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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와 영감, 그리고 창조적 충동에 관하여

더 렛저 2019년 11월호

오늘날에는 어디에서나 ‘뮤즈’를 이야기하지만, 자신들만의 대리인을 둔 강력한 존재였던 고대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각자의 분야가 있는 불멸의 아홉 뮤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나 저명한 음악가의 세속적인 협력자를 이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신성한 영감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때에 이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뮤즈를 현실로 불러내려 지상에 널리 퍼져 있는 그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바와 같이 예술적 영감은 예술가들과 각 학문 분야 내 존재할 뿐 아니라 문화적, 지리적으로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근대 예술은 단 하나의 신성한 근원보다는 때로는 복잡하고 심지어 논쟁을 초래하는 관계를 이용한다-한 사람의 상호텍스트성은 다른 이의 저작권이나 선의의 침해일 수 있다. 반드시 예술가는 아닐지라도 창조하고 영감을 주는, 타인의 작품에서 구원과 활기를 얻는 모두를 위해 어쩌면 뮤즈라는 개념은 민주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데이비드 리프의 『프로이트: 모럴리스트의 마음(Freud: The Mind of the Moralist)』을 쓴 저자가 수잔 손택인지 생각해 보거나 자연적인 장소나 형태가 건축가와 계획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했는지, 또는 일본의 우키요에 목판 모티브가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나타난 놀라운 재형상화를 생각할 때, 뮤즈는 환영받는 개념이자 그 터치를 더욱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 마법으로 상상하는 동시에 겸손과 타인의 기여의 정도를 인정하는 것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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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it.ly/37MLc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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