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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은 날마다 예배입니다. 컴파스 회원님들의 가정에 날마다 성경이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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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로의 현명한 조언

Bible 60(출 18:1-27)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 18:21-22)

장인 이드로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모세가 출애굽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전하자 듣고 있던 이드로의 입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참 신앙을 고백하는 승리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그 은혜를 이웃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스런 도구로 살아가게 된다.

한편 모세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보여준 비능률적인 약점에 대해 이드로는 이스라엘의 행정 및 사법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한다. 그러자 모세가 그 개혁안을 수용함으로써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과 일을 분담함으로 백성들이 신속하고 능률적인 행정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은 성도가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 서로 의지하며 세워줘야 할 사역의 모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는 한 사람의 탁월한 독주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받은 은사대로 합력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역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지혜와 경험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이 같은 성도들의 협력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시는데도 꼭 필요하다. 물론 구속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필요하면 길가의 돌을 취해서라도 구속사를 진행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때로는 성도들의 헌신을 구속사를 전진시키는데 필요한 촉진제로 쓰시기도 하신다.

모세와 이드로가 서로 협력한 일들이 오늘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데 필요한 한 모델임을 깨닫게 될 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자신의 은사를 따라 서로 협력하는 삶의 자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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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되시는 하나님

Bible 59(출 17:1-16)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2)

마라의 쓴물로 인해 백성들이 불평했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은 또다시 갈증에 못 이겨 불평하면서 물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지 않고 깊이 참으시면서 생수로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신다. 이처럼 그들의 심령에 은혜의 생수를 부어주심으로써 그들이 지닌 모든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이심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네 앞에 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직접 모세가 처한 상황에까지 내려오셔서 그를 도와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신 것인데,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모세를 찾아 오셔서 그의 요구를 들어 주신 하나님이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계시지 않은가? 지금 영육간에 목말라 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의 간구에 대답해 주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으로 우리는 먼저 내면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응답받는 첫 단계다.

이어지는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지는 기이한 체험도 결국 승리의 힘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보여주는 교훈이다.

이 같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광야생활을 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끊임없이 지속됨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출애굽 과정에서의 극적인 순간에만 개입하시지 않는다. 그 후 전개되는 구속사의 순간순간마다 동참하셔서 백성들을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큰 위로와 힘을 얻게되는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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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Bible 58(출 16:1-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출 16:35)

마라의 쓴물로 모세에게 불평을 쏟아냈던 백성들이 불평의 강도를 높이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으로 응대하시면서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결국 이 만나의 공급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임을 조용히 가르치셨다.

이처럼 배고파하는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구속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된다.

육신의 떡인 만나는 결국 영원한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이다. 더욱이나 거친 나그네길을 상징하는 광야 40년 생활에서 만나가 매일 정기적으로 내리고 그 만나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었던 사실을 보면서 우리도 이 땅을 사는 동안 매일 진정한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라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만 생명을 유지해서 결국 구속사의 목적지인 약속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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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기 날마다 성경 아카데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세상의 풍조를 따라 교회의 세속화가 만연해진 지금은 믿는다는 자들을 향해 주시는 주님의 경고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때입니다.
그것은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주님을 부인하는 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닌가 하는 성령님의 깨우치심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순종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과 삶이 변해 주님의 구원사역의 동역자라는 영광스러운 삶속으로 인도해 주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수십 년을 형식적으로 주일 교회 예배에만 참석하다가 아무런 열매 없이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두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열매 맺는 삶을 위해 <제 1기 날마다 성경 아카데미>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저 자신이 바로 입술로만 주여 주여 외쳤던 바로 그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갈급한 심령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꼭 오십시오. 그래서 나를 변화시키고 이 시대 교회를 새롭게 하는 사역에 쓰임 받는 동역자들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의 변화가 바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 길임을 믿습니다.
2019. 3. 25. 강안삼 드림

- 아 래 -
일시 : 4월 13일, 20일 (토) 오후 2시-6시
장소 : 컴파스(미션월드) 북카페 (광진구 동일로 434)
강사 : 강 안 삼 대표

-주 제-
4월 13일(토)
제1강 - 거듭남의 신비
제2강 - 구원받은 증거
제3강 -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제4강 - 날마다 성경 실제 (1)
4월 20일(토)
제5강 -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제6강 - 제자 삼는 삶의 영광스러움
제7강 - 날마다 성경 실제 (2)
제8강 - 거룩한 나눔

