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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그마출판사친구 24

신학책에 관심이 많은 케리그마출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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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이 토모아키, 홍이표 역, <사상으로서의 편집자> (한울, 2015)

성서신학(경험상 신약이 구약보다 더 많음)을 공부하다가 조직신학으로 넘어가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귀납적이고 개별적 성서 공부의 끝에 뭉개구름처럼 형성되는 상이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주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조직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뭉개구름의 뒷 모습이나 형성 자취를 알고 싶어한다. 이것은 역사신학으로 넘어가는 시점일 것이다.

이런 관심을 보이는 학자가 바로 후카이 토모아키다. 그는 <사상으로서의 편집자>에서 자기 관심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사상이든 무엇이든 결과물로서의 ‘책’을 붙잡으면 씨름 대상 둘을 만난다. 저자와 편집자다. 저자의 본심은 책으로 드러났다 치고, 편집자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는 없을까? 이게 후카이의 관심인 것 같다. 그가 판넨베르크 학파의 막내에 속하기에 시간의 자취, 역사, 드러난 사건 이면 등에 대한 관심이 자기 전공과 그 시대(19-20세기 프로테스탄트)와 맞물렸을 때 편집자를 주목하게 한 것 같다.

그는 오늘날 공동저자 역할을 하던 편집자가 대중이 편집자가 된 시대에 들어섰다고 본다. 그는 그래도 역설적으로 사상으로서의 똘똘한 편집자가 요청돼야지 않느냐는 바람을 살짝 드러내며 마무리한다.

이 책이 요즘 나왔다면 AI 편집자를 얘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을 거쳐 역사신학으로 넘어온 신학자로서 편집자는 AI와 똘똘한 편집자와의 전투를 그려야하는 시대(SF 시대)에 서 있다.

* 카카오플러스친구가 케리그마출판사 카플 계정을 휴면전환한다고 알려와서 그동안 무심했던 게 여지없이 드러나버렸습니다. 짧은 책 소개 하나로 들켜버린 마음 진정시킵니다. 가끔 소식 전하겠습니다. 날은 춥지만 2018년을 따스하게 마무리하시길 빕니다. 2018. 12. 14.

드디어 구글 플레이 북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샬롬~
며칠 전 구글이 문을 열어주려는 기미가 보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저희가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저희 책이 이제 형식적으로나마 구글 플레이북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언어 한계로 한글 사용자만 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구글의 번역 기술이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 한글 책을 영어로 읽을 수 있네 하는 날이 오겠지요. 함께 기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판넨베르크 신학 훑어보기>(가제)는 교정 과정에서 각 장 헤쳐 모여 및 재구성의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이 더 깔끔한 책을 선보이려고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즐거움과 보람이 가득하길 빕니다.

구글북스에서도 저희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구글북스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았습니다.

"귀하를 Google Play 북 파트너 프로그램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이 초대장은 귀하를 비롯하여 제한된 수의 출판사에 전송되었습니다."

저희 책을 구글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메일입니다. 구글이 저희 책에 자그마한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기쁩니다.

앞으로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저희의 책이 소위 난 곳 방언(독자의 언어)으로 읽을 수 있게 되리라 예상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에서는 구글이 아마 가장 앞서 있다고 봅니다. 저희가 구글북스에 책을 업로드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책 한 권 파는 것이지만,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다는 저희의 속생각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구글북스가 문을 열어주겠다는 메일을 받은 것이 저희에게는 소소한 기쁨이지만 확실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첨부한 그림은 지금 작업하는 원고입니다. 판넨베르크의 신학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장섭 박사입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 편집자(나명석)가 저자를 만나서 지금까지 형동생하며 지냅니다. 형과 함께 연세대에서 공부할 때는 당산역 근처 옥탑방에서 같이 살기도 했지요. 요즘 저희는 저자와 편집자가 원고를 주고 받으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6장인데, 3장까지 1차로 주고 받았습니다. 2차까지 주고 받으면 좀 더 다듬어지겠지요. 이 책이 구글에서 검색도 되고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참으로 기쁩니다.

얼마 전에 저희는 리디북스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에 구글북스의 문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보도, 알라딘이나 예스24도, 우리의 공룡 아마존의 문도 차차 열고 들어갈 것입니다.

주말입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나비가 여러분 어깨에 날아가 앉기를 빕니다.

