러움을 매일 체험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업의 현장은 이 증인의 삶에 필요한 영적 사역터 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은퇴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영혼의 깊은 밤이 곧 찾아옵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거듭난 자인지를 삶의 열매를 통해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증인의 삶에 기쁨으로 동참하십시요.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8월11일 밤에 강안삼 , 컴파스발행인.
문의:02-461-4141/010-7639-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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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제작의 완료

Bible 75(출애굽기 38:1-39:4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 39:42-43)

본 장에서는 성막 뜰 중앙에 배치 될 번제단과 그 부속기구의 제작에 관한 내용이 소개된다. 특히 번제단은 하나님께 속죄와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곳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할 수 있는 통로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번제단에 드려진 향기로운 희생제물을 통해 인간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또 그들을 만나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번제단과 그 위에 불살라진 제물은 모두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흠 없고 온전한 희생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드림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 하는 화목제물이 되셨다(히 9:28).

이어서 물이 담긴 세수대야로 쓰였던 물두멍과 성막의 뜰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해 쓰여진 울타리는 2.5m의 높이로 설치되었고 동쪽에는 약 10m 정도의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죄인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이 문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마지막으로 대제사장과 일반제사장의 복식제작을 마침으로 성막의 제작이 끝나게 된다.

드디어 성막 건축자들이 성막과 모든 기구들을 완성하여 모세에게 가지고 나오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방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작업을 마쳤다.

이처럼 온전한 순종과 성실로 성막제작에 임했던 그들의 태도를 통해 오늘날의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받은바 은사를 따라 신실하게 행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 중에서도 모세는 일의 시작부터 마치기까지의 전 과정이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시행되었는지를 철저하게 감독함으로 후세대에게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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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해서 드린 선물

Bible 74(출애굽기 36:1-37:29)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출36:1)

본문부터 시작해서 40장에 이르기까지는 구체적인 성막 제조기사로 가득차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제조자들에게 지혜와 총명으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만들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자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신이 먼저 안다.

놀라운 사실은 백성들이 성막 제조에 기뻐하면서 수많은 헌물을 자원해서 드림으로 헌물이 넘쳐 도중에 중지시킬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그들이 바친 헌물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애굽인들로 부터 풍족하게 받게 해주신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광야 생활 속에서는 얻지 못할 그 귀한 예물을 기꺼이 바친 것은 감사하는 믿음과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고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헌물은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해서 드려야 한다는 헌금의 원리를 배우게 된다.

이 헌물들을 재료로 성막 기술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대로 성막의 구조물들을 세워나갔는데 구약 시대의 그 구조물들은 모두가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예표한다.

예를 들어 성막의 덮개인 양장은 인성과 신성이 조화를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사 53:2-3), 널판은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를(고전 1:2), 그리고 널판받침은 교회를 세우는데 필수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행 20:28) 상징하는 것임을 보면서, 이 성막 안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 앞에 우리는 옷깃을 여미게 된다.

더욱이나 성소를 밝히는 기물인 등대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감람유가 가득 차 있었다(슥 4:1-6). 그러므로 성도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 말씀으로부터 깨닫게 된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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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준수의 참뜻

Bible 73(출애굽기 35:1-35)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출35:2-3)

본문이 다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으로 시작되는 이유는 이 명령이 모든 언약을 포괄하는 대표적인 율법이기 때문이다. 안식일 제도는 가장 주기가 짧은 절기로서 하나님과 백성과의 언약관계에서 생겨난 사랑과 헌신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한 율법이었다.

그러므로 이 안식일의 율법을 준수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확인하면서 그들의 삶을 올바르게 점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성막제도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안식일제도의 근본목적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 안식일 율법의 준수명령을 성막제도의 서두에 밝히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은 건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교제를 위한 방편이라는 점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의 참뜻은 단순히 일주일 가운데 하루의 일을 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창 2:2-3)과 구속사역(신 5:15)을 기억하고 하루의 노동을 쉼으로 영과 육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즉 형식적인 신앙생활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맺어지는 삶의 열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주일에는 특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의 삶에 전념하면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기쁨의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리라 믿는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역자로 참여하는 성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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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얼굴이 빛나다

Bible 72(출애굽기 34:10-35)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출34:29)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오른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과 속성을 계시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 모세와 두 번째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 내용은 첫 번째 언약의 내용을 다시 회복시킨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에서 큰 이적을 행하셔서 그 땅 거민을 다 내어 쫓으시겠다는 것, 가나안 거민과는 어떤 언약도 맺지 말것, 그리고 가나안 땅의 우상은 절대 섬기지 말고 가나안 거민과는 통혼하지 말라는 것 등이다.

특별히 우상숭배에 관한 내용이 강조된 이유는 금송아지 숭배와 같은 죄악을 가나안 땅에서는 다시 범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다.

이 같은 언약 체결을 마친 후 십계명 두 돌판을 가지고 하산하는 모세의 얼굴이 광채로 빛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다.