회비 : 20,000원 (회원)
40,000원 (비회원) 날마다 성경 창세기 증정
입금계좌 : 국민은행 038-01-0478-805 (미션월드)
참고 : 참석자들은 꼭 날마다 성경 창세기 교재를 갖고 오시기 바랍니다.
참가신청 :
https://compassministry.kr/178 으로 클릭하셔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02-461-4141/010-7639-4141 전화주세요)

마라의 쓴 물

Bible 57(출 15:1-27)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처음으로 백성들이 홍해사건을 통해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은혜의 축제가 시작된다.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높고 영화로우심을 찬양했다. 그래서 “여화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구원이시로다”라고 노래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들은 또한 하나님을 애굽의 군대를 강하게 제압하신 용사로 묘사했는가 하면 공의의 진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즉 하나님을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으로, 그러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진노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실패함 없으신 하나님, 원수를 심판하시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택함받은 믿음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은 은혜로 행하신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사흘 동안 여행하면서 물이 없어 고통받던 그들이 마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맛보게 된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는 마라의 쓴 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모세를 찾아가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죄 된 내면을 보게 되는 씁쓸한 일이 아닌가?

물론 3일간 물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열 가지 재앙과 홍해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 했었기에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성숙한 신앙인격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여기서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인생의 쓰라린 고통의 터널을 지내오면서 일관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할 수 있었는가? 아니다. 그들의 죄가 우리의 죄이며 그들의 부족함이 우리에게서도 똑같이 드러남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사건은 출애굽시대로부터 모든 시대의 구속사를 통해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임을 보게 된다. 즉 백성들을 사랑하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일관성과 신실하심에 대비되는 백성들의 변덕과 배신과 원망하는 태도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끝없이 참으시면서 사랑으로 묵묵히 구속사를 진행시키신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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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의 기적

Bible 56(출 14:1-31)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첫 걸음일 뿐이었다. 이 때 수많은 노예들을 잃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바로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그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 대응책으로 홍해의 기적을 예비하시고 일반 세상의 전술과는 달리 바다를 뒤로 하고 진을 치게 하셨다. 그 결과 이스라엘 뒤쪽에는 바로의 추격이, 그리고 그들 앞쪽에는 삼킬 듯한 홍해물결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자 당연히 출애굽을 후회하는 백성들의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를 신뢰하여 침착하라고 백성들을 권면하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모세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처럼 진퇴양난의 위기로 인해 허둥대는 백성들 앞에서 홍해가 초자연적으로 갈라지면서 애굽의 군대가 수장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그때서야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모세도 믿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온갖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은 채 허둥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게 된 이 홍해 사건은 영적으로 귀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즉 죄악과 절망으로 상징되는 과거 애굽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홍해 바다 속에 모두 장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 중생 사건을 예표해 주는 기념할만한 사건인 것이다.

이 땅은 치열한 영적 싸움터다. 그래서 오늘도 사단은 중생한 성도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안겨주며 공격하지만 이 홍해사건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성도들을 지켜주신다. 이 믿음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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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 규례

Bible 55(출 13:1-22)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출 13:7)

하나님께서는 새로 생겨난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을 초태생과 무교절 규례를 통해 설명해 주신다. 이 규례들은 애굽 땅의 그 고통스런 삶의 현장에서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있게 한 유월절과 그 뒤를 따르는 무교절과 초태생 규례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교훈을 안겨준다. 유월절에 희생되었던 어린 양의 피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의 희생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유월절에 그들은 누룩 없는 무교병을 먹었는데, 여기서 누룩은 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교병을 먹었던 것처럼 누룩이 의미하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초태생 규례에서 보듯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가정의 모든 장자는 다 대속되었는데 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를 지킴으로 그 대속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인해 대속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생명과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내 모든 것을 최상의 것으로 주님께 드리면서 헌신과 순종의 열매를 맺어드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변화되어 이웃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삶의 열매를 맺어드리는 것이다. 이처럼 열매로 드리는 헌신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그 영광스러움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쌍한 자다. 그는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자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이 시작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기나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 많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성장하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출애굽이 거듭남이라는 순간적 사건을 예표 한다면 40년 광야생활은 이 땅에서 죽는 날까지 계속되는 성화의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히11:13-14).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으로 변화되어 성화의 과정을 통해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고 애써야 할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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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규례

Bible 54(출 12:1-5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

출애굽 사건의 절정을 이루는 본 장에서 결국 애굽인에게는 장자의 죽음이라는 심판이, 그리고 유대인에게는 출애굽을 통한 구원의 승리가 서로 엇갈리게 됨을 보게 된다.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은 엇갈림이다. 즉 영원한 생명과 죽음의 엇갈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밤에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희생의 피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어린양의 희생을 명령하셨다. 즉 유월절 규례인데 이처럼 출애굽은 유월절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출애굽과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흘리심을 믿는 자들이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새 삶을 찾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인 것이다.