<밑줄긋기> 후카이 토모아키, 홍이표 옮김, 신학을 다시 묻다, 비아, 2018

신학의 사회사를 시대별로 훑은 좋은 책입니다.
밑줄 그은 부분을 보시려면:
http://kerygma.pe.kr/archives/524

칼 바르트, 오성현 옮김, 기도 (복 있는 사람, 2017)

<밑줄긋기>
바르트가 1940년대 후반에 <주기도> 강해한 걸 엮은 책이 <기도. 종교개혁 교리문답에 따른 주기도 해설>입니다. 밑줄 그은 것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세요.
http://kerygma.pe.kr/archives/512

밑줄 긋기 2

스캇 맥나이트, 전의우 옮김, 파란 앵무새. 오늘 우리를 위한 성경 읽기, 성서유니온, 2018.

이후로도 20년 동안 이 고민을 지속한 결과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살아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25)
우리는 참새들이 그랬듯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경의 파란 앵무새가 내는 이상한 소리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경의 파란 앵무새를 길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35).
성경에 통달해서 그 모든 내용을 내가 만든 체계 속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성경 그대로의 생생하고 기묘한 맛이 사라졌다. 나는 파란 앵무새를 가두어 길들이고 있었다(51).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종이에 인쇄된 2차원적 글을 하나님과 마주하는 3차원적 만남으로 바꾸는 능력! 그렇게 할 때 텍스트는 생명력과 의미, 깊이와 통찰력을 얻어 우리에게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57f.).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면서 성경이 성경 그대로 있게 두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성경의 이야기 자체가 그 체계라는 것이다! (73).
성경은 우리 시대에 우리의 방식대로 성경을 살아 내라며 우리를 재우친다(79).
틴들의 전기 작가가 말했듯이, “[성경의] 본문 그대로가 온전히 주어진다면, 성경이 스스로를 해석할 것이다.” (86)
옛 이야기를 자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들려주기 위해 새로운 저자들이 성경 이야기를 끊임없이 고쳐 쓰는 것 말이다(90).
하나님은 소통하신다. 성경을 통해, 귀 기울이는 하나님의 백성과 대화 속에서(126)
성경에 대한 관계적 접근 방식에 익숙해지고, 성경을 여러 위키 이야기로 구성된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틀에 맞출 때, 우리는 우리와 성경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한다(129).
제이콥스는 우리에게 거듭 알려 준다. 책에 인쇄된 말은 그저 종이에 갈겨 쓴 정보가 아니다. 기록된 말은 인격적 대화이자, 한 인격을 그대로 드러낸다(136f.).
성경을 읽는 사람을 의와 선행의 삶으로 이끄는 것은 성경 저자들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역사하신다는 약속이다(155).
우리 역시 성경의 플롯과 이야기를 배우고, 하나님에게 귀 기울이며, 우리 시대에 우리의 방식으로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별해야 한다(204).

느낌 1: 이 책은 저자 스캇 맥나이트의 경험적 성경읽기 안내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성경 저자에게 역사하신 성령이 성경을 읽는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사 성서 텍스트가 입체로 보이게 하시고, 건전하고 거룩한 분별력을 베푸사 자기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신다고 고백한다.
느낌 2: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루터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났다. 맥나이트는 성경이 드러내는 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성경은 그 자신이 해석자(sancta scriptura est sui ipsius interpres) 개념을 따른다.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듯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친히 그 뜻을 알려주신다. 맥나이트는 성경에 5가지 주제의 플롯이 있다고 본다. 이들 플롯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 됨이다. 여기서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관인 하나의 선이 두 개로 갈라졌다 다시 하나로 모이는 그림을 본다.

밑줄 긋기 1

로버트 뱅크스, 신현기 역,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IVP, 2017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되었지.”(29)
“그분이 우리가 계속 함께 먹기를 바라시기 때문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이유입니다.”(35)

- 함께 먹기, 이게 당시에 골칫거리였던 것으로 안다. 냇물엔 빠가사리도 미꾸라지도 이름 모를 물고기도 고디(물고기 아님)도 있으니까. 그것들이 냇물 자체를 망치진 않았다.
- 집에 들어오면서 예배는 시작 되었다는 구절이 좋다. 아니 그 집을 향해 나설 때부터 예배는 시작 되었겠지. 아니 밥 한 끼 하러 갑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일지도. 마침내 성령의 활동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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