이 사실을 통해 범죄한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흔적조차 대할 수 없으나 반면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연합된 자는 그 영광의 찬란한 빛을 이웃에게 발하게 될 것임을 알게 해 준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존재였으나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존재로 전락한 이유는 그들이 저지른 죄와 허물 때문이다(사 59:2).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죄의 장벽을 즉시 물리쳐야 한다. 이보다 더 시급한 인생의 과제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인간 스스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와 허물을 제거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동행 없이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없이는 존재의 가치조차 논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닌가?(강안삼)

하나님의 동행허락

Bible 71(출애굽기 33:1-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33:14)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우상사건으로 격노하신 하나님께 모세가 올려드린 간곡한 중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불같은 진노를 그치셨지만 출애굽 이후 늘 함께 하셨던 이스라엘 백성과의 가나안 동행을 거부하신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이 도중에 진노를 받아 진멸당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 사건을 통해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죄를 먼저 청산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한 번 하신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 대해서는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소망의 말씀인가?

그러자 하나님의 동행이 없이는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동행해 주시기를 전심전력을 다해 기도했고 백성들 역시 이 기도에 동참했다.

그 결과 모세는 드디어 하나님의 동행약속을 선물로 받게 된다. 정말 간절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마 18:19).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시 23:1-6)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모세의 이 끈질긴 기도를 통해 “기도란 인간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전제로 한 대화”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시 91:14).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언어로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고백함으로 진실한 대화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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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우상

Bible 70(출애굽기 32:1-35)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32:4)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산에 올라간 모세가 40여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자행하게 된다. 그 위대한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을 겪은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저지른 일이다.

이것은 구속사 전개에 있어서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당장의 기복을 원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들이 이 같은 어리석은 죄악을 저지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앙에 굳게 서지 못한 채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분을 하나님이 아닌 모세로 오인했기 때문이다(출 32:23).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멸시킬 뜻을 밝히시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백성들을 위해 간곡히 중보하게 된다. 그 중보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을 진멸당할 위기로 부터 구해주셨는데 결국 모세의 이 같은 중보행위는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인해 인류를 죄로부터 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 없이는 인간은 하루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다시 고백하게 된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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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준수 명령

Bible 69(출애굽기 31:1-1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세 가지 표징은 무지개와 할례와 안식일이다.

그 무서운 노아의 홍수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표징이 무지개라면(창 9:13) 할례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징이다(창 17:10-11).

세 번째 표징인 안식일 준수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명령이다. 안식일은 하던 일을 중지하고 쉬는 날을 말한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 7일에 쉬심으로 창조사역을 완성하셨으며 그날을 거룩히 구별하고 복주셨기 때문이다(창 2:1-3). 안식일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인간도 모든 일을 멈추고 그 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면서 안식하는 날이다.

또한 이 안식일 준수명령은 출애굽을 통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는데(출 20:8-11)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것을 근거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셨다(신 5:15).

그러므로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기념하면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복된 일이며(출 23:10-12)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언약백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복된 행위이다(출 31:13).

그러나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 하나님의 이 놀라운 축복의 안식일 명령이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39가지 규정이 제시될 만큼 형식화 되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허구성을 지적하시면서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시게 된다.

즉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자신이시며 안식일 준수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날이어야 한다”는 지침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안식일을 완성하기 위해 오신분이시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안식일의 의미대로 엿새 동안 힘써 일하면서 주일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날을 즐거워해야할 것임을 깨닫게 된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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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단의 규례

Bible 68(출애굽기 30:1-38)
너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출 30:1)

본 장에서는 다시 성막제도에 대한 기사를 다루면서 분향단에 대한 규례를 설명해 준다. 이 분향단은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를 재료로 해서 길이와 넓이가 각각 45cm 그리고 높이가 90cm의 직육면체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정금을 입혔다.

그리고 분향단의 네 귀퉁이에는 뿔을 달았는데 이 분향단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각각의 기물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외형적으로 볼품없는 조각목이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면(사 53:2) 뿔은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의미하고(시 18:2) 또한 정금이 하나님의 영광과 언약의 불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향은 성도의 기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계 5:8).

더욱이나 분향단을 지성소 휘장 바로 앞에 둔 것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눌 필요성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또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향단뿔에 속죄의 피를 바르도록 한 규례를 통해 성도의 기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상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속죄의 피를 필요로 했는데 이것은 죄인을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인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롬 8:34).

이처럼 번제물 하나를 제작하는데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의 메세지가 들어있음을 보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음을 다시 확인하며 감사를 드리게 된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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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위임식 규례

Bible 67(출애굽기 29:1-46)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출 29:35)

본장에서는 예비 된 제사장 의복을 입고 시행되는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는데 구약시대에는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 앞에 나가 제사드릴 수 없었다. 그것은 아담의 원죄 이후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위임된 제사장들만이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성취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의 인간 중보자 없이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벧전 2:4-5).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의 피흘림을 통해 아담의 원죄로 야기된 모든 죄의 저주를 다 채우시고 우리에게 의인의 신분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의 신분을 벗어버린 채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만인제사장주의이다.

한편 본장에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아론의 혈통만이 위임식을 통해 신성한 중보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지정하여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중보사역을 예표하는 것이다.

또한 제사장 위임에는 세 가지 재료인 물과 기름과 피를 필요로 했는데 그 중 물이 제사장의 더러운 옛 모습을 벗고 변화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면 기름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그리고 피는 전적회개와 완전한 화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구약시대 제사장뿐만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된 모든 성도들에게는 절대성결과 신령한 은혜, 그리고 절대헌신과 충성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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