물론 이 유월절 규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표식을 안 해도 그들을 재앙으로부터 구별하실 수 있었지만 이런 규례를 두신 근본 이유는 백성들에게 순종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어느 시기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열매 맺는 신앙생활의 기초를 이룬다.

그러나 이 유월절 규례의 구체적 의미는 출애굽 당시 어린 양의 피 없이는 백성들이 죽음을 면할 수 없었듯이 예수의 보혈 없이는 죄인들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다(히 9:14).

또한 이 유월절 의식에서 죄악과 부패의 상징인 누룩을 없앤 무교병을 먹는 것은 성도들이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성별해서 거룩한 생활로 들어가는 성결로의 부르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성도들이 구원을 향해 전진해가는 구속사의 여정인 것이다.

또한 이 유월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교회의 태동의 모습이 동일한 것을 보면서, 신구약의 구속사가 일맥상통하는 신비스런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출애굽사건은 이스라엘 민족만의 과거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강안삼)

하나님의 보상

Bible 53(출 11:1-10)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출 11:3)

드디어 10번째 재앙을 내리기 전 취하신 마지막 경고의 내용이다. 이 재앙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로부터 은 금 패물을 얻게 해 주신다.

그 동안의 재앙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바로의 신하와 애굽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로 부상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 역시 애굽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으며 그 나라를 떠날 수 있었다. 택함받은 백성들의 삶의 면면을 살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엿보게 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떠날 준비를 마친 후 모세가 바로를 만나 바로의 장자로부터 애굽 전 가정의 모든 장자들이 가축의 처음 난 것들과 함께 죽게 될 것이라는 장자재앙을 구체적으로 예고한다. 즉 재앙의 발생시기와 재앙의 대상, 그리고 재앙의 결과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될 것임이 자세히 전달된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떤 재앙도 주어지지 않음으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나타나게 될 극명한 차이를 예고했다.

이 마지막 재앙은 끝까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던 애굽의 바로와 백성들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죄 속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경고하시고 오래 참으시지만 세상 끝 날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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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은 없다

Bible 52(출 10:1-29)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출 10:11)

10가지 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그리고 악질과 우박 재앙에 이어 이번에는 메뚜기 재앙이다. 이어서 마지막 재앙인 애굽 온 가정의 장자들이 죽게 되는 장자재앙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애굽 전역에 칠흑 같은 어두움이 3일 동안 지속되는 흑암재앙이 내려진다.

왜 하나님께서는 단번에 능력을 발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탈출시키지 않으셨을까? 대신 바로의 마음을 완악케 하시고 모세의 경고에 응하지 않게 하심으로, 10가지 재앙을 순차로 내리시면서 출애굽을 오래 지연시키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 한 마디로 이 같은 재앙을 내리시고 거두시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또 이방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 출애굽 사건은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정하셨고(출 3:19-20) 하나님이 예언하신 일이었다. 이 모든 재앙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시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사실은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에 찬 심판임을 가르쳐준다(욜 2:1-11). 또한 그 중에서도 택함 받은 자기백성을 이 세상에서 구출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예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출애굽사건을 통해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역사 속에서 진행되다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바로는 10대 재앙의 전개과정에서 세 번에 걸쳐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모세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출애굽 같은 구속사적 사건은 인간과의 타협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3일 동안 애굽 전역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휩싸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던 고센 땅은 여전히 태양에 의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광명의 축복이 그리고 그 사랑을 거부하는 자는 흑암의 저주 속에 던져지게 된다. 그 사이에 중간지대란 없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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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보이시는 하나님

