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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일본 미나마타현에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한집에 사는 3세, 5세 자녀가 차례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어머니가 의사를 찾았다.

어머니는 “고양이의 질병이 옮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키우던 고양이가 경련을 일으키다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미나마타병’이 최초로 보고된 순간이다.

한 손님이 한참 동안 우리 책방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 이름을 먼저 말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찾고 있는데 꼭 초판을 구해서 읽고 싶다는 거다.

“왜 초판을 찾으시나요? 나중에 돌베개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는데요.”

그는 초판이 나왔던 당시 대학생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 있었던 일이다. 20대 중반에 갓 입사한 회사에서 업무에 적응하고, 20년 나이차의 상사를 포함한 동료들과 친숙해질 무렵이었다. 신입인 내가 모르는 업계 관계자들이 사무실에 찾아올 때면 상사가 나를 소개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상사가 갑자기 내 이름 앞에 이상한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 팀 비주얼을 담당하는 기자입니다.”

2013년 7월, 오프라 윈프리가 스위스를 방문했다. 미국 출신으로 스위스에 귀화한 가수 티나 터너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다.

윈프리는 취리히 도심에 있는 고급 매장인 트루아 폼므에 가서 직원에게 진열돼 있던 가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악어가죽으로 된, 약 3만5000스위스 프랑(약 4500만원)짜리 가방이었다. 직원은 ‘그 가방은 너무 비싸다’며 같은 디자인이지만 다른 재질로 된 가방을 권했다. 윈프리는 가방을 보여달라고 다시 요청했고, 점원은 또 거절했다. 세 번째 요청도 거절당하자 윈프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가게에서 나왔다.

마영신 작가의 〈아티스트〉는 예술가들의 맨얼굴을 다룬 만화다. 주인공은 셋이다.

모두 40대인 셋은 예술가 모임인 ‘오락실’에서 마지막까지 뜨지 못한 최후의 삼인방이다. 세 사람은 틈만 나면 곽경수의 화실에 모여 술을 마시며 우리는 뜨더라도 절대 변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셋의 관계는 천종섭이 뜨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발단은 득녕이 종섭에게 에세이를 써보라며 종섭의 글에 기틀을 잡아주고 출판사와도 연결해준다. 그런데 이 책이 대박을 터뜨리고, 종섭은 순식간에 인기 작가로 떠오른다.

1950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의 첫날은 아버지의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다. 에우리디스와 언니 귀다가 예쁘게 단장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함께 식탁에 앉아 웃음꽃을 피워내는 일, 그 시대의 딸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일을 하기 위함이다. 그러다 언니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딸이 남긴 쪽지를 남편에게 읽어준다.

2014년이었나? 여느 날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오키나와를 누비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키나와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어떤 날씨 앱도 무용지물이다.

여행작가는 이런 날 취재 예정인 식당 여러 곳을 방문해 진탕 먹기라도 해야 하루 공치지 않는다. 이날 내가 있던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취재 예정 식당이 아지토야였다.

셜리. 박서련 작가의 영어 이름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을 때 서련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영어 이름을 썼다. 셜리로 사는 동안 깨달았다. 그 나라에서 셜리는 ‘유행이 한참 지나버려서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이름이라는 걸. 한국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이름보다도 더 오래된 느낌이랄까.

매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을 기념해 멜버른 시내에서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때 ‘더 셜리 클럽’이 나타났다. 아무 퍼포먼스 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할머니들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림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삽화는 적나라하다.

남성과 여성의 벌거벗은 모습이 나올 뿐만 아니라 성교 모습의 ‘단면도’가 그려져 있다. 아기가 나오는 장면도 가감 없이 묘사한다. 덴마크 작가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아동용 도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이 책을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선정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배울 수 있는 책’을 꼽아 일부 초등학교에 보급하는 정책이다.

작은 정책이지만 여파는 컸다. 일부 학부모 단체는 8월20일 기자회견을 열어 나다움 어린이책 중 “포르노 같은 동화책”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알림장으로 학부모들에게 그날의 아이 상태와 활동 내용을 전달한다. 종이 알림장과 달리 모바일 알림장은 거의 실시간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있는 동안 알림장을 확인한 부모들은 사진을 보고 질문하거나 건의 사항, 감사 인사 등을 댓글로 전달하고 교사는 댓글에 답글을 작성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캐나다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건강보장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대초원 지역 중 하나인 중부 내륙의 서스캐처원주는 경제발전이 뒤지고 드넓은 농촌지역에 인구도 적었다. 시장을 통한 의료서비스 제공이 원활치 않아, 주민들은 의료 이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44년 주지사로 당선된 토미 더글러스는 1947년 서스캐처원에 보편적 병원보험을 도입했다. 당시 캐나다 병원들은 대부분 비영리 종교단체 소속으로 대다수가 재정 문제를 겪고 있었고, 안정적인 정부지원금이 절실했다. 의사들도 심각한 진료비 체납 문제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던지라 공공보험 도입에 우호적이었다.

극우 유튜버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서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현혹할 수 있느냐에 따라 수익의 규모가 달라진다. 구독자들은 자신을 설득시킨 이들의 서사를 그 자체로 지식이나 논리라고 착각한다. 이 때문에 극우 유튜버들은 허위사실과 혐오 정서를 동원해서라도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들이 뿌리는 정보, 아니 ‘서사’는 감염병과는 별개로 전체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다.

8월29일 베를린에서는 3만8000명이 참여한 코로나19 정책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베를린 경찰 당국은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이번 시위를 금지했지만, 법원이 집회금지 명령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시위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우려한 대로 시위 참가자들은 안전거리를 무시한 채 모였으며, 마스크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 당국은 시위대에게 해산을 명령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자화자찬은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 밖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소도시, 농어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병원) 가다가 죽는다”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돌고 간호사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응급실을 지킨다. 의료 취약지에는 의사가 없고, 병원이 없고, 의료 장비를 운용할 인력이 없다.

지역 소도시의 공공병원인 A 의료원에서 14년째 근무 중인 김명우씨(46·가명)는 “응급실로 걸어 들어와서 장례식장으로 가버린” 환자들을 떠올렸다. 의사가 없어서였다. 심장내과 담당의가 공석이었다. 야간에는 소아과 응급진료가 어려워 환자들을 인근 대도시 대학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그때마다 환자들은 도로 위에서 한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9월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여성 직장인 300명과 인사 담당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발표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의 71%가 승진·평가·업무기회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답했다.

‘동물권, 데이터 소유권 주장하는 급진적 보수주의자’

“실제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다. 예를 들어 게임머니를 생각해보자. 미래에 일자리가 사라지면 근로소득이 없어진다. 게임을 열심히 해서 거기서 번 게임머니로 돈가스를 사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도 게임 아이템은 현실 화폐로 거래가 되는데, 더 나아가서 미래에는 생활 기반이 훨씬 더 가상세계로 옮겨가게 된다. 속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방향은 이리로 간다. 윗세대들은 이런 걸 설명하면 반응이 없는데 젊은 세대들은 당연하게 듣는다. 그들에겐 너무 익숙하니까. 30년 후에 이쪽으로 가게 된다면 지금부터는 뭘 해야 할까? 일단 게임 아이템의 재산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줘야 한다”

‘20년 집권론’ 딱 하나만 물어보겠다고 해서 성사된 인터뷰였다. 지금 집권세력의 세계관과 사고구조를 그보다 잘 보여줄 적임자는 없다.

이해찬은 당 대표가 된 2018년 8월 전당대회 때도 20년 집권론을 내걸었고, 올해 8월28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도 20년 집권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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