Bible 51(출 9:1-35)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10대 재앙 중 악질과 독종과 우박재앙이 순차적으로 애굽 백성들을 괴롭혔지만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는다. 이처럼 바로가 하나님의 대언자인 모세와의 약속을 계속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 고집대로 버틴 것은 그가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신으로 보기보다는 타협과 설득이 가능한 여러 신중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의 기본요소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다면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교만 속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재앙이 없으면 당연히 교만해진다. 그러다가 재앙이 닥치면 순간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그 재앙 때문에 그의 내면이 변화된 것은 아니다. 재앙이 순서대로 진행될 때마다, 바로가 크게 뉘우치는 듯하다가 그 순간만 지나면 다시 강팍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10번째 생명을 잃어버리는 재앙을 당한 후에야 완전히 항복하게 되는데 이는 일생동안 구원의 신호를 계속 무시하다가 세상 끝 날에 이르러 생명을 빼앗기는 최후심판 후에야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자신들의 죄악을 후회하는 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일찍이 죄를 회개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안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구원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과거 모세를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능력을 보이시면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그렇다면 이 거룩한 부르심 앞에서 우리가 어느 때까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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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같은 존재

Bible 50(출 7:1-8:3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출 7:1)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동역자로 부름 받은 모세였지만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우면서 바로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자신의 약점을 저자인 모세가 숨김없이 기록한 이유는 출애굽기로부터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그의 행적이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7장 1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렇다면 모세가 바로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유약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바로를 지배할 수 있는 신적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이다.

즉 바로는 신같이 군림하는 땅의 권세자였지만 반면에 모세는 그 바로를 지배할 수 있는 신적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였다. 이처럼 유약한 모세를 강하게 해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연약함을 능력으로 채우시면서 우리를 구원사역의 동역자로 사용하길 원하신다.

문제는 이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나아가겠다는 우리의 결단이다. 결단하는 자는 승리자의 삶을 누리겠지만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을 쫓는 자는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능력과 기쁨을 결코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바로에 대한 하나님의 10대 재앙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방해하는 사단적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승리를 예표하는 사건이다. 10대 재앙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재앙을 일으켜 자연을 초토화시킨 사건이었다.

더욱이나 하나님께서 당시 애굽인들이 우상으로 섬기던 그 대상들을 골라서 재앙의 도구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 우상은 물론 모든 우상의 우두머리인 사단을 제어하시고 이길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 같은 복잡한 과정을 전개하시면서 까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열심이셨을까? 이 생각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감내하셨을까?”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 이외에는 이 질문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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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둔한 자 이오니

Bible 49(출 6:1-30)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출6:30)

바로왕이 전보다 더 많은 노역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과하자 백성들과 모세 사이에는 불신과 불만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이에 모세가 위축된 모습을 보이자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면서 다시 애굽왕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라고 요구하게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도 나를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이니이다”라고 말하면서 계속 주춤 거리는데 이것은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이유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연약하고 불순종하는 모세 같은 인간을 설득하시고 위로하시면서 그를 통해 구원사역을 이루려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에게 능력이 없으신가?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순식간에 광야 한 복판으로 이동시킬 수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족한 인간들과 인격적으로 교제하시면서 끝까지 그들을 동역자로 삼아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죄 많은 인간이 바로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동역자로 삼아 수많은 현대판 바로왕에게 보내신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때마다 모세처럼 “나는 입이 둔하고 내가 말해도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앙적인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그 명령에 불순종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나님은 이 같은 우리의 불신앙에도 인내하시면서 오히려 격려해주신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와 아론이 결국 야곱의 자손임을 밝히시는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야곱을 통해 주신 언약을 그의 후손들을 통해 계속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이 하나님은 오늘도 택함 받은 우리와 구원사역을 위한 동역의 길을 걷기 원하신다. 그러니 이제야 말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화답해 드려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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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불신앙적 항변

Bible 48(출 5:1-23)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출 5:22)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을 찾아가 광야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요구했다. 그러자 바로가 자신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면서 모세의 제안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보다 더 많은 양의 노역을 부과했다.

백성의 대표들이 바로를 찾아가 일을 줄여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의 제안은 거절된다. 그러자 오는 길에 모세와 아론을 보게 된 그들은 모세의 엉뚱한 행동 때문에 자신들이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불만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 때 비록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유약했던 모세는 미래의 구원보다는 당장의 현상유지가 더 유익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불평 섞인 호소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약점을 지닌 인간의 한계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교회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직면하곤 했던 두 가지 방해요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 그 나라를 통치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집권자들이 방해하고 핍박한 경우인데 이것은 어느 나라나 선교초기에 겪었던 험난한 역사다. 또 다른 요인은 그 복음사역으로 인한 고통과 탄압의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주저앉는 소명자들의 나약함이다.

바로를 찾아가 그들의 고통을 호소했지만 대답을 얻지 못하고 나온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항의했을 때 낙심해서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놓았던 모세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광대한 구원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내 앞에 닥친 작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낙심하고 주저앉았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므로 인류의 구원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서 동역자로서의 삶의 가치와 특권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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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Bible 47(출 4:1-31)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출 4:15)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앞두고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밝히시면서 그와의 동행을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소명을 거듭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앞에서 두 가지 이적을 베푸시고 또한 그의 형 아론을 대언자로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더욱이나 그의 손에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지팡이를 들려줌으로써 그를 구원사역의 동역자로 세워주셨다. 하나님은 때로는 뼈아픈 채찍으로 사람들을 동역자로 세우기도 하시지만 모세처럼 집념어린 사랑으로 그들의 결단을 촉구하실 때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을 배우게 된다.

오늘도 하나님은 동역자를 부르신다. 분명히 우리 마음속에 어떤 이웃을 생각나게 하셨는데 그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음으로 제자삼기를 거부한 적은 없는가? 우리가 순종함으로 반응하면 성령께서는 그를 만나는 현장에서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신다. 이 같은 믿음의 순종이 하나님을 신뢰할 마음을 더욱 굳게 해주신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구원사역의 동역자였지만 아들이 태어난 지 8일 만에 행해야 하는 할례를 실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종교와 문화적 습성이 달랐던 미디안 출신인 그의 아내 십보라의 만류 때문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자로서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실현이었으며 할례가 그 언약의 핵심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명을 위협하시면서 까지 할례를 시행하게 하신 것은 언약의 준수와 함께 택함받은 자로서의 성결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택함 받은 성도들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동역자로 부름받은 소명자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 삼으라는 내적 부름을 받았을 때 사양하거나 핑계를 대며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나 소명자는 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영육 간에 정결함을 유지함으로 자신을 지켜 나가야할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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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을 받는 모세

Bible 46(출 3:1-2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도주자의 신세로 전락한 채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이끌 소명이 주어진다. 그러자 모세는 “내가 누구인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대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정녕 “스스로 있는 분”이시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함께 호흡하시고 거하시는 분이시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된 것은 그가 원했거나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세우시고 붙들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구속사적 사명을 주시면서 자신을 “여호와요 아브라함과 여러 족장들 곧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으셨던 분”으로 소개하신다. 즉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이미 출애굽의 구속사건을 예정하셨던 바로 그 분임을 설명하신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에게 언약과 예언을 통해 출애굽 사건을 보여주셨던 바로 그분이심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인간 역사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의지에 따른 사건인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의 역사는 초월자이신 한 분 하나님에 의해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다. 즉 모든 사건은 각각 떨어진 별개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태초부터 종말까지 하나님 한 분의 계획에 의해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님의 역사로서 성경이 말하는 구속사의 기본 진리인 것이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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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Bible 45(출 2:1-25)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 2:10)

애굽의 왕 바로가 집요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무력화시키는 와중에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집념 어린 노력은 조용히 전개되고 있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에게는 외국에서의 종살이와 출애굽의 예언이 분명히 주어졌었다(창 15:12-21). 그러나 400년간 종살이라는 너무나 긴 세월이 기다리던 백성들을 지치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셨는가?’ ‘약속을 지키실 힘이 없는 것인가?’라는 회의감 속에 빠진 채 비탄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신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 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그가 바로 모세였다. 바로의 눈을 피하가 위해 태어나자마자 나일강에 버려지고 바로의 공주의 눈에 띄어 궁정에 들어와 공주의 양자가 되는 등 하나님이 이끄시는 구속사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 같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한 번 사랑하신 당신의 백성은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끝끝내 찾으셔서 그 품에 안으신다는 것이다.

40년이라는 세월을 모세는 궁중에 머물면서 애굽의 최고 학문과 권력과 세상의 영예를 배웠고 그 후 인간적인 혈기가 빚은 살인사건의 결과 그는 외지에서 또 다른 40년을 지내면서 인내와 자숙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같은 과정을 거처 모세는 여호와의 선민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종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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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 해 동안 함께 애써 주신 컴파스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회원님들의 가정에 좋은 일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

Bible 44(출애굽기 1:1-22)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 1:17)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가 시작하기까지에는 약 400년간의 긴 침묵시대가 이어진다. 그래서 출애굽기 1장은 400년 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가족 1세대의 명단을 다시 수록함으로써 창세기와 출애굽시대를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성경은 애굽으로의 이주 이후 4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선조들에게 주어졌던 구속사의 언약이 언약가문의 후손인 출애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연결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였다. 더욱이나 세월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하자 그는 셈족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적 증가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핍박하면서 노동착취를 자행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은 고통가운데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과 섭리에 의해 그들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번성하자 바로는 히브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살인명령을 공개적으로 내리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죽음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한 산파들이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린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 앞에서 미리미리 일하신다.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굴레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귀화할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얻게 되는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택함 받은 백성들이 이 땅에서 받게 되는 고난과 연단 뒤에는 항상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땅에서 고난 받을 때마다 그 고난 뒤에 나타날 영광스런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의 인내를 경주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 하나님의 축복과 번성을 약속받은 자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핍박으로 고통당할 수도 있다.

그 때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궁극적으로는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극복해 나감으로써 그 고난을 성도의 신앙적 성숙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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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요셉의 신앙

bible 43(창세기 50:1-2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50:19)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따라 요셉은 바로의 모든 신하와 국가의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형제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올라가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서 7일 동안 슬피 울었다. 그리고는 시신을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한 후 다시 애굽으로 돌아온다. 실로 애굽의 전 지역의 각료들이 모인 국가적인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이렇게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혹시 동생 요셉이 자기들의 과거 잘못을 들추어내며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떨고 있던 형들에게 요셉은 놀라운 위로의 말을 전한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 말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라는 뜻이다. 이처럼 요셉은 자신의 과거가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행해졌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굳게 믿고 있었다.

더 나아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면서 오히려 형들과 자녀들까지 자기가 양육하며 안전히 보살펴 줄 것을 약속한다. 참으로 원수를 용서함은 물론 그들을 사랑하기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거듭난 성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마지막 족장인 요셉도 110세에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도 죽기 전 아버지 야곱처럼 자신의 시신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사실 애굽 땅은 그가 평생을 살아온 땅이며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나안을 그리워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철저히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로서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와서 인간들을 구속사의 흐름 속으로 몰아갔던 한 시대가 마감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400여 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역사는 잠시 침묵한다. 그 400여년 간의 침묵기가 지난 후 이 구원의 역사는 창세기 이후 출애굽시대의 구속사와 다시 연결되고 더 나아가 성경전체와 연결되어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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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장자권

bible 42 (창세기 48:1-49:33)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늙고 병들어 임종을 눈앞에 둔 야곱이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장자권 축복을 해줌으로써 구속사의 주역이였던 야곱의 험난한 시대가 마감되지만, 요셉이 다시 장자권을 이으면서 구원의 역사가 단절됨 없이 이어져감을 보게 된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장자권 상속은 이삭이나 야곱의 경우처럼 누구는 구속사의 반열에 서고 누구는 탈락하느냐는 관점이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 모두가 구속사의 일원으로 참여하되 구속 역사의 실현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구체적으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즉 자신의 손자들을 자기 열 한 아들과 항렬을 같게 조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요셉에게 두 배의 몫이 돌아가도록 조정했다.

이처럼 언약 가문 내에서 구속사적 축복을 행하면서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아우를 형보다 더 축복한 점, 그리고 당장은 정복의 가능성조차 없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미 다 정복한 것처럼 확신하고 분배해준 장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야말로 인간의 상식적 수준을 넘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야곱이 임종에 직면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앞으로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남긴 예언이 그 후 실제 이루어졌음을 보면서 구속사는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전개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가운데 유대에 대한 예언(창 49:8-12)에 특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는 1차적으로는 향후 다윗 등을 통한 유다지파가 왕권을 공고히 함으로써 이루어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한 왕권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야곱의 육적 장자권은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계승했으나 영적 장자권은 넷째 아들 유다가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대상 5:1-5)

마지막으로 야곱이 자신을 약속에 땅에 매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 것은 구속사의 한 세대 족장으로서 그가 비록 몸은 애굽에 있으나 그 영혼은 언제나 약속의 땅을 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진